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키친 - 식재료 낭비 없이 오래 먹는 친환경 식생활
류지현 지음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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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 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하니 밥은 따뜻하고, 국은 뜨겁고, 장은 서늘하고, 술은 찬 것이어야 한다." - 《부인필지夫人心知)

마당과 바로 연결돼 실외에 가까웠던 부엌이 방처럼 실내에 자리 잡게 됩니다. 자연과 멀어진 공간에 살면서 냉장고는 우리 부엌의필수품이 되었고 더 큰 냉장고에 대한 열망은 흘러온 세월만큼 커져만 갑니다.

매년 전 세계의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먹거리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공정한 구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의 고통을 겪습니다. 또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작물의 다양성까지 파괴돼 지금 우리의 식탁에는 100년 전먹거리의 10%밖에 안 되는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오르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많은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매년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녹색혁명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생산지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먹거리와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내가 먹을식재료를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다 보니 사람과 식재료 사이에 냉장고만큼의 거리가 생겼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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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에 이런 것이 있을 리 없다고 부정하다가 또 들여다보고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돌이켜보니 몸은 내게 아프다고 돌봐달라고 여러차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저 정신적 즐거움에만 몰두한 채 육체적 고통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도 가혹하게돌아왔다. 왜 이렇게 내 삶은 다사다난한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스스로를 너무 믿었고 그 믿음이 지나쳐 오만했기문일 것이다. 난 고작 몇 센티미터의 세포덩어리도 이겨내지 못 하는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내가 세상의 정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판단하고 건방지게 행동했었다.

더 낮아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남들의 말과 몸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남편과 가족, 지인, 세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인생임을 기억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제는 내 몸을, 내 자신을 더 소중히 아끼고 살아야 한다.

모든 것에는 이중적인 단면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일을 기꺼이 즐겁게 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일을 선택하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몇 년을 노력했지만 그 일을 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생존을 위해 이른 새벽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 누가 옳고 그르다고 재단할 수는 없다. 삶의 모양이 어떠하든 우리는 이 땅에서 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슬픔, 고됨, 기쁨, 행복, 그 어떤 감정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든지간에 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끔은 먹구름이 껴 슬픔이 주된 감정선을 이루고 있더라도, 이것 역시 내 삶이고 이 속에서도 마음의 새싹은 자라나 언젠간 꽃을 피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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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다 있다(그런데 역설적으로 무엇을 하는 순간은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은 무엇을 하는 순간이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너를 위한 나의 변신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꿀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예컨대 자연은 대체로 인간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리라고 믿으면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숲을 파괴하고 둑으로개울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구름과 비와 바람은신에게 귀속된 것이기에.
또 생명체는 신이 어떤 과정을 점지해주더라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위로가 됩니다.
그 흐름 속의 일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존재, 즉 우리 인간 들이 그 흐름을 방해한다 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환1. 경이 생명체를 어떻게 주조한다 해도 그 생명체는 환경을극적으로 변화시킬, 더군다나 파괴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않다고 생각하면 또한 위로가 됩니다.21

해야 할 일이 뭔지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제게 미래의평화는 없을 겁니다. […] 이 중차대한 일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 있게 발언하는 것은 제 의무이자 가장 깊은 의미의 특권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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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나에게는 모든 감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마스터키입니다.
여기 내 눈 앞에서 사람들이 불행으로 간주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칩시다. [...] 설령 이런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다 해도 나에게는 아직 ‘선택‘의 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불행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긍정의 문을 열어둘 것인가? [...]분노도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누가 나에게 화나게 하는 행동을합니다.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행동은 일단 ‘판단‘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후 ‘선택‘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내 안에서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나는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나는 저 사람의 저 행동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노라. 내가 왜 그 행동 때문에 ‘화‘를 내서 나의 소중한 하루(어쩌면 이틀,어쩌면 평생)를 망쳐야 한단 말인가, 화내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인가, 우리시대의 삶의 주제를 폭넓게 사유했던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 덕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 역시 지구 저편 누군가의 통절한 아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한두 번 상황이 좋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아니다. 그러기에 더욱 값진 것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긍정적 발상이다. 이런 경지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생각의 지대에 ‘결‘을 내야 한다.
결은 무엇인가? 결은 일정한 흐름의 패턴이다. [...] 이런 결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가? ‘반복‘을 통해서다. 그런데 ‘결‘은 일단 형성되고나면 ‘길‘의 역할을 한다. 외부의 변수를 자신의 결을 따라 유인하여 ‘그렇게 흐르도록‘ 또는 ‘그렇게 진행되도록‘ 작용한다는 말이다. 생각에도결이 있다. 반복의 과정을 통해서 어느새 자신의 생각에 결이 난다. 어떤 이에게는 부정적인 쪽으로, 어떤 이에게는 긍정적인 쪽으로, 이렇게‘결이 나서 결국 ‘길‘이 생긴다.

‘토킹 스틱‘ 이란 인디언의 지혜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토킹 스틱은 인디언들에게 전수된 경청의 지혜를 담보해 주는 도구다. 이는 인디언들이 회의를 할 때 부족장이 들고 있는 지팡이다. 부족장은 발언권을 청하는 부족원에게 이 토킹 스틱을 건네고, 토킹 스틱을가진 사람만 말을 할 수 있다. 이때 다른 부족원은 참견하거나 말을 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회의가 끝나면 모두 만족한다.
이처럼 토킹 스틱은 상대가 말하는 중간 절대로 끊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그만큼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보는 지점‘이라는 말은 정해진 자리에서 자기중심으로 무엇인가를바라볼 때 사용될 수 있다. 반면 ‘봐야 할 지점들‘이란 말은 자기중심을탈피해서 상대방의 입장, 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의 처지를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는 지점만을 가지고 있고, 미스터 갓은 봐야 할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안나는 얘기했던 것이다.
안나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희망적인 영감을 준다. 요즘 우리가 처한 정치사회적 긴장국면은 한마디로 여러 관점들의 충돌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이럴 때 ‘관점‘(point of view)이라는 관습어 대신에 봐야 할 지점들‘(points to view), 더 줄여서 볼 점‘이라는 신조어가 대중화된다면, 그자체로 융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다름‘을 서로 경합 내지 경쟁 대상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다. ‘다름‘을 더 이상 ‘틀림‘이라는 말로 바꾸지않을 때, ‘다름‘은 다양성의 풍요로 꽃을 피게 된다. 다양성은 얼마나큰 축복인가. 잘만 활용하면 풍요를 넘어 융합 에너지를 뿜기도 하니, 이로부터 다시 적대적 대립으로 역행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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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는 사람들의 흰 손이 있고, 몽상하는 사람들의 섬세한손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는 손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그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타자를 지향하는 글이 아니라면 흥미로운 글일수 없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체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을 한 권의 책을 바로 그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이다.

더 많이 읽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책이든 나쁜 책이든 신문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읽는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것들 모두가 양식이 되어준다. 요컨대 한쪽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읽기가 전부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다. 돈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경계는 돈의 경계보다 더 폐쇄적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모든게 부족한 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겐 결핍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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