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자기중심적인 감정이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때 나는 필연적으로 나 자신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경험을 재료로 사용한다. 사용할 재료가 다르다면, 그 결과물도 다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그대로 투사하는 것은 종종 공감보다는 폭력으로 나타나기 쉽다.

뛰어난 공감 능력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분류함으로써 신체로부터 오는 신호들을 매 순간 예민하게 포착해 적절한 반응을 찾는 삶의 태도로부터 온다. 순간마다 충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귀 기울일 때,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공감은 더 정확해지고 확장될 수있으며, 타인과의 감정소통 능력 또한 향상될 수 있다. 공감 능력을키우기 위해 애써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감정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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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에서는 어떤 장소에 먹이가 있었다고 해도 다시 그곳에 갔을 때 반드시 먹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예컨대 바람이 불어서 먹이가 있던 곳이 황폐해졌을 수도 있다. 정답이라고해서 늘 같은 곳으로 가다 보면 언제 먹이를 못 먹어서 죽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틀릴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명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본능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같은 상황에 놓이면 늘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기에 비로소 위기에 처했을 때도 종이 전멸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상황을 분석해서 좋은 면을 찾아내고 긍정적인 감정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침대 시트를 갈아줬더니 무척 기분 좋아 보여서 기뻤다.‘며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기쁨‘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병원에서집으로 가려고 문을 연 순간 석양이 아름다웠다. 친구가 기분전환을 시켜줬다.‘며 어두운 감정에 빠져 있을 때 뜻하지 않게날아온 한순간의 햇살과 타인의 도움에 감동한 사람도 있었다.
괴로운 상황이라고 해서 괴로운 감정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다양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일수록 파트너가 사망한 후에도 그절망에서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느낀 소소하게 밝은 감정이 이후 자신을지탱해주는 힘으로 성장한다. 하나의 일에 얼마만큼의 다양한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성이다.

다시 음악회 이야기가 나오자 엄청 잘했어." 하고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이야기의 정합성이나 논리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회 감상이라고는 하지만 음악회는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졌으니 그동안에 연주를 잘했던 시간대도 못했던 시간대도있었을 터다. 어디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감상은 바뀔 것이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느낌이 바뀔 것이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질병으로 뇌가 취약해진사람은 그런 경향을 더 자주 보인다. 나는 엄마를 통해 그런 사실을 배웠다.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지만, 저렇게 물으면 저렇게대답하기도 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한 가지 생각만 가져야 한다,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말들로 살아 있는 사람을 얽매면 안 되겠다고, 엄마를 보고 생각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만 해야지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건 진실하지 않다는 식으로 감정을 발휘하는 힘을 억눌러왔다. 사실은 하나의 상황에 한 가지 감정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솟아나는 법이며 오히려 그쪽이 바람직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해온 이해력, 판단력, 기억력 등의 능력을 손상시킨다. 그런 능력은 성장과정에서 경험과함께 발달하며 그 사람에게 평생의 직업을 갖게 해주고,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왔다.
엄마는 젊었을 때는 앉아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후 ‘누군가를 위해‘라는 생각은 하지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나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도 없게 되면서 그러한 엄마다움‘을 보기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나도 엄마가 ‘엄마가 아닌 사람이 됐다고 우울해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기분이다.
효율적인 일처리, 논리적인 사고, 타인을 위한 행동 등의 능력만이 엄마다움을 만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감정은 지금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는 감정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정보를 올바르게 전해주면 이전과 같은 감정적 반응을 한다. 그럴때 나는 확실하게 ‘엄마는 이곳에 있다‘고 느낀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인지능력이 만드는 ‘그 사람다움’ 외에 감정이 만드는 ‘사람다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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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받기 원하는 대로 타인에게 하자‘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자‘고, 자신이 쓴 사상 그대로 철저하게 타인을존중해온 경탄할 만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삶의 방식 때문인지 칸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존경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칸트에게는 공격성, 배회 등 주변 증상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통할 수는 없게 되었어도 주위에서 우러르는 신 같은 존재로 평생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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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는 과학의 진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과학의 유용한 결과들은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은, 엄밀히 말하자면 후세를 위한 지식은 전혀 축적되지 않고 있다. 지식은 그에 상응하는 경험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듣기만 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개인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다른사람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한 차례 온화한 봄비가 내리면 풀의 녹색 빛이짙어진다. 마찬가지로 긍정적 전망은 더 나은생각이 몰려들도록 주위를 밝게 만든다. 봄, 《월든(1854)》

새와 새의 노래를 감상하는 귀는 어떤 관계일까? 분명히 서로 가까이 이어져 있으며, 서로를위해 존재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새나 벌레가 내는 어떤 소리 때문에 연못가의돌이 부분적으로 부서진 것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의 존재로 또 다른 존재를 설명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연못가의 바위다.
1857년 2월 20일의 일기

모든 경험은 많은 부분이 우리의 내면으로들어와 남는다. 계속 우리와 함께한다. 그러다가 건강할 때나 아플 때의 어느 날, 문득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른다. 몸과 영혼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자신을 흔들던 바람과 스쳐 지나간 돌멩이를 언제까지나 기억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와 모래에게 물어보라. 1841년 2월 8일의 일기

한 여성이 나에게 집 안에 매트를 깔라고 권했다. 그러나 집 안에 깔아 놓을 자리가 없을 뿐더러,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깔개를 털어 낼 시간도 없어서 거절했다. 차라리 현관 앞 잔디 위에서 발을 닦는 게 더 낫다. 잘못될 일을 시작하느니 애초에 피하는게 좋다. 생활의 경제, 《월든(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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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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