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 읽어주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사람의 상상력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원한다고 엄마는 데이빗에게속삭이곤 했다. 이야기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그래야만 이야기 속의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건너

어째아들 데이빗은 건강하지 못하다. 심장이 온전치 못하다. 엄마와 아빠는 계속 데이빗에게 "뛰지 마라"라고 한다.
외할머니는 그런 데이빗에게 다른 말을 해준다. "데이빗아,
데이빗아, 너는 아주 스트롱 보이야."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다. 우리 스스로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못났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 건네는 "너는강해, 너는 아름다워"라는 말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수 있다.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다.

영화 제목을 ‘미나리‘로 정한 것 역시 그런 이유일 테다. 미나리는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다. 물만 가까이 있다면쑥쑥 잘 자란다. 미나리를 알아보고 다가서는 순간, 미나리는 특유의 알싸한 향을 우리에게 내뿜는다. 모든 존재가 특별한 곳에 쓰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쓸모없는잡초‘라는 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것 자체가 쓸모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높은 산을 집요하게, 끝까지 오르려는 사람. 그리고 여러 산을 두루두루 보면서 경험을 쌓는 사람. 앞쪽을 ‘높은 산‘이라 하고, 다른 쪽을 ‘여러 산‘이라고 해보자. 어느 쪽이 더낫다고 할 수는 없고, 마음속 질문이 이끄는 곳으로 갈 뿐이다. ‘높은 산‘과 ‘여러 산‘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높은 산‘은 다양한 산을 부러워하고, ‘여러산‘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신의 성향을 한심해하며 하나의 확실한 정답을 간절히 원한다.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잘 알고 있다. 백 년 전의 일처럼 모든 게 까마득하지만 술을 마시는 그 순간에는 빙하가 녹기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빙하가 멋진 이유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인생은 슬프기도 하다. 알프스 풍경을 담은 <여덟 개의 산>은 무척 아름답지만 솟아 있는 봉우리들은 슬프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봉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목표처럼 보이지만, 어떤 봉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에트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되든 여덟 개의 산을헤매는 사람이 되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빙하처럼 계속 녹고 있다는 사실. 삶은 점점 무거워지고, 무거운것이 가라앉듯 어디론가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 옆에 함께흘러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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