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물질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순수한 힘으로 보았다. 힘이 커지면 어른이 되고 힘이 완전히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더욱 위대한사라지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죽는 것이다. 힘은 좋은 공기와 물,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강해지고 반대의 경우 약해진다. 권력자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많이 받는 사람이고 또 그 힘을 잘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곡의 음악이 나라는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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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상의 전개를 계속 따라가기 전에 먼저 끝나가는 시대의 큰 업적들에 꽉 달라붙어 있으면 정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는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겁서는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인류는 전혀 패자의 상태에 있지 않은데, 문제는 포기하려 하지 않거나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미 스스로 포기하고 변화하고 돌연변이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라고 지적한다.

친구 중 한 명이 8살짜리 딸내미에게 이 대목을 읽어주자, 그딸내미는 푸지 씨가 왜 당장 그 회색 신사를 쫓아내지 않느냐면서
"그런 멍청한 말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며 분개했다. 그친구는 내게 딸의 말을 들으면서 컴퓨터가 시간을 많이 아낄 수있다는 영업사원의 말에 넘어가 자신이 첫 컴퓨터를 구입한 날이떠올랐다고 전해주었다. 그녀는 그 뒤에도 시간을 아껴준다는 기기들을 계속 사들였는데, 어느 날 가만 생각해보니, 매일 하루가끝날 때면 시간을 아껴준다는 기계들을 그렇게 많이 쓰는데도 어찌 된 까닭인지 이전보다 남는 시간이 더 줄었더라는 것이다. 책읽을 시간도 없고, 뜨개질할 시간도 없고, 친구와 수다 떨 시간도없고..…. 약간 창피한 마음에 그녀는 딸에게 이런 면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정말로 믿는다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모 같은 아이만이 어른들의 시간을 시간도둑들의 손아귀에서 되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미하엘 엔데의 이야기에서 시간도둑들은 두 가지 확실히 입증된 수단을 활용한다. 하나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일인지 열변을 토하는 것이고, 하나는 사람들이 주어진 삶의 시간을 대부분 이미 낭비해버렸으며 이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계산해 보이면서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호라 박사는 모모를 자신의 가슴속으로 인도하여, 진정한 시간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보여준다. 모모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순간순간마다 우주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귀중한삶의 시간이 생겨난다는 것을 경험한다. 아주 개인적이고 독특한시간은 매시간 새로운 꽃의 모습으로 피어나는데, 그 어떤 꽃도다른 꽃과 같은 모습이 아니다.
호라 박사는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있듯이,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어진 과제를 그냥 빨리빨리 처리해버리는 해결 모드’있을 때 나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삶의 시간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감각을 차단해버린다. 반면 산책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에로틱한 만남을 갖는 등등, 우리가 어떤일에 온전히 몰두해서 ‘지금 여기‘를 강하게 지각하느라 나를 별로 느끼지 못할 때는 당장은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을지 몰라도 자기 지각과 더불어 시간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 사실은그런 몰입을 통해 우리 지각의 틀이 확장된다.

마르크 비트만은 시간감각의 신비와 의식의 신비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는 시간이다" 라는 것이다. 호라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들은 모두 사라져버린단다. 장님에게 무지개의 예쁜색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심장이 뛰긴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눈멀고 귀먼 가슴이 수두룩하단장 김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시간이 없어요.‘ 오늘날인간들은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시간‘은 오늘날 인간의 최대 관심사다. 시간이 없다고 말할 때 그들은 자신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말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또한
‘나는 영혼이 없어요‘ 또는 ‘나는 생명이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는 점을 깨닫는다면 그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되찾을 기회를 얻는다.

비트만은 "지루함은 불쾌한 방식으로 자기 지각과 시간감각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지루할 때 우리는 아직 시간이 주는 질적인 깊이에 열려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자기 삶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루함은 더 깊은 지각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루함을 감수하고 견디면 우리는 한순간 우리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경험하는 강렬한 현재로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구입하는 물건을 구입하며, 종종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대로 느낀다. 일의 속도를 서로 맞추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사회적 인프라 구조는 사회구성원들을 어릴 때부터 서로 비슷해지게끔 한다. 학교, 패션 산업, 음악 산업, 텔레비전 시리즈 따위가 그런 역할을 하고, 성장이복지를 만들어낸다거나 시간이 돈이라거나 하는 반복적으로 주입되는 신조들도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 생각들은 부지불식중에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생활방식과 우리의 감정에 스며든다.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는 그의 에세이 <정신적 인프라 구조)에서 성장이라는 생각을 예로 들면서, 문화적인 신조가 우리의 사고와 정신뿐 아니라 우리의 몸매까지 결정하는 면모를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우리는 공동체 차원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계발하고 스스로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더 좋은 관계, 더 멋진 몸매, 더 높은 지위, 더 큰 자동차를 원한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못하는 사이 제한 없는 성장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되고, 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것이 집단의식을 이루는 힘이기때문이다.
인간은 열린 체계다. 늘 스스로에게서 자극을 내보낼 뿐 아니라외부에서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감정적으로, 생각으로, 신체적으로 말이다. 이런 사실 자체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토대로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다.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미래를기준으로 현재를 생각하라고 권한다. 따라서 진정 어떤 모습으로살고 싶은지를 상상하고, 그러고 나서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것들을 곧장 실천하라고 말이다.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다.
비행기나 자동차 소음이 줄었으면 하는 사람은, 비행기 타는 일을줄이고 자가용은 없애면 된다. 바다에 물고기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제 10년동안 생선을 먹지 않으면 된다...

미래에 빗대어 현재를 꾸려갈 때 중요한 것은 혁신적인 제품을만드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를 덜 먹는 냉장고와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구식이 된 기술을 더욱 첨단을 달리는 이른바 환경친화적인 기술로전환하는 한, 우리의 문제는 더 나빠질 따름이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 지향적으로, 더 많은 상품, 더 좋은 상품, 더큰 집을 갖고 싶어 한다. 제아무리 환경친화적인 기술이라 해도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간다. 하랄트 벨처는 미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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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녀의 내적인 치수가 변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기존의 재료를 풀어서 다시 새로운 스웨터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탄생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전적으로 혼자서,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말이에요. 구멍에서 새로운것이 나왔어요. 정말 놀라운 것이요!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어요? 185킹스노스와 하인은 우리 문명의 새로운 스웨터를 아직 뜨지 않았다 - 또한 다른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두 사람이 뜰 수도 없는노릇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구멍을 메우는 대신에옛 스웨터의 올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프로젝트를 ‘탈문명화‘라고 일컫는다. 탈문명화라는 것은 야만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 문명의 그늘진 면을 인정하자는 뜻이다. 사람들이 주거공간을 잃고 기아에 허덕이는데 은행이나 구하는 문명, 사회복지체계가 망가지고 생물 종이 뭉텅이로 감소해가는 문명, 문화가 획일적인 소비재로 전락해 그 고유의가치를 잃어가는 문명을 말이다.
우리가 현재 과도기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옛날의 성공 이야기나 되풀이하며 기존의 익숙한 삶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때, 창조적인 ‘탈문명화‘ 과정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상황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문명의 지속 가능한 핵심을 생각하고, 그것을 현재의 따끈따끈한 인식과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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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야기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이 석기시대에 부족을 이루고 살면서공적인야기가 곧 우리다.
‘사회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용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처음부터 남들에 관해 소문을 퍼트리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도덕적으로 옳고 그르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릇된 행동은 벌하고 옳은 행동에는 상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부족의 모든 구성원이 협력하도록 유도하고 부족을 감시해왔다.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자극하는 기쁨과 분노의 감정은 인간의 생존에 결정적이었다. 인간은 본래 이런 이야기와 감정을 즐기도록 타고난 존재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이야기로 경험한다. 뇌는 우리가 사는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 동지와 악당을 채워 넣는다. 뇌는 혼란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단순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바꾸고 그중심에 주인공(근사하고 소중한 나)을 위치시킨다. 이때 주인공은일련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이것이 삶의 플롯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 교수 조너선 하이트 Jonathan Haidt는 뇌가 ‘이야기 프로세서‘ 이기는하지만 ‘논리적인 프로세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우리의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나오듯이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천재들만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미 그것을 만들고있다. 단지 더 잘 만들려면 그저 자신의 내면을, 마음 그 자체를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질문을 던지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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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인간은 ‘Maker(뭔가를 만드는 사람)‘가 된다.겝서는 ‘make‘와 ‘magic’이라는 말의 어원이’magh‘임을 지적한다. 이것은 ‘mechanic‘과 ‘machine‘의 어원이기도 하다.
겝서에 따르면‘magh‘는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소망과 관계된 말이다. 자연과의 통일된 의식에서 떨어져나온 사람은 어떻게든 자연을 제어해야 한다. 불안과 혼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몰아내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삶에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

그러므로 정리를 해보자. 사회적인 위기는 구조적으로 볼 때 개인적인 위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좋은 생각은 대부분 위기의 시기에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도, 종종은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비로소 미지의 것과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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