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의 여자(女子) 1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 잎의 여자> 중에서  -  문학과지성사

****  물푸레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규원 시인(1941~2007)

인물사진

경남 밀양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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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0-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자의 손바닥에요?

소나무집 2009-10-25 08:07   좋아요 0 | URL
네. 그랬다네요. 죽음 직전에요.

순오기 2009-10-2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택시인이 요 시에 홀딱 반해서 시집을 항상 들고 다녔다죠.^^

소나무집 2009-10-25 08:07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완도 여행 즐거우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