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제주 사람이다. 

남편과 사귀고 있을 때 제주도에서는 육지 출신 며느리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자기는 둘째기 때문에 집에서 허락하실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잘 몰랐다. 

 

결혼을 하고 제주에 드나들기 시작하는데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내 귀에 아주 낯설게 들리는 말이 있었다.

'육지것(껏)'

제주 특유의 사투리도 아닌 그 말은 계속 내 귀에 거슬렸다.

바로 육지에서 시집 온 나를 포함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제주 사람들의 언어와 심성, 문화를 많이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 단어에 그리 민감하게 굴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불편하다. 

왜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육지 '것'으로 부르게 된 걸까?

남편은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다는 말만 했다.

 

 

<지슬>을 보았다.

남편이 제주 사람인지라 <지슬> 소식이 들릴 때마다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원주에서도 상영을 했다.

딱 한 번 예약을 받아서 상영했는데 전석 매진이 되었다고 한다. 

 

<지슬>을 보면서

아, 저렇게 육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착취를 당하다 보니

'육지것'이 될 수밖에 없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라서 많이 어둡고 슬플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많이 슬프지만 동시에 많이 웃기고 신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당시 한 동네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고 겪는 4.3은

뉴스나 책으로 접하는 것보다 더 현실감이 있으면서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영화를 만든 오멸이라는 감독이 대단해 보였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웃기면서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열 받는 이야기를 고성이 아닌 웃음으로 풀어주는 재주...

거기다가 흑백 영화이기까지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는 다들 숙연한 분위기였다.

 

<지슬>을 보면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우리말 자막이 있는 우리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제주도 사투리는 제주 사람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렵다는 얘기.

그런데 난 제주 며느리 16년차가 되다 보니

제주 사투리가 귀에 쏙쏙 들어와서 자막을 안 보고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어서 흐뭇.^^

 

많은 사람들이 <지슬>을 보았으면 좋겠다.

슬픈 역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는 영화니까...

 

감자를 제주 말로 지슬이라고 한단다.

땅에서 나는 열매라는 한자어 지실(地實)을 제주 사람들은 지슬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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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013-04-1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서 보신거예요? 언니 글 보니까 저도 보고싶다는...
이제 더는 상영을 안하는 걸까요?

소나무집 2013-04-10 17:32   좋아요 0 | URL
공무원 노조랑 시민단체 주체로 예약 받아서 상영한 거래요.
롯시에서 했는데 한 번 더 했으면 좋겠어요.
또 보게^^

BRINY 2013-04-1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출신이지만, 어릴 때 이주해가서 제주시에서만 살다 대학 입학을 계기로 다시 서울로 나온 지인이 있는데, 제주사투리를 거의 모르더라구요.
토박이 제주민들 시각으로 보면 그렇겠구나 싶습니다.

소나무집 2013-04-13 10:19   좋아요 0 | URL
제주 사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우리 삶이 들이 있는 말이 많아요.
육지 사람들의 삶에서는 사라진 것들도 많고요.
영화 보고 와서 시어머니께 전화로 4.3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 초등 2학년 때 같이 노래 부르던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잡혀 가는 걸 봤대요.
선생님은 그날 돌아가셨구요.

꿈꾸는섬 2013-04-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었는데 ㅜㅜ 울 동네는 너무 빨리 내렸어요.ㅜㅜ

소나무집 2013-04-13 10:21   좋아요 0 | URL
우리 동네도 딱 한 번 상영했어요.
역사니 뭐니 하는 걸 떠나서 영화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

순오기 2013-04-1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봐야는데 여직 못봤어요.
우리집 가까운 영화관에서는 안해서 시내 중심가로 진출해야 되는데...
지실이 지슬로 불린거군요.

소나무집 2013-04-18 12:38   좋아요 0 | URL
기회 되면 보세요.
제주도에 대해 좀 이해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