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네팔 사람들이 인도와 인도 사람들을 딱히 싫어하는건 아니다. 한국도 일본과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사람들끼리 싫어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네팔 입장에서 인도는 선진국이다. 배우고 따라잡고 싶은 나라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주인처럼 행세하면 굴욕감을 참기 어렵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Him)‘이 ‘쉬는 곳 (Alaya)‘이라는 의미다. 의역하자면, ‘눈이 사는 곳‘, 혹은 ‘눈의 안식처‘
다. 나는 이 어감이 좋다.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네팔 사람들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인 카트만두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었다. 공기가 맑았던 20년 전쯤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서 봤던 히말라야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존재 같았다. 저 멀리 하늘과 땅 사이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는 영원히 닿지 않을 곳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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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 걸까?
모든 문제를 기어코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지독하게 인간만이지닌 특성이 아닌가? 인간은 도대체 왜이런가?"

물려받은 땅이 있는 어떤 젊은이가 내게 말했다. 돈이 생기면 나처럼 살겠다고. 나는 누구에게도 내 삶의 방식을 어떤 식으로도 따라 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내 삶의 방식을배우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다른 방식을 찾았을 수도 있고, 이 세상의 최대한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모두가 신중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기를 바란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이웃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길을 말이다.

소로는 사회에 불만을 표시하고 반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될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길에서도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 삶은 자기존재의 더 높은 법칙에 복종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회사에 다녀도 백수로 살아도,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살아도 어려움은 있다. 천국에 가도 문제를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그 문제 자체에 반대하기보다는바로 그곳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울프가 말한 ‘비터니스‘를 버리는 게 아닐까.

물론 우리는 발전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다.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때보다 세탁기를 쓰는 지금이 더 발전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세탁기가 발명된 시대의 맥락 안에 존재하고 있는 나는 세탁기를 기뻐하며 사용하지만, 내가 선호한다는 사실이 곧 절대적인 선을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탁기를 개발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기특하긴 하지만굳이 장려하지는 않고, 나 역시 기회가 되면 사회적 의미가 있거나 돈 버는 일을 하지만 그런 기회를 반드시 찾아야 나의 존재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더 편리한 기술이나 물건들이 개발되어도 기존의 불편함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감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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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틱스는 나만의 움직임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다. 나만의걷기, 나만의 앉기와 서기, 나만의 눕기, 나만의 수저질하기등 일상 속에서 나만의 움직임을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몸을움직일 때, 특정한 동작의 완성보다는 그 움직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 몸은 다른 누군가의 몸과똑같지 않다. 그래서 내 몸의 감각으로 나만의 움직임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나에게 최적화된 움직임으로 살때,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음, 상체를 늘어뜨리니까 척추가 길게 쭉 늘어나는 느낌이 들어.
상체를 숙일수록 가슴 부위가 좁아지면서 숨을 쉴 때마다 긴장감이 새롭게 느껴져. 머리를 아래로 툭 떨구었더니 어깨가 늘어나면서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
움직이던 몸이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어느새 몸에게 심술궂게 핀잔을 주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겼는지몸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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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난 언제나 뭐든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별 것들에 다 쉽게 빠지고 크게 흥분하기 일쑤였다.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게 잘 안 됐다. 늘 잔뜩 호들갑을 떨며 깊이 파고들어 속속들이 좋아해야 속이 후련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좋아하는 대상들에 일관성도 거의 없어, 아무것에나 마음을 주는 무분별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늘 눈치가 보였다.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좋아하다가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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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한어에는 과거나 미래를 표현하는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들은 현재에 집중해 자신의 직접 경험만을 표현한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삶의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피다한족은 도구도, 예술작품도 만들지 않고, 음식을 보존하지도않는다. 그러니 필요한 도구는 즉석에서 만들어 쓰고 그만이다. 보존한 음식이 없으니 한참을 굶기도 한다. 신화나 구전이야기도 없고,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의례도 없다. 그러니 기독교를 포교할 수도 없었다. 에버렛은 피다한족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다른 문화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험과그에 맞춰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절대적으로 만족한다고 전한다. 그러니 미래에 갚아야 할 부채 관념도 없었고 따라서 갚아야 할, 혹은 받아야 할 빚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확실한 능력이 있다는 것보다 더 고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조각상 하나를 조각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몇 개 만들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주변의 환경과 우리가볼 수 있는 수단을 조각하고 그리는 것은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장높은 수준의 예술이다. (…)

우리의 삶은 자질구레한 디테일 때문에 조금씩 낭비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계산하기 위해서열 손가락 이상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경우라도 발가락 열개만 추가하고 나머지는 하나로 뭉뚱그려도 된다. 간소함, 간소함, 간소함!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두세 개가 되게 해야지 백 개, 천 개가 되게 하지 말라. 백만이 아니라여섯을 세고, 당신의 계산을 엄지손톱에 적어라. (…) 간소화하라,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끼가 아니라 꼭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가 아니라 다섯 가지 요리면 된다. 다른 일들도 이런 비율로 줄여라.

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을 두 가지로 나눈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상 그 자체를 만드는 것과, 이를 둘러싼 환경과 이를보는 방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으로, 그리고 후자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환경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바로단순화이고 간소화다.
소로는 불과 몇 줄을 사이에 두고, 간소함simplicity 간소화simplify를 세 번 두 번 반복해서 외친다. 이 부분에서는 왠지 소로가 침을 튀기며 웅변을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제발! 간소하게 살아라!" 하고, 소로는 문명에 대항해서 개인의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믿었다. 우리의 고유성이란 대체로 사소하고, 잘 들여다보지

언제나 그렇듯 소로의 특이한 삶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중요한 게 아니다. 소로는 밥을 세끼 먹지 말고 한 끼만 먹으라고 주장했다. 나는 세끼에다가 간식이며 디저트까지 챙겨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따르고 싶은 건, 끼니를 건너뛰거나 아무것도 없는 거실 풍경을 만드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소로의말처럼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물건을 없애는 것도,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도 삶의 맥락과 환경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면 된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소유해야 할 물건이나 해야 하는 일도 따라서줄어들 수 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건 이 과정이다. 이 과정을 따른다면 무조건 새로운 진리를 따라 나의 일상을 바꿀 필요가 없다. 마치 커피나 와인의 논쟁처럼 말이다. 커피나 와인이 몸에 좋을까 아니면 해로울까? 내생각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하루 한잔의 커피나 와인은 몸에 좋다는 연구들이 있지만 결국 커피는 카페인이고 와인은 알코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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