마침내 찾아간 모네의 정원은 하나의 완결된 우주와 같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완벽한 소우주 같은 느낌. 이곳에서라면 더는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안도감, 그런 기이한 평화로움과 충족감이 모네의 정원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모네의 정원을 걸으며 그동안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모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을 헤맬 필요가 없겠다는 깨달음이밀려왔다.

우리는 평생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집을 찾아다니고, 마침내 평생 정착하고 싶은 장소를 발견하더라도 ‘이보다 더 나은 곳은 없을까 하는 의심으로 많은 기회를 잃고 만다. 하지만 모네는 의심하지 않았다. 지베르니에 영원한 안식처인 정원을 만든 후에는그 어떤 바깥 풍경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화가는 마음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존재의 중심을 찾은 것이다.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은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감퇴하는 현상을 디스카운팅 메커니즘(discounting mechanism)‘으로 설명한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 받은 날은 뛸 듯이 기쁘지만, 며칠 지나면 뇌는 그 목걸이에 더 이상 놀라움도 행복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쁨이나 설렘을 느끼는 빈도가 너무 쉽게 줄어들고, 반대로 위험을 감지하는 기능이 커지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은 점점 감퇴하게 된다. 뇌는 생존을 위해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 데 더 큰에너지를 쏟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생존을 더 중요시하여 기쁨이나 설렘 같은 소중한감정에 둔감해진다. 영화의 주인공 버나뎃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재빨리 무언가를 해치우고 싶을 때일수록, 세상을 느리고 꼼꼼히 바라보는 연습을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는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비법으로 누워서, 천천히, 조바심을 갖지 않고 바라보기를 처방한다. 서양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끝없이 섬세한 묘사 자체가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의 진가를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판소리도 제대로 완창을 하면 세시간을 훌쩍 넘기는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문명의 편리를 가성비 최고의 효율성으로 섭취하느라,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법,
따스한 차 한 모금을 천천히 향유하는 법, 우리 곁을 스쳐 가는 아름다움의 옷깃을 잠시라도 잡아볼 권리를 잊지는 않았는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을줄 알았던 시인 윤동주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우리 주변의 작은 존재들의 속삭임에 좀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보자.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삶의 아름다운 정수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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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고 실제로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모든 것에 명료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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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혹시 -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본다 ㅡ (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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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있었던 듯하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이고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나빴다. 그는 상대방이 그렇게 비참할 정도로 형편없다는 생각을 하려 들지 않았었다. 그리고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승부가 거의 결판났을 때까지도,
자신이 그 미지의 남자와 결코 동등하지 않다고 믿으려 들었었다. 그 남자의 자신감과 천재성 그리고 젊음에서 오는 후광을 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때문에 그는 정도 이상으로 신중을 기해 체스를 두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마찬가지로 그 낯선 이에게 감탄했으며, 심지어는 그가 승리해서 가능한 한 인상적이고 천재적인 방법으로 몇 년 전부터기다리고 기다려 온 참패를 마침내 자신, 장에게 안겨 주기를 바랐었다고 고백해야 했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을 것이며, 마침내 구경하고 있던 악의에 찬 군상들, 이시기심 넘치는 패거리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마침내….….

장, 동네의 체스 고수는 대단한 도덕적 깨달음을 얻은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체스판을 팔에 끼고 체스가 별로 없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교적인 놀이를 할 것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손에 들고 집을 향해 터벅터벅걷고 있는 지금, 자신이 오늘 실제로는 패배했다는 것만큼은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복수할 기회도 없고 장차 찬란한 승리를 통해 보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끔찍한 결정적인패배였다. 그래서 그는 - 평상시에 그는 위대한 결심을 하는 남자도 결코 아니었다. - 이것을 마지막으로 체스를 영영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그는 다른 퇴직자들처럼 불 게임, 도덕적인 요구가 별로 없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교적인 놀이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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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펼친 그 책 속에는 이십 대 시절보았던 반 고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있었다. 충동적이고 방탕하고 파괴적이고 물감을 먹거나 귀를 자르는 등 자기 신체를 훼손하기 좋아하는 고흐가 아니라 동생 테오에게 평생 돈을 얻어 쓰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고흐가, 자기의 모든 것을 그리고 또 그리는데 바치는 성실한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정신병을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가여운 고흐가말이다. 그중에서도 예전의 내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가장 놀라운 모습은 바로 자신의 예술을 확신하는 고흐였다.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 속에서 이 그림 세 점을집에 두고 팔지 말라고, 시간이 지나면 500프랑의 가치를 갖게 될거라고 말했다

경청의 한계를 알면서도 넘어서려 하는 얼굴, 이해를 다 하지 못한 게분명한데도 절대 이 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결연함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은 아마도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시인이 아니라 시적인 사람이 되고싶다고요?" "네." "시적인 사람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지는 사람요." 이런 대화를 하곤 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시적인 상태가 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이기고 싶다. 그래서 늘지는 사람이 아니라 져주는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 시는언제나 어렵고 그것은 나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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