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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빛 김만덕 ㅣ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1
김인숙 지음, 정문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얼마 전부터 주말에 제주의 여인 김만덕을 다룬 사극이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는 한 번 보면 중독성이 있어 보지 말아야지 했는데 김만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주가 시댁이다 보니 제주 이야기가 들리면 귀를 세우고 눈을 크게 뜨게 되는데다, 아이들도 아빠의 고향 사람 이야기니 부쩍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제주에 갔다가 김만덕 기념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사라봉 올라가는 쪽에 모충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그곳에 작은 규모의 김만덕 기념관이 있었다. 작고 초라한 기념관을 보며 제주를 알린 인물 중 하나인가 보다 하면서 둘러본 적이 있다. 사실 그때는 김만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전재산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후 이 책을 사서 보았고, 김만덕에 관한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을 보면서 비로소 김만덕이 어떤 인물인지, 그녀의 삶이 왜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기념관에 갔더라면 더 꼼꼼하게 살피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들기도 했다.
김만덕은 지금도 제주 사람들에게 만덕 할매로 불린다. 지금이야 제주 하면 화려한 관광지의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30년 전만 해도 제주는 가난한 섬이었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 귤을 비롯해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한 덕분에 지금은 아무도 제주를 가난의 섬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가난의 습관 때문인지 제주 사람들은 정말로 검소하게 사는 이들이 많다. 우리 시어머니만 해도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거나 허투로 버리는 음식도 없고,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지도 않는 검소함이 몸에 배여 있다.
농사 짓는 집에서 태어나 김치도 서너 가지, 나물도 몇 가지씩은 상에 올라오는 집에서 자란 나는 처음에는 너무 검소한 제주의 밥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 며느리로 살다 보니 슬슬 제주의 역사가 보이고, 그런 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제주의 과거는 정말 가난했다. 육지에서 멀리 고립되어 있어 조선 시대 가장 험한 유배지이기도 했던 제주는 흉년이 들거나 태풍이 와서 농사를 망치게 되면 그냥 굶어 죽어야 했던 섬이다.
그런 제주에 김만덕이 있었다. 김만덕은 영조 시대에 태어나 정조를 거치고 순조 때 74세로 세상을 마감한 여자 상인이다.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유배 온 양반의 자식으로 그려진 드라마와는 다르다. 김만덕은 평민 집안에서 태어나 돌림병에 부모를 잃고 살아남기 위해 기생의 수양딸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 최고의 기생이 되었지만 다시 평민으로 돌아와 포구 근처에 객주를 열고 제주의 거상이 되었다. 그녀는 돈을 많이 모았지만 그 돈을 자신이 아닌 제주 백성들을 위해 썼다.
정조 시대 연이은 흉년에 굶어죽는 제주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을 때 김만덕은 전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쌀을 사들인 후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시절에 이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것이다. 자기 집안 불릴 줄밖에 모르는,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 불리는 삼* 집안에서 본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후 정조 임금에게까지 이 사실이 알려져 제주 여자는 육지로 나갈 수 없다는 당시의 법을 깨고 한양에 가서 임금을 만나고, 금강산 구경을 한 후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작가는 당시 재상이었던 채제공의 문집 <번암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김만덕이 여자인데다 기록도 그리 많지 않고, 한양이 아닌 제주 사람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의 말미에는 어린이책 사이트 <오른발 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가 쓴 제주에 깃든 작은 역사 편이 실려 있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역사와, 풍습, 문화도 배울 수 있어 아주 유익하다. 3학년 이상이면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