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이 끝나고 3주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이 강의를 많이 기다렸다. 여러 출판사를 거친<토지>가 마지막 닻을 내린 곳이 바로 나남출판사였기 때문이다. 조상호 나남 사장님은 사모님과 따님을 데리고 오셨는데 박경리 선생님이 계실 때부터 늘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출판사 편집장을 비롯해 직원도 몇 분 와서 강의를 듣고 계셨다. 토요일 아침 원주까지 달려온 그분들의 정성을 30년 동안 나남을 일군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우리 센스쟁이 교장선생님은 나남 사장님을 위해 선물 두 가지를 준비하셨다며 강의 전에 드렸다. 하나는 나남에서 맨 처음, 아니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0순위로 나왔던 러셀의 <희망의 철학>이라는 책이었다. 교장샘이 전국의 중고서점을 다 뒤져서 구했다고.

 두번째 선물은 나남 사장님이 사모님과 함께 박경리 선생님을 뵈러 와서 이 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조상호 사장님은 교장샘이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으로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박경리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저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선생님의 영정 사진을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의 허락하에 고른 사진인데 사진을 찍은 이를 알 수 없었다고. 저작권 문제가 있어 사방으로 알아보았고 나중에라도 나타나겠지 했는데 아직까지 "내가 찍은 사진이오!" 하고 나타나는 이가 없다고... "저 사진 찍으신 분 빨리 연락하세요!"

사장님은 원주, 박경리, 토지와의 인연을 들려주시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했다. 친하게 지내던 김지하 시인과의 인연으로 따님 김영주의 <한국미술사>를 내게 되었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박경리 선생님이 <김약국의 딸들> 출판을 권해 왔다고 한다. 3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니 화제가 되지 않겠느냐며...  

그때까지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의 시작이었고, 언론 매스컴 전문 출판사에서 문학 책이 나온 계기였다고. 1993년 1월에 첫 출간한 <김약국의 딸들>은 지금도 소리 소문 없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란다. 자식의 일을 도와주었다고 마음이 움직인 걸 보면 박경리 선생님도 천상 '어머니'였구나 싶다. 

그리고 그후 따님 김영주가 솔출판사에서 나오다 인지 문제로 중단된 <토지> 출판 의향을 물어왔다고 한다. 솔직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 작품을 출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니 그런 제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나남 사장님은 그 제안이 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토지>를 출간했다. 성공이 보장되는 출판이었지만 당시는 박경리 선생의 책을 출판할 정도로 문학적 출판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하니 참으로 양심적인 출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동안 조지훈 전집을 출판하는 등 문학적 기반을 다져놓고서야 <토지> 출판에 당당할 수 있었다고.  

나남에서의 <토지> 출판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화제였단다. <토지>를 계약하면서 당시 출판계에서 당연시되던 인지 계약을 하지 않고 5년 동안의 선인세(5년 동안 김약국의 딸들을 판 대금과 맞먹는 금액)를 지급해 오히려 박경리 선생의 걱정까지 들었단다. 두번째는 당시 소설책 표지 형식을 파괴하고 양장본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박경리 선생의 권위를 최대한 살려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요즘 소설책에서는 양장이 당연시되고 있으니 자신이 유행의 선구자라며 껄껄껄...   

1969년 9월 <현대문학>으로 시작해서 1994년 완간되기까지 수많은 잡지와 출판사를 거치면서 방황(?)하던 <토지>가 이런 과정을 통해 나남출판사에 안착하게 된 것. 표지 제작 과정 등 <토지> 출판에 얽힌 감동스런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본인이 쓴 <언론 의병장의 꿈>이라는 책에 다 나온다며 학생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 주셨다.  (2010년 7월10일 강의)

  나남 사장님과 함께. 오른쪽에 붉은 빛깔의 옷을 입으신 분은 사모님.

 *** <언론 의병장의 꿈>은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님이 30년 동안 출판하면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출판가의 뒷이야기들이 아주 흥미롭고도 재미있어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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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과의 만남은 그런 인연이었군요~ 자식 일에는 어느 어미나 같은 맘인가 봐요.^^
언론 의병장의 꿈...기회되면 볼게요.

소나무집 2010-07-29 15:18   좋아요 0 | URL
나남 사장님이 박경리 선생 덕분에 돈도 많이 번 모양이에요.김여주 선생과는 지금과 여전히 누나 동생으로 지낸답니다.

꿈꾸는섬 2010-07-2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상세한 이야기 재밌어요.^^

소나무집 2010-07-29 15:18   좋아요 0 | URL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너무 길어져서 그만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