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리에서 - 나희덕
모난 돌은 하나도 없더라
정 맞은 마음들만
더는 무디어질 것도 없는 마음들만
등과 등을 대고 누워
솨르르솨르르 파도에 쓸리어가면서
더 깊은 바닥으로 잠기는 자갈들
그렇게도 둥글게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안개는 출렁거리지 않고도 말한다.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조각배는 뭍에 매어져 달아나지 못한다.
묶인 발을 견디며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타오르지도 녹아 흐르지도 않는 안개 너머로
막막한 어둠의 등이 보이고
종일 돌팔매질이나 하다 돌아가는
내가 거기 보이고
- 창비 시선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서
*** 정도리 구계등은 내가 완도에 살면서 가장 많이 가 보았고,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헤아려 보니 3년 가까이 사는 동안 40번은 간 듯. 누구나 그곳에 가면 시인이 되는 곳, 정도리는 그런 곳이다.
*** 그런데 난 왜 아직 시를 못 쓰고 있지? 그렇게나 많이 갔으면서...
추석날 다음 날 정도리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