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인공지능처럼 두는가.‘ 이것이 프로기사들의 실력을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 바둑계에서는 ‘AI 일치율‘ 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어떤 인간 기사가 인공지능이 추천한 수대로 돌을 둘 확률을 가리키는 말이다. ‘AI 일치율이 높다‘라는 말은곧 그 기사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AI 수법이 그냥 너무 바둑계에 스며들어서, 사실 이미다 당연하게 그냥 두고 있어서 그런 고찰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 그런 고민 하지 않아요. 그냥 ‘더 공부해야지, 더 나아져야지‘ 다 지금 그렇게가고 있어요. AI에 대해서는 그냥 그 존재를 인정했고, 얼마만큼내가 AI를 따라 둬서 수준이 높아질 것인가 하는 생각이죠. 다들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경쟁은 사람이랑 하니까요. 그냥 ‘내가 AI를 더 습득해서, 더 발전해서 저 사람을 이겨야되겠다‘ 뭐 이런 식이죠. AI에 대해서는 그 엄청난 경지를 봤기 때문에 그거는 그냥 받아들였고요."
서울에서 40년간 제비들이 쫓겨나고 비둘기가 번성한 이유는제비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비둘기들이 현명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서,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대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일으킨 인간도딱히 제비를 혐오하거나 비둘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 그저 우연히도 제비에게는 불리했고 비둘기에게는 유리했다. ‘AI-환경‘도 그러할 것이다.
조훈현 9단은 자서전에서 ‘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둑에는 ‘류‘라는 것이 있다. 기사마다 바둑을 두는 기풍을뜻하는 말인데, 여기서 각자의 성격과 추구하는 바가 나타난다. (...) 바둑기사에게 자신만의 ‘류‘는 일종의 자아다. 바둑을 어떤 식으로 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그래서 거장들의 바둑 대결은 이러한 세계관과 가치관의충돌처럼 다가온다. 바둑이 무려 4천 년을 살아남았고 아직도 건재한 이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관과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윌리엄 어니스트헨리의 시 「인빅투스」 마지막 구절을 조금 변형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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