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에서는 어떤 장소에 먹이가 있었다고 해도 다시 그곳에 갔을 때 반드시 먹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예컨대 바람이 불어서 먹이가 있던 곳이 황폐해졌을 수도 있다. 정답이라고해서 늘 같은 곳으로 가다 보면 언제 먹이를 못 먹어서 죽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틀릴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명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본능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같은 상황에 놓이면 늘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다른 행동을 하기에 비로소 위기에 처했을 때도 종이 전멸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상황을 분석해서 좋은 면을 찾아내고 긍정적인 감정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침대 시트를 갈아줬더니 무척 기분 좋아 보여서 기뻤다.‘며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기쁨‘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병원에서집으로 가려고 문을 연 순간 석양이 아름다웠다. 친구가 기분전환을 시켜줬다.‘며 어두운 감정에 빠져 있을 때 뜻하지 않게날아온 한순간의 햇살과 타인의 도움에 감동한 사람도 있었다. 괴로운 상황이라고 해서 괴로운 감정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다양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일수록 파트너가 사망한 후에도 그절망에서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느낀 소소하게 밝은 감정이 이후 자신을지탱해주는 힘으로 성장한다. 하나의 일에 얼마만큼의 다양한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성이다.
다시 음악회 이야기가 나오자 엄청 잘했어." 하고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이야기의 정합성이나 논리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회 감상이라고는 하지만 음악회는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졌으니 그동안에 연주를 잘했던 시간대도 못했던 시간대도있었을 터다. 어디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감상은 바뀔 것이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느낌이 바뀔 것이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질병으로 뇌가 취약해진사람은 그런 경향을 더 자주 보인다. 나는 엄마를 통해 그런 사실을 배웠다. 이렇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지만, 저렇게 물으면 저렇게대답하기도 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한 가지 생각만 가져야 한다,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말들로 살아 있는 사람을 얽매면 안 되겠다고, 엄마를 보고 생각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만 해야지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건 진실하지 않다는 식으로 감정을 발휘하는 힘을 억눌러왔다. 사실은 하나의 상황에 한 가지 감정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솟아나는 법이며 오히려 그쪽이 바람직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해온 이해력, 판단력, 기억력 등의 능력을 손상시킨다. 그런 능력은 성장과정에서 경험과함께 발달하며 그 사람에게 평생의 직업을 갖게 해주고,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왔다. 엄마는 젊었을 때는 앉아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후 ‘누군가를 위해‘라는 생각은 하지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나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도 없게 되면서 그러한 엄마다움‘을 보기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나도 엄마가 ‘엄마가 아닌 사람이 됐다고 우울해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기분이다. 효율적인 일처리, 논리적인 사고, 타인을 위한 행동 등의 능력만이 엄마다움을 만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감정은 지금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는 감정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정보를 올바르게 전해주면 이전과 같은 감정적 반응을 한다. 그럴때 나는 확실하게 ‘엄마는 이곳에 있다‘고 느낀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인지능력이 만드는 ‘그 사람다움’ 외에 감정이 만드는 ‘사람다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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