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세번째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다 눈에 띄어 한두 권씩 빌려오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물론 만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까지도 홀딱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좋은 책을 보면 당연 사고 싶어지는데 시리즈가 길다 보니 망설여야만 했다.
저자가 20권까지 집필할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사야 할 테니...
하지만 결국 1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온 18권까지 다 사들이고 말았다.
덕분에 지난 겨울 방학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 식구가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조선 왕들을 맘껏 씹으며(?) 따뜻하게 보냈다.
비록 만화책이긴 하지만 하루에 두 권 이상 읽기가 힘들 정도로 내용이 많다.
사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다 읽는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전에도 어린이 조선왕조실록(주니어김영사)과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웅진)을 뒤적여본 적이 있긴 한데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다.
어린이용은 많이 엉성했고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은 딱딱하고 좀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엉성하지도 않았다.
바로 요거다 싶을 정도로 역사를 읽는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만화라서 가볍게 집어들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얘기.
역사를 가감없이 보여주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역사 상식들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왕과 신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고
인물들의 캐릭터를 그림에 잘 녹여내서 만화를 보는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고
중간중간 들어간 코믹한 그림과 멘트는 개그콘서트의 풍자를 보는 듯하고
조선과 현대 정치사를 넘나드는 작가의 역사 해석 또한 날카롭다.
조선 시대 정치에서 요즘 정치판의 모습이 마~안이 겹쳐졌다.
우리 정치인들이 역사 공부만 제대로 해도 보다 나은 대한민국이 될 듯 싶은데...
조선 왕들도 경연을 통해 옛 성현과 앞선 역사에서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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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아이에게 들은 역사를 수학보다 더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겹게 연대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결국 멀리하고 싶어진다는 것.
흐름이나 맥락을 모른 채 시험을 위해 무조건 연대를 외우는 것은 역사를 지겹게 만드는 지름길인 듯.
먼저 흐름을 알고 나면 연대 외우기도 그닥 지겹게만 느껴지지 않을 텐데.
조선왕조실록을 1권부터 차례로 읽다 보면 조선의 흐름이 보이고
유교의 통치 이념 아래에서 밀고 당기는 왕과 신하들의 모습이 아슬아슬 흥미진진하다.
나라를 망쳐먹은 위험한 왕도 여럿 있었는데 500년이나 이어오면서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조선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중학생은 2학년부터 역사를 배우는데
그 시작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