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의 여자(女子) 1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한 잎의 여자> 중에서 - 문학과지성사
**** 물푸레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규원 시인(1941~2007)
경남 밀양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