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독립을 했다. 지난 봄 남편 없이는 운전을 못한다는 글을 쓰고 일주일이 안 되어 운전 독립을 했다. 4월 2일 날짜 기억. 독립을 위한 첫 행선지는 도서관이었다. 남편 없는 토요일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겨서 택시 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무조건 "엄마 차!"를 외쳤다. 엄마는 할 수 있다며 차키를 들고 뛰어나간 아이들을 따라 얼떨결을 운전석에 앉았고 도서관까지 가서 무사히 주차를 하고는 운전 독립을 외쳤다. 

초보운전을 뗐다. 노란색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채 늘 다녀서 익숙한 동네만 뱅글뱅글  다니던 나는 한 달이 지날 무렵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여 초보운전 딱지를 뗐다. 운전에 자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자꾸 위험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들고 추월해가고, 신호등 앞에서 조금만 머뭇대면 경적을 울리던 차들. 초보니까 좀 봐주고 챙겨줄 줄 알았는데 익숙한 운전자들에게 초보는 방해꾼인 듯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초보운전을 떼고 나니 오히려 마음 졸일 일이 줄어서 참내!

신호등과 차선 바꾸기가 어려웠다. 운전을 시작할 때 가장 겁이 났던 것은 신호등. 특히 직선이 아니라 좀 삐닥하게 생긴 사거리나 오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저것이 내 신호인지 아리송~ 앞차가 있으면 대충 따라갔지만 앞차가 없으면 꾸물대다가 뒤차의 경적 소리를 들으며 슬금슬금 출발~ 그리고 어렸웠던 건 차선 바꾸기. 차선을 바꿀 수 없어서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는 초보들의 경험을 듣곤 했는데 역시나 나도 어려웠다. 사이드미러를 보지 않고 차선을 바꾸려다 빵빵빵~ 간발의 차이로 앞서가는 차와 부딪칠 뻔한 경험을 두어 번하고는 사이드미러를 철처히 보는 습관을 들였다. 

앞만 보고 달렸다. 두어 달은 정말 앞만 보고 갔다. 사이드미러나 백미러 같은 걸 볼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남편이 옆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운전을 하다가 내 의지대로 운전을 하려니 늘 초긴장 상태. 그래서 아이들이 뒤에 앉아서 떠들기라도 하면 정신이 사나워서 "조용히 해!"를 외쳤고, 운전하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건 꿈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석 달째가 되자 사이드랑 백미러도 보였고,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왔고, 어느날부턴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꽃님 덕분에 시외로. 내 차로 가면 35분이면 되는 치악산 근처 마을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갔는데 독립을 하고도 1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배꽃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넌 충분히 갈 수 있어!" 이러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처음 시외로 가는 운전대를 잡았다. 내내 배꽃님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지만 30분이 3시간은 되는 듯했다. 제한 속도 60킬로를 지키며 가는 내 뒤를 바짝 따라붙는 대형 차들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던 기억~ 지금도 뒤에서 큰 차가 따라오면 여전히 식은땀이 난다.  

운전 독립한 지 6개월째. 8월부터는 원주에서 가장 오지라고 하는 곳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데 처음엔 한숨만 나왔다. 동네 운전도 버벅대고, 가본 적이 없는 길은 절대 사양하는 내가 1시간 거리의 그곳을 갈 수 있을까? 더구나 양안치고개, 소리재고개 등 S자 코스로만 이루어진 이름난 고개들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리고 비는 왜 그리도 많이 오는지... 하지만 첫날 딱 한 번 남편과 동행한 후 두 달째 잘 넘어다니고 있다. 꼬불꼬불한 그 산을 넘어갈 땐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이런 생각이 들어 얼마나 힘을 주는지 늘 다리와 목이 뻐끈뻐끈하다. 그래도 지금은 뒤에서 큰 화물차들이 바짝 붙으면 비켜주면서 내 페이스대로 가는 여유도 생겼다.

배꽃님네 놀러가다. 운전을 하면서 가장 좋은 일은 배꽃님네 집에 놀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그녀가 살고 있었지만 배꽃님이 아무리 놀러오라고 해도 쉽게 나서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운전을 하고 한 번 가본 그녀의 집은 정말 가까웠다. "차 마시러 갈게~" 하고 나서면 찻물이 끓는 동안 도착할 수 있었으니.

그래도 운전은 어렵지만. 운전을 하고 들어오면 피곤해서 누워 있곤 한다. 운전하는 동안 늘 조마조마하고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서 주차를 할 때까지 긴장을 하니 몇 배로 더 피곤한 듯싶다. 20년 동안 운전을 한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운전이라고 하지만 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운전을 하러 나설 때면 심호흡을 하고, 후진 주차도 어렵고, 아직 밤운전은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기계 앞에만 서면 소심해지는 내가 그 큰(?) 기계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고, 일을 하러 다닐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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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1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무면허 아줌마는 저런 감정에 공감할 수 없어 오직 박수만 쳐드려요!!
장하십니다~~~~~ 원주 토지모임 번개쳐도 되겠어요.^^

소나무집 2010-09-18 07:08   좋아요 0 | URL
님도 면허 따세요. 해보니 할 만해요.
원주에 진짜 오실 건가요? 배꽃님은 긴장이 된대요.^^

토토랑 2010-09-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축하드려요~ 저두 빨랑 운전 독립을 해야 하는데.. 요원하기만 하네요 ㅜ.ㅜ

소나무집 2010-09-18 07:09   좋아요 0 | URL
아직 독립을 못 하셨나 보네요. 저는 그 마음 천배 만배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슬슬 해보니 할 만해요.

BRINY 2010-09-1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운전면허 갱신하러 가서, 몇종이에요? 하고 질문받았을 때 대답을 못한 1인이 접니다 ㅎㅎㅎ)

소나무집 2010-09-18 07:1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음부터 나오네요. 사실 저도 그렇게 될 뻔했거든요. 남편이랑 떨어져 사니까 운전이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말에 남편이 일이 생겨서 못 내려온다고 해도 흥~

꿈꾸는섬 2010-09-1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소나무집님^^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을거에요.^^ 힘내세요.^^

소나무집 2010-09-18 07: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늘 조심조심하려고 해요. 자신감이 살살 붙을 때 사고날 수 있다고 들 해서요. 고마워요.

전호인 2010-09-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는 안전운전하세염.
너무 위축돼서 운전하다기 보다는 자신감있게 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위축되다보면 판단이 흐려지거든요.
안전운전하세요^^

소나무집 2010-09-21 08:18   좋아요 0 | URL
네~. 이젠 위축되는 단계는 벗어난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