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나에게는 모든 감정의 문제를 처리하는 마스터키입니다.
여기 내 눈 앞에서 사람들이 불행으로 간주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칩시다. [...] 설령 이런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다 해도 나에게는 아직 ‘선택‘의 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불행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긍정의 문을 열어둘 것인가? [...]분노도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누가 나에게 화나게 하는 행동을합니다.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행동은 일단 ‘판단‘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후 ‘선택‘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내 안에서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나는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나는 저 사람의 저 행동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노라. 내가 왜 그 행동 때문에 ‘화‘를 내서 나의 소중한 하루(어쩌면 이틀,어쩌면 평생)를 망쳐야 한단 말인가, 화내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니다."

그래서인가, 우리시대의 삶의 주제를 폭넓게 사유했던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 덕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 역시 지구 저편 누군가의 통절한 아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한두 번 상황이 좋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아니다. 그러기에 더욱 값진 것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발휘되는 긍정적 발상이다. 이런 경지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생각의 지대에 ‘결‘을 내야 한다.
결은 무엇인가? 결은 일정한 흐름의 패턴이다. [...] 이런 결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가? ‘반복‘을 통해서다. 그런데 ‘결‘은 일단 형성되고나면 ‘길‘의 역할을 한다. 외부의 변수를 자신의 결을 따라 유인하여 ‘그렇게 흐르도록‘ 또는 ‘그렇게 진행되도록‘ 작용한다는 말이다. 생각에도결이 있다. 반복의 과정을 통해서 어느새 자신의 생각에 결이 난다. 어떤 이에게는 부정적인 쪽으로, 어떤 이에게는 긍정적인 쪽으로, 이렇게‘결이 나서 결국 ‘길‘이 생긴다.

‘토킹 스틱‘ 이란 인디언의 지혜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토킹 스틱은 인디언들에게 전수된 경청의 지혜를 담보해 주는 도구다. 이는 인디언들이 회의를 할 때 부족장이 들고 있는 지팡이다. 부족장은 발언권을 청하는 부족원에게 이 토킹 스틱을 건네고, 토킹 스틱을가진 사람만 말을 할 수 있다. 이때 다른 부족원은 참견하거나 말을 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회의가 끝나면 모두 만족한다.
이처럼 토킹 스틱은 상대가 말하는 중간 절대로 끊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그만큼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보는 지점‘이라는 말은 정해진 자리에서 자기중심으로 무엇인가를바라볼 때 사용될 수 있다. 반면 ‘봐야 할 지점들‘이란 말은 자기중심을탈피해서 상대방의 입장, 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의 처지를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는 지점만을 가지고 있고, 미스터 갓은 봐야 할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안나는 얘기했던 것이다.
안나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희망적인 영감을 준다. 요즘 우리가 처한 정치사회적 긴장국면은 한마디로 여러 관점들의 충돌이라고 요약할수 있다. 이럴 때 ‘관점‘(point of view)이라는 관습어 대신에 봐야 할 지점들‘(points to view), 더 줄여서 볼 점‘이라는 신조어가 대중화된다면, 그자체로 융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다름‘을 서로 경합 내지 경쟁 대상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다. ‘다름‘을 더 이상 ‘틀림‘이라는 말로 바꾸지않을 때, ‘다름‘은 다양성의 풍요로 꽃을 피게 된다. 다양성은 얼마나큰 축복인가. 잘만 활용하면 풍요를 넘어 융합 에너지를 뿜기도 하니, 이로부터 다시 적대적 대립으로 역행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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