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에 뜻을 자주 두고 인간 세상을욕망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위태백 지역을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였다." 이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늘신의 목소리다. 그리고 하늘신 환인의 아들은 실제로 부하들을 데리고세상에 내려와서 문명 세계를 건설한다. 마치 발리나 미국의건국신화가 외부 문명인들이 이주해 와서 정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듯이, 한국의 건국신화 역시 외부(하늘)의 존재가이주해 와서 정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곰은 어두운 곳에서 마늘을 먹고 견딘 끝에 마침내 웅녀가 되었고, 환웅과 짝을 지어 단군왕검을 낳는다. 이 단군왕검은 어떻게 되었나? 무려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는데, 중국으로부터기자()라는 이가 조선 땅으로 건너오자 자리를 피해 결국산신(山神)이 된다.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에는 아주 일찍부터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의 정체성은 바로 그런 시선들과 길항하며 전개되었다. 단군신화는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고달픈 길을 가려는 이 ‘슬픈‘ 자기 재창조 작업이 바로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의심이다. 단군신화에서 가장 놀라운 이는 환인이나 환웅 같은 신적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데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건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들은 아직 인간 세상이 얼마나 개판인지 모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느 시대나 약간 이상하고 야심적인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정말 놀라운 점은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결심이 가능한 동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결심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신의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을 나눈 뒤, 사뭇 다른 미래의 자신을 창조해내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는것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는 바로 그 놀라운 자기 재창조의 결심을 해낸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일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명이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겪는 고추는 자연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는 존재의 몸부림이다. 문명화된 존재로 자신을 탈바꿈하려는 존재의 통과의례다. 알다시피 호랑이는 실패하고 곰은 성공한다. 그러나 호랑이가 과연 실패한 걸까. 우리는 단군신화가 호랑이가 아닌곰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호랑이의 관점에서 쓰인 단군신화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인간이뭐라고 이 개고생을 감수해야 하나! 유레카! 깨달음이 온 호랑이는 동굴을 뛰쳐나간다. 호랑이가 이렇게 문명을 거부했기에, 신화의 주인공 역할은 문명화의 길을 간 곰에게 넘어갔다. 끝내 버텨 인간이 된 곰, 정말 ‘징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 곰이 그 고초를 견디고 마침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은단군신화의 인간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단군신화의 인간관은 홍익인간이 아니다. 홍익인간은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정도의 일반적인 언술에 가깝다
단군신화의 진짜 인간관은 웅녀에게 응축되어 있다. 바로 문명화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간,미래의 새로운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는 인간,변화를 위한 자기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타율에 의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었다면 곰은 인간이 되지 않았을것이다. 자기통제를 통해서 그 과정을 완수 했을 때 곰은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제법 나이 든 인간으로서 나는 시간이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따라서 부질없는 집착들로부터 놓여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올해 안에 무엇을 기어이 끝내겠다는 결심 같은 건 되도록 하지 않을것이다. …어떤 일들은 그 시절에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게 되곤 한다. 그런 것들 말고는 나의 일상을수호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변함없이 달걀을 삶을 것이며, 달걀을 다 먹은 뒤에는 그날의 글을 쓰고, 오후가 되면 오랜 시간 걸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산책길 커피숍에서 그날의 커피를 마시고, 과묵한 점장이 지키고 있는 작은 책방에들러 책을 살 것이다. 나는 왜 나일까 같은 질문은 그만하고 사랑이라는 기적에 대해 과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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