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니, 이 집은 안 돼. 김민철은 우리의 로망을 실현하러 가는 거야. 우리의 로망에 걸맞은 집에 살아줘."
어떤 말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휴가가 아니라 여행. 여행이 아니라 삶. 한 시기의 삶. 기어이 내가마련한 삶. 2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저축해 얻어낸 이자 같은 삶.
거기에 합당한 삶의 모양을 취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을 잘게 잘게 쪼개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야금야금 뜯어 먹을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완벽한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파리 살기가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로망 살기의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마침내 파리행 비행기가 떠올랐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마법에 걸려 용이 된하쿠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 용의 비늘이 후두두두 벚꽃잎처럼 떨어진다. 그는 마침내 오롯한 하쿠로 돌아와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된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시간부터 이름조차 붙일 수 없었던 감정까지, 그 모든 것들이후두두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날 알았다. 똑같은 그림을 나에게 넣고 섞었는데, 슬픔이나왔던 시절이 있었고, 용기가 나오는 시절이 있다는 걸. 내가바뀐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바뀐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나의 색깔대로 살아버려도 된다는 용기였다. 좋은 롤모델이 없더라도, 좀 이상해 보이더라도, 내 마음의 방향대로 살아버리는 것. 스스로가 나의 롤모델이 되어버리는 것. 내가 긋고싶은 선을 긋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색을 칠하는 거다. 불안과 싸우며, 의심을 떨쳐내며, 계속 나아가는 거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시작된 거니까.

19년을 다닌 회사였다. 이 퇴사의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팀원들에게는 뭐라 말해야 할까. 나의 오랜 팀장님에게는또 뭐라 말해야 하나. 어떤 말을 해야 19년 만의 퇴사가 설명될까. 지금의 내 일을 모욕하지 않으면서 답을 하는 게 가능할까. 퇴사 후에 무얼 할 거냐 물으면 또 뭐라 대답해야 할까. 뭘하고 싶은지 찾기 위해 그만둔다는 말은 마흔두 살에겐 무리일까. 더 늦었다가는 계속 이 자리에 머물 것 같다는 그 불안감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지하철 위로 붕붕 떠다녔다. 갑자기 지하철 안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지하철이 이제 한강을 건넌다는 신호였다. 한 정거장후면 회사. 그때였다. 야속할 만큼 푸른 하늘 위로 갑작스럽게
‘파리‘라는 단어가 둥실 떠올랐다.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단어는 문장으로 부풀어 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 읽어주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사람의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원한다고 엄마는 데이빗에게속삭이곤 했다. 이야기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그래야만 이야기 속의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건너

어째아들 데이빗은 건강하지 못하다. 심장이 온전치 못하다. 엄마와 아빠는 계속 데이빗에게 "뛰지 마라"라고 한다.
외할머니는 그런 데이빗에게 다른 말을 해준다. "데이빗아,
데이빗아, 너는 아주 스트롱 보이야."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다. 우리 스스로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못났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 건네는 "너는강해, 너는 아름다워"라는 말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수 있다.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다.

영화 제목을 ‘미나리‘로 정한 것 역시 그런 이유일 테다. 미나리는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다. 물만 가까이 있다면쑥쑥 잘 자란다. 미나리를 알아보고 다가서는 순간, 미나리는 특유의 알싸한 향을 우리에게 내뿜는다. 모든 존재가 특별한 곳에 쓰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쓸모없는잡초‘라는 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것 자체가 쓸모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높은 산을 집요하게, 끝까지 오르려는 사람. 그리고 여러 산을 두루두루 보면서 경험을 쌓는 사람. 앞쪽을 ‘높은 산‘이라 하고, 다른 쪽을 ‘여러 산‘이라고 해보자. 어느 쪽이 더낫다고 할 수는 없고, 마음속 질문이 이끄는 곳으로 갈 뿐이다. ‘높은 산‘과 ‘여러 산‘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높은 산‘은 다양한 산을 부러워하고, ‘여러산‘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신의 성향을 한심해하며 하나의 확실한 정답을 간절히 원한다.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잘 알고 있다. 백 년 전의 일처럼 모든 게 까마득하지만 술을 마시는 그 순간에는 빙하가 녹기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빙하가 멋진 이유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인생은 슬프기도 하다. 알프스 풍경을 담은 <여덟 개의 산>은 무척 아름답지만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슬프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봉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목표처럼 보이지만, 어떤 봉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에트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되든 여덟 개의 산을헤매는 사람이 되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빙하처럼 계속 녹고 있다는 사실. 삶은 점점 무거워지고, 무거운것이 가라앉듯 어디론가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 옆에 함께흘러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을, 특히 나무를 사랑했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나무들 하나하나가 고유한 형태와 특별한 상처를 가진 모습으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모습을 가만히 목격하며 감탄하곤 했다. 프뢰벨이 그와 만났다면 아마 ‘고유하게 예쁜 꽃들이 모여 삶을 사는 공간‘으로서의 유치원에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최근『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이라는 책을 읽고 현재 내 삶이자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새삼 깨달았다. 헤세가 말하듯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생각하는 나무들, 우리가 귀담아듣지 않아도 항상 우리보다 더 지혜로운 대지와 자연. 우리는 뜰로, 정원으로, 자연으로 나가는 법을왜 잊었을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을 때, "한국에 친정이 하나더 있다고 생각하게"라는 말로 큰 위로를 주신 분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되새겨도 여전히 따뜻하고 뭉클한 말이다. 친정親庭이라는 말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친한 뜰‘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뜰에서 컸고, 뜰에서 힘을 얻는 존재들이다. ‘친한 뜰‘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풍경이 있는 건 축복이고, 우리 어른들은 그런 축복을 더 많이 누리며 컸다. 나는 아파트나 빌라가 동네를모두 먹어치우기 전에 성인이 되었으므로 정원이 있는 집에서 꽤 오래 살았다. 거기서 개미한테 과자도 주고, 구름이 변하는 풍경을 보느라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대추도따 먹고, 엄마가 꽃사과를 따서 술 담그는 것도 보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분꽃 씨를 따 모으며 놀았다. 작은 뜰이었어도 도시 꼬마에게는 운동장만 한 우주였다. 유치원 정원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동네 공원이든, 세상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작은 생명들이 오래도록 든든하게 기억할 친한

"엄마, 이음이는 세 밤 자면 던져져."
최근에 들은 귀여운 문장이다. 세 밤 자면 유치원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독일 유치원에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라우스부르프(Rauswurf, 실제 발음은 ‘라우스부어프‘에 가깝다), 혹은 라우스슈미스 Rausschmiss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졸업하는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주는 것이다. 물론바닥에 폭신하고 두터운 매트리스를 겹겹이 깔아두고.이것이 독일 유치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다.

라우스부르프 Rauswurf는 ‘던짐‘을 뜻하는 명사 부르프Wurf에 ‘바깥쪽으로‘라는 의미의 접두사 라우스raus가 붙은말이다. 원래는 자의에 반해 쫓겨나거나 그만두게 되는일, 즉 퇴출이나 제명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말 그대로 졸업하는 아이를 밖으로 던져주는세리머니를 지칭한다. 베르펜(werfen, 실제 발음은 ‘베어펜‘에가깝다)과 슈마이센schmeiken은 모두 ‘던지다‘라는 뜻의 동사고, 여기에서 ‘밖으로 내던짐‘이라는 의미의 라우스부

rin이소라는 단어가 있다. 어린 새가 자라서 둥지를떠나는 걸 말한다. 뜻을 알게 된 순간 이 단어는 내 마음속에 둥지를 틀었다. 까치집 같은 아이들 머리통을 보며자주 그 단어를 떠올린다. 아름답고 슬픈 단어다. 미소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라 어쩔 수 없이 작은 미소를 짓게 된다. 나중에 우리가 따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면 첫째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눈동자에 원망을 가득 담아 슬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년 말, 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의 부족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식품 산업은 발포성 음료를 만들거나 보존하지 못하고, 도축 전에 돼지나 닭도 기절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재차 놀랐다. 이 모든 게 체셔와 티스사이드에 있는 비료 공장 두 곳이 갑자기문을 닫아서 생긴 일이었다. 두 공장은 영국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공급했는데, 원래 이들의 목적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버렸다.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암모니아는 천연가스로 만들기 때문에한 물질의 가격이 요동치는 바람에 전혀 무관해 보이던 다른 물질이갑자기 부족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 정말로 경악할 일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경제학자 레너드리드 Leonard Read가 1958년에 쓴 유명한 에세이 <나, 연필, Pencil>을 살펴보자. <나, 연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연필이다. 읽고 쓸 줄 아는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이런 식으로 리드는, 아니 연필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연필처럼 매우 간단한 물건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자들부터 제조 공정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발전소 근무자들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나(연필)의 탄생에 참여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라고 리드는 썼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상용품이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토록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집필된 <나, 연필>은 특히 두 번째 교훈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이 에세이를 예로 들면서 소련 경제학자들의 주장, 즉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잘못됐다고 반격했다.

물질 세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단단히 뒷받침한다. 이 세계가 없다면 당신 손 위의 아름다운 스마트폰은 작동하지 않고, 전기차는 배터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물질 세계는 당신에게 화려한 집을 제공하지는못하지만, 당신의 집이 계속 버티고 서 있도록 지탱한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당신을 따뜻하고 청결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

물질 세계에서 당신은 낯선 이름이지만 매우 중요한 회사들, 예를들면 CATL, 바커 Wacker, 코델코Codelco, 사강Shagang, TSMC, ASML을만날 것이다. 이 이름들은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월마트Walmart, 애플Apple, 테슬라 Tesla, 구글Google 같은 비물질 세계의 회사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현대 경제에 가장 잘 숨어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그들의 똑똑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물질 세계의 이름 없는 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물질 세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섯 가지 물질이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물질들이 빠진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코발트가 없어도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네오디뮴 자석이 없어도 헤드폰과 전기모터를 만들수 있다. 부피가 더 크고 덜 효율적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물질들은 대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모래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모래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모래는 실리카가 주성분이지만, 열대 해변의 흰모래는 바닷조개와 산호의 잔여물로 만들어졌으므로 성분이 확연히 다르다. 카리브해나 하와이의 아주 깨끗한 바다에 가면, 파랑비늘돔의 배설물 안으로발이 쑥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파랑비늘돔은 산호를 먹어서 영양분을 취한 다음, 탄산칼슘을 해저에 배설한다. 열대 해변이 희고 따뜻할수록 그곳의 모래는 파랑비늘돔 배설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들 사이에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계에서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경계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고단한 경계인이 얻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나누고 싶었다.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방향이다. 이들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지, 우리는 어느쪽을 향해 걷고 있는지.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고, 단어는 그 작품의 중요한 기본 재료다.

파이어아벤트 Feierabend‘는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다. 축제나 파티의 의미가 담긴 파이어 Feier와 저녁이라는 뜻의 아벤트Abend가 합쳐진 말이다. 일을 마칠 때 사람들은 먼지 묻은 손을 툭툭 털면서, 혹은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Feierabend! (파이어아벤트!)"라고 외치고, 동료들은 서로에게 ‘수고했어, 잘 쉬어!‘라는 의미로
"Schönen Feierabend! (쇠넨 파이어아벤트!)"라는 인사를 건넨다

훈색이라는 이름의 색이 있다. 노을이 질 때 하늘에 보이는, 분홍에 노랑이 섞인 색이다. 색이름에 저런 따뜻하고 훈훈해 보이는 글자를 넣은 이유도 아마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그동안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에 소녀 시절갈색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팔레트 하나를 다 돌았는데,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은 훈색이다." 저물녘에 세상만사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색, 인격이있다면 아마도 가장 다정할 것 같은 색.

Servus, 제르부스라는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비슷하게 서로에게 "I‘m your servant", 즉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치 신처럼 여기고나를 낮추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진다는 사실은 참 뭉클하다. 특히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전국 갑질 자랑으로 도배된 사회면 뉴스에 지친 마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갑이 되길 바란다. 을, 병, 정도 모자라 무기경신임계까지 물고 물리는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조금 더 앞쪽에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고개가 치켜올라가 거북목이 교정되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 직종에 있는 분들에게 유독 무례하게 굴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공분을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고 살필게요"라고 말하는 인사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활짝 웃으며 온마음으로 쓰는 인사다.

gefallen 이라는 동사도 휘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휘도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빛의 굴절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존재와 우리 인생 자체가 이렇게 무수한 굴절을 통해 닿아오는 관계 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gefallen 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아름다운 동사다. 인간이란 나 혼자 빛날 수 없고, 애초에 빛이란 건 내 안에 있지 않다. 내가 당신을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 주체와 객체라는 조금은 차가운 관계를 이렇게 한 번 빛처럼 꺾어보는 일. 세상의 모든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
Das Bild gefällt mir.
그 그림이 나를 기쁘게 하네요.
Gefällt dir das Buch?
그 책이 당신 마음에 드나요?

펼쳐진 자연 속에 인간은 개미만 한 모습으로 등장하곤한다. 겸재 정선이 박연폭포를 그린 그림에서 작고 귀여운 조상님들을 한번 찾아보시길. 그렇게 기본적으로 세상에 놓인 자아의 사이즈가 작다. 게다가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가는 사고방식에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윤리도 결합해 두었다. 큰 것부터, 어른 먼저... 그래서인지나를 뒤로 물리고 공동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 나이라는숫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다.

반면에 이곳 독일에서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배치한다. 내가 중심이고 주변부는 뒤로 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부터 셈하고 작은 단위부터 신경 쓴다. 나이 차이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어린 사람을 중요하게 챙긴다.

그렇기에 근무시간 외의 업무 전화가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것이고, 밥을 먹다가도 업무상 중요한 전화가오면 (애초에 거는 사람이 문제다) 뛰쳐나가 받았던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무척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친구 사이에 약속을 자주 취소한다는 점이다. 작은 나의 일상이 큰 힘에 의해 통제받는 위계적인 사회에서는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늘 벌어지기 때문에, 사적인 약속이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잦다.
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이유를 들어 약속을 취소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특히 주체적인 자아를중시하는 사고방식의 독일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것이다. 스스로 맺은 약속을 저렇게 쉽게 철회하다니.

한편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을 쓴 김미소 작가의 눈에는 ‘격리‘와 ‘요양‘의 차이가 보였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격리‘라는 단어를 주로 썼는데, 일본에서 확진되어 안내문을 받았더니 ‘요양‘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고. 우리가 세상에 스스로를 어떤순서로 놓고, 우리 사회가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사는지 실감케 하는 단어들이다. 동양이라는 한 단어로 게으르게뭉쳐놓기에는, 동양 사회 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있음을 알려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잊을 수 없는 증인』에 유대인 랍비 부남 Bunam의 말을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 필요한 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오른쪽 돌에는 ‘세상은 나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왼쪽 돌에는 ‘나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새겨져 있다.""
나는 우주이기도 하고 먼지이기도 한 존재다. 그때그때 주머니에서 적절한 돌을 만지작거리며 사는 지혜가필요하다. 왼쪽 주머니의 돌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