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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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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동기 중에 나보다 12살이 많은 언니가 있었다. 띠동갑인.

그 언니는 참말로 시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났다.

같은 꽃을 보면서도 해석하는 방향이 달랐고,

같은 눈을 맞으면서 걸어도 서로 다른 눈을 맞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우연히 만난 남자 동기와 걷고 있으면 난 어느새 그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스무 살인 나보다도 훨씬 더 감성이 예민해서

어떤 때는 기발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했다.

결국 그 언니는 시인으로 등단을 해서

지금도 시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언니가 생각났다.

그림이 숨겨두고 황경신이 찾아낸 이야기들.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서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냈는데

한두 편은 재미있네,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읽었지만 뒤로 가면서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 속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 보이지 않던 희망, 잡을 수 없는 사랑 같은 걸 찾아내는 재주가 정말 뛰어나서

마흔아홉의 감수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수성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루키의 에세이와 함께 읽어서 더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이면서 익살스러우면서 깔끔한 하루키의 글에 비해 너무 상상으로만 쓴 글이다 보니...

그리고 어쩌면 내 감성이 이미 소녀를 지나 중년 아줌마 대열에 선 지 한참이다 보니

이런 상상이 너무 낯간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기말고사를 치르는 바쁜 틈에 읽어서 그랬는지

이별도 슬픔도 성장도 사랑도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책제목처럼 눈을 감으면 상상이 한자락 펼쳐져야 하는데 그냥 눈을 감고 있고 싶었다.

그래서 상상으로 쓴 글은 건성건성 읽고 그림은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했다.

그리고 그림 옆에 붙은 설명을 열심히 읽었다.

그제야 나름 미술관에서 온 듯 새로운 그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꺼번에 몰아서 읽지 말고 

특정 그림을 떠올리며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만 찾아 읽으면

어쩐지 새로운 느낌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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