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출장 가는 남편을 배웅하느라 일어났더니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다. 거기다 천둥과 번개까지. 집안에 앉아 있어도 저절로 움찔움찔거리게 된다.
딸딸딸딸, 갑자기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오늘이 장날인가? 20일 맞네. 베란다 문을 열고 보니 노란 비옷을 입은 아저씨가 빈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더 일찍 부인과 함께 나와 장에 물건을 풀어놓고 혼자 돌아가는 아저씨인 모양이다. 장날이면 흔히 있는 풍경이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장에 사람도 없을 텐데 참 부지런한 농사꾼이지 싶다.
읍내를 벗어나면 바로 농사짓는 시골인지라 큰 도로에도 종종 경운기가 나타난다. 특히 장날은 새벽 4시만 되면 그 특유의 요란한 경운기 소리 때문에 잠을 깨곤 한다. 언젠가 장에 갔을 때 물어 보니 늦게 가면 좋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새벽 3시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난 그 시간에 잠밖에 잔 게 없는데...
소안도, 청산도, 신지도 같은 작은 섬에서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배를 타고 완도로 나온다. 언젠가 한번은 장날인 줄 모르고 병원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장을 보러 나온 김에 병원에 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바글바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날은 식당도, 미용실도 다 대목이다. 큰 맘 먹고 나온 작은 섬 사람들에게 완도읍은 없는 게 없는 도시이다. 이런 땐 완도에는 없는 게 너무 많아 불만 투성이인 내가 부끄러워지곤 한다.
시장은 깔끔하고 화려한 조명이 있는 도시의 대형 마트와는 다른 맛이 있다. 정해진 가격표도 없고 정해진 양도 없다. 깎아 달라고 하면 천원 정도는 바로 깎아주고,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늘 그려려니 하면서 주시는 순박한 이들이 오일장에는 있다. 애기라고 부르면서(이곳 할머니들은 당신보다 어려 보이면 무조건 애기라고 부른다.) 하나만 사 가라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손을 보는 순간 난 그것이 어떻게 먹는 해초인지도 모르면서, 혹은 냉장고에 있는 채소인지 생각도 안 하고 사 들고 올 때도 있다. 농사 짓는 내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할머니들의 야채값을 깎지 않는다. 오히려 깎거나 더 달라고 안 해도 더 주셔서 미안할 때도 있다.
완도에도 작은 규모의 하나로 마트가 있지만 그곳에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생선이다. 이곳 사람들은 오일장에 가면 싱싱한 생선이 널려 있기 때문에 누구도 마트에 가서 생선 살 생각을 안 한다. 나처럼 도시물 먹은 사람이나 손질해서 진공포장해놓은 꽁꽁 얼린 생선을 찾지.
이곳 사람들은 양식한 생선조차도 생선으로 쳐주지 않는다. 바다에 가서 직접 잡은 자연산만 생선으로 쳐준다. 양식인지 아닌지 골라내는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살아 있는 생선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때가 많다. 그리고 수협 공판장 같은 데 가면 자연산 우럭 한 상자를 도시에서 먹는 회 한 접시 값으로 살 수 있다. 한 상자에 우럭 20마리니까 도시 사람들은 이걸로 회 스무 접시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바다에 나가 힘들게 생선을 잡은 어부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도 시장 구경 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가끔 주말에 장날이 걸리면 온 가족이 장에 간다. 이렇게 큰 오일장을 난 완도에 와서 처음 보았다. 온갖 공산품을 실은 장사꾼 트럭들이 들어오는 날도 바로 장날이다. 읍내 골목마다 장사꾼들이 물건을 풀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정말 시끌벅적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 속옷이나 양말을 사겠다고 여기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목포의 대형 마트까지 가곤 했다. 그리고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트렁크 한 가득 싣고 돌아오면서 이게 생활의 지혜라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곳 살이 일 년 만에 사소한 물건들은 오일장에 가서 해결하곤 한다. 생활의 지혜를 새롭게 배워 나가고 있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은데 경운기 소리는 계속 난다. 비 오는 날에 나오는 장꾼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오후쯤 잠깐 시장에 나가 봐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