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안다. 독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행위여서 가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 실은그 책에서 가장 무쓸모한 문장일 때도 있다는 것을.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허겁지겁 처리하는대신 천천히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어떤 책에는 저자가 과속방지턱을 많이 설치해 두는데, 그러한 과속방지턱은 몇 날 며칠에걸친 고민으로 완성된다. 어떤 책에서는 저자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서서히 미끄러지도록 도로를 설계하는데, 이러한 도로 역시 몇 날 며칠에 걸친 고민으로 닦아진다. 성실한 독자는 그 과속방지턱을 갈라 보고 잘 닦아진 도로를 문질러 본다. 독서란 곧 경청이며, 경청이란 곧 집중하고 반응하고 되묻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란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가. 어떤 이들문학을 읽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허구의 세계가 쓸모없다 믿고, 당장 써먹을 만한 지식을 알려 주는 책만이 가치 있다 여긴다. 그러나 비효율이 곧 우리가 삶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임을, 더 나아가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힘임을 경청하는이들은 안다. 이 힘이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한탄할 것은없다. 슬프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 바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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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아상에 허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구속하고 노예처럼 옭아매는 생각을 과감히 던져버리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할 때도 있지요.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도 그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적 구조 변경은 어느 날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여 영혼의연금술로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환경을 바꾼다든가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든가 낯선 인간관계를 개척한다든가 필요할 경우 치료나 훈련을 받는다든가 등등 외적인 우회로가 많이 필요하지요. 이 모든 것은 내적 단조로움과의 싸움,
체험과 바람이 변화 없이 굳어버리는 현상과의 투쟁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인식에 있습니다.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내는 것이중요합니다. 자기 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굉장히

이러한 경각심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확한 의미를 따져보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그 의미를 가졌다는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알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유, 정의, 애국심, 존엄성, 선과 악 등 중대한 주제를 접했을 때 본능처럼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삶이 바로 자기결정적 삶입니다. 자신에 대해 결정한다는 것은 사고를 조망하는능력과 사물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일 모두에 언제나 굽힘 없는열정을 가진다는 것과 통합니다. 이 열정은 플라톤적인, 철학적열정과 맞닿아 있지요.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내면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겨나거나 작용하는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질문은 자아상과 자기 인식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만 지금은타인의 판단을 바라보는 눈에 더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중 나는 보지 못하지만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기기만을 발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 확인에도 우리가 거리를 둬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라브뤼예르가 꼬집었던 것으로,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비열한 것은 겉으로 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세간에서 통용되거나 심지어는 높이 평가받는 장면이나 은유, 미사여구의 공식 등을 통한 은밀한 조종입니다. 세계와 우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중에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상과 자기결정적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신문, 정치적 연설 같은 것들이 이런 방식의 이야기들로 넘쳐나 수없이 많은 생각의 들러리들을 양산하지요.

그것에 대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깨어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을 서술하는 데에 이 방식이정말로 옳은 방식인가? 내가 생각하며 느끼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막강한 권위에 의해 제정된 요란한 공식이 띠는 당위성이 지극히 당연하게 다가올수록 우리는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이며 참됨과 독창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른이가 먼저 살아가고 먼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문화는 조금 더 잔잔한 소리가 지배하는 문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 고요함의 문화입니다. 오직 그것이 최우선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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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보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얘기를 더 보태겠어? 다만 70억 지구인 중에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은각자 고유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제각각 소중해요.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책을 덜 읽지만, 한국어를 보면 책과 연관된 단어가 많아요. 우리는 남편을 서방書房이라고부르잖아. 자기 남편을 ‘책방‘으로 부르는 나라가 또 있어요?
그만큼 책을 귀하게 여긴 민족인 거지. 한국 사람은 공부하는곳을 ‘책상‘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은 쓰쿠에’라고 해요. ‘책‘
이란 뜻이 안 들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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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찾아간 모네의 정원은 하나의 완결된 우주와 같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완벽한 소우주 같은 느낌. 이곳에서라면 더는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안도감, 그런 기이한 평화로움과 충족감이 모네의 정원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모네의 정원을 걸으며 그동안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모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을 헤맬 필요가 없겠다는 깨달음이밀려왔다.

우리는 평생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집을 찾아다니고, 마침내 평생 정착하고 싶은 장소를 발견하더라도 ‘이보다 더 나은 곳은 없을까 하는 의심으로 많은 기회를 잃고 만다. 하지만 모네는 의심하지 않았다. 지베르니에 영원한 안식처인 정원을 만든 후에는그 어떤 바깥 풍경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화가는 마음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존재의 중심을 찾은 것이다.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은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감퇴하는 현상을 디스카운팅 메커니즘(discounting mechanism)‘으로 설명한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 받은 날은 뛸 듯이 기쁘지만, 며칠 지나면 뇌는 그 목걸이에 더 이상 놀라움도 행복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쁨이나 설렘을 느끼는 빈도가 너무 쉽게 줄어들고, 반대로 위험을 감지하는 기능이 커지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은 점점 감퇴하게 된다. 뇌는 생존을 위해 ‘지금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 데 더 큰에너지를 쏟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생존을 더 중요시하여 기쁨이나 설렘 같은 소중한감정에 둔감해진다. 영화의 주인공 버나뎃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재빨리 무언가를 해치우고 싶을 때일수록, 세상을 느리고 꼼꼼히 바라보는 연습을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는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비법으로 누워서, 천천히, 조바심을 갖지 않고 바라보기를 처방한다. 서양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끝없이 섬세한 묘사 자체가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의 진가를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판소리도 제대로 완창을 하면 세시간을 훌쩍 넘기는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문명의 편리를 가성비 최고의 효율성으로 섭취하느라,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법,
따스한 차 한 모금을 천천히 향유하는 법, 우리 곁을 스쳐 가는 아름다움의 옷깃을 잠시라도 잡아볼 권리를 잊지는 않았는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을줄 알았던 시인 윤동주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우리 주변의 작은 존재들의 속삭임에 좀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보자.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삶의 아름다운 정수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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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고 실제로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모든 것에 명료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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