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 대문을 지키는 강아지 한마리. 감나무집. 화분이 가득한 꽃집. 문을 여는 정육점,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색색의 과일과 채소, 건축사사무소 입구에 곤히자고 있는 개 두 마리.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모두 자기만의 일상을 지키고 유지해나가고 있다. 가끔은 이 반복적인 장면들이 나의 하루를 이루는 퍼즐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그 자리에서 내 일상을 완성시켜주는 모습들에 감사하다.

익숙해지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반복되는 풍경에 적응해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되고 갈수록 무감각해진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생각하면 무섭다. 자주 다니는 골목을 걸을 때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시선은 점점 손에 든 작은 화면으로 향한다. 가까이 있어 늘 그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집 근처는 더더욱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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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미미하게나마 우리를 둘러싼관계망을 감지한다. 조금이나마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나의 삶도 보이고, 타인의 삶도보이고, 동물의 삶도 볼 수 있게 된다. "인간과 고릴라, 말과다이커영양과 돼지, 원숭이와 침팬지와 박쥐와 바이러스…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은 상징적인 말이 아니다. 빈곤의문제가 인수공통감염병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빈곤이 식탁에 오르는 음식 때문이라면 슈퍼에서 음식을 한번 고를 때마다 머릿속이 꽤 복잡할 것이다. 도리가 없다. 먼저 알게된 사람들부터 음식을 고를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것이다. 프로스퍼 발로처럼 손에 든 것을 오래도록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이든 기후위기는 알면 알수록 일상의 선택 하나하나에 찜찜함과 불편함이 깃든다. 그러나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이 마음 불편해지는일이 되는 것에 희망이 있다.

뭔가를 불편하게 여기느냐 아니냐, 그것을 감수하느냐 마느냐,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가 우리의 행과 불행을 가르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아마존을 탐사했던 영국 작가 제이 그리피스의 말에 따르면 정글에서는 길을 잃기가 너무나 쉬운데 그것은 길이금방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글에선 길을 반복해서 걷는 것이 사랑의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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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안다. 독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행위여서 가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 실은그 책에서 가장 무쓸모한 문장일 때도 있다는 것을.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허겁지겁 처리하는대신 천천히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어떤 책에는 저자가 과속방지턱을 많이 설치해 두는데, 그러한 과속방지턱은 몇 날 며칠에걸친 고민으로 완성된다. 어떤 책에서는 저자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서서히 미끄러지도록 도로를 설계하는데, 이러한 도로 역시 몇 날 며칠에 걸친 고민으로 닦아진다. 성실한 독자는 그 과속방지턱을 갈라 보고 잘 닦아진 도로를 문질러 본다. 독서란 곧 경청이며, 경청이란 곧 집중하고 반응하고 되묻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란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가. 어떤 이들문학을 읽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허구의 세계가 쓸모없다 믿고, 당장 써먹을 만한 지식을 알려 주는 책만이 가치 있다 여긴다. 그러나 비효율이 곧 우리가 삶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임을, 더 나아가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힘임을 경청하는이들은 안다. 이 힘이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한탄할 것은없다. 슬프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 바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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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아상에 허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구속하고 노예처럼 옭아매는 생각을 과감히 던져버리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할 때도 있지요.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도 그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적 구조 변경은 어느 날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여 영혼의연금술로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환경을 바꾼다든가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든가 낯선 인간관계를 개척한다든가 필요할 경우 치료나 훈련을 받는다든가 등등 외적인 우회로가 많이 필요하지요. 이 모든 것은 내적 단조로움과의 싸움,
체험과 바람이 변화 없이 굳어버리는 현상과의 투쟁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인식에 있습니다.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내는 것이중요합니다. 자기 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굉장히

이러한 경각심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확한 의미를 따져보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그 의미를 가졌다는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알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유, 정의, 애국심, 존엄성, 선과 악 등 중대한 주제를 접했을 때 본능처럼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삶이 바로 자기결정적 삶입니다. 자신에 대해 결정한다는 것은 사고를 조망하는능력과 사물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일 모두에 언제나 굽힘 없는열정을 가진다는 것과 통합니다. 이 열정은 플라톤적인, 철학적열정과 맞닿아 있지요.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내면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겨나거나 작용하는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질문은 자아상과 자기 인식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만 지금은타인의 판단을 바라보는 눈에 더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중 나는 보지 못하지만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기기만을 발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 확인에도 우리가 거리를 둬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라브뤼예르가 꼬집었던 것으로,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비열한 것은 겉으로 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세간에서 통용되거나 심지어는 높이 평가받는 장면이나 은유, 미사여구의 공식 등을 통한 은밀한 조종입니다. 세계와 우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중에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상과 자기결정적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신문, 정치적 연설 같은 것들이 이런 방식의 이야기들로 넘쳐나 수없이 많은 생각의 들러리들을 양산하지요.

그것에 대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깨어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을 서술하는 데에 이 방식이정말로 옳은 방식인가? 내가 생각하며 느끼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막강한 권위에 의해 제정된 요란한 공식이 띠는 당위성이 지극히 당연하게 다가올수록 우리는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이며 참됨과 독창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른이가 먼저 살아가고 먼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문화는 조금 더 잔잔한 소리가 지배하는 문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 고요함의 문화입니다. 오직 그것이 최우선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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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보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얘기를 더 보태겠어? 다만 70억 지구인 중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은각자 고유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제각각 소중해요.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책을 덜 읽지만, 한국어를 보면 책과 연관된 단어가 많아요. 우리는 남편을 서방書房이라고부르잖아. 자기 남편을 ‘책방‘으로 부르는 나라가 또 있어요?
그만큼 책을 귀하게 여긴 민족인 거지. 한국 사람은 공부하는곳을 ‘책상‘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은 쓰쿠에’라고 해요. ‘책‘
이란 뜻이 안 들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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