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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싸이드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 ㅣ 창비아동문고 245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김중석 그림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책을 읽으며 '뭐 이런 학교가 다 있냐'는 말을 수도 없이 중얼댔어요. 학교 건물이 30층이나 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말이 되냐고요.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1층에 있는 화장실에 가고, 또 운동장에 나가 놀지만 별로 불만이 없다는 것도 이상해요. 원래 1층짜리 건물이 실수로 30층이 되면서 벌어진 해프닝인데 고쳐볼 생각도 안 하고 잘 적응해서 살아가네요.
그런데요 황당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교실로 배달된 컴퓨터 이야기를 읽으면서 바로 웨이싸이드 학교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답니다. 중력을 가르치기 위해 막 포장을 뜯은 새 컴퓨터를 30층 아래로 떨어뜨리며 주얼스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연필과 종이를 떨어뜨려도 아이들이 이해를 못 하던데 컴퓨터가 빠르긴 빠르네요." 그 아까운 컴퓨터를... 이게 보통 어른의 상식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웨이싸이드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거 다 눈치 채셨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요.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흔들어대는 이야기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어지거든요. 저는 그동안 어디서도 만나 본 적이 없는 학교와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정말 배꼽 빠지는 줄 알았어요. 웃다가 생각해보면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오면서 루이스 쌔커라는 작가에게 점점 흥미가 가는 거 있죠.
전학 온 벤자민을 선생님이 마크라고 소개해도 자기 이름이 아니라는 말을 못 한 채 한 학기를 보내고요, 이야기 시간에 노숙자를 데려와서 온갖 질문을 퍼부어대는가 하면 양말을 안 신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하고 동급으로 대우하는 아이들, 정말 멋지지 않나요? 급기야 맞춤법 시험을 잘 보기 위해 30명의 학생이 노숙자처럼 양말을 벗는데요 선생님은 야단을 치기는커녕 아이들이 양말을 다 벗을 때까지 기다려준다니까요.
아이들은 뭔가 잘못을 할 때마다 경고라는 단어 아래에다 이름을 써야 해요. 뭐 이런 정도야 우리 아이들 교실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다른 게 두 가지 있어요. 경고 밑에 이름을 세 번 쓰게 되면 12시에 출발하는 병설 유치원 차를 타고 집에 가야 되구요,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건 선생님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무조건 명령에 훈계나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잘못을 했을 땐 아이들과 똑같이 벌을 받는 선생님의 모습 멋지지 않나요? 주얼스 선생님도 경고를 세 번 받아 유치원 버스를 타고 일찍 집으로 가버렸어요. 아이들이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 어떻게 공부했을지 궁금하네요.
학교에 없는 19층 교실과 자브스 선생님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정말 뜨끔하게 만들어요. 자브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최고 점수인 '수'만 주기 때문에 멋진 선생님으로 통해요. 자브스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영부터 백만까지 가나다 순서로 쓰기, 먹지도 않고 공부만 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필요없고, 열한 시간 공부한 후 쉬는 시간은 기껏 이분밖에 안 되는 학교. 정말 끔찍하죠? 하지만 우리네 교육 현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브스 선생님 교실이랑 많이 닮았다 싶어요. 우리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지는 말아야겠어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기를 기대하지는 마세요. 책을 읽는 동안 킬킬대게 내버려 두세요. 웨이싸이드 학생이 되어 선생님을 멋지게 골탕도 먹여보고, 30층 교실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을 거예요. 웨이싸이드는 비록 상상 속의 학교지만 아이들이 진짜 가고 싶어할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4학년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