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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완득아,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 아니 미쳤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어댔는지 모른다. 그냥 조금 낄낄댔다면 그런 말까지 들었을 리가 없지. 내가 계속 으하하하 웃어대는 바람에 아이들과 남편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다. 결국엔 내 웃음통이 터지기만 하면 쪼르르 달려나와 "거기 좀 읽어 보라"는 통에 온갖 폼 다 잡으면서 낭송까지 했다.
성질머리 더러운 쌈꾼에 불우한 가정 환경. 점잖은 어른들 상식으로는 도대체 가까이 하고 싶은 않은 녀석이지만 온갖 매력을 다 갖고 있으니 윤하처럼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가 폭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매력에 공부까지 잘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교회에 가서 담임선생님 똥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첫 장면부터 완득이를 알아봤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서 담임 선생님을 죽여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순간 순간 나타나서 이죽거리기나 하는 선생님. 하지만 완득이의 진심은 갈비뼈에 금이 간 선생님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외치는 "죽지 마, 죽지 마.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속에 다 들어 있다.
담임 선생 똥주도 기가 막히는 인물이다. 완득이랑 이웃한 옥탑방에 살면서 특별한 놈 되기 다 틀렸으니 공부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기나 하는 사람이 담임이라니 말이 되냐고. 완득이와 세상을 향해 풀어놓는 똥주 선생의 적나라한 욕지거리를 듣다 보면 정말 선생 자격증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약간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매력이 폴폴 넘쳐나서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완득이의 마음을 열어놓는 똥주만의 방법은 바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수법이다. 그래서, 어쩔래?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을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너, 나 욕할 자격 없어, 새끼야. 쪽팔린 줄 아는 가난이 가난이냐? 햇반 하나라도 더 챙겨가는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진짜 가난이야."
캬바레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되는 난쟁이 아버지, 열일곱이 될 때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베트남에서 시집 온 어머니와 피를 나누지 않은 말더듬이 삼촌이 완득이 주변에 있는 가족이다. 너무 불쌍하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난쟁이라고 놀릴 때마다 가슴에 상처를 받는 완득이가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싸움뿐이었다. 하지만 담임 똥주를 만나고 킥복싱을 만나면서 완득이가 변하기 시작한다.
똥주 선생보다도 더 따르는 킥복싱 관장님을 통해 스포츠는 싸움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완득이는 킥복싱을 통해 슬슬 세상 밖으로 나온다. 피곤하고 힘겨운 완득이의 일상이지만 곳곳에 희망이 보인다. 생각만 해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오는 여자 친구 윤하, 점점 가까이 다가와 마음으로 품게 되는 어머니. 댄스 교습소를 차리는 아버지 등.
낙오자가 될 수도 있었던 완득이가 꿈을 찾아가는 일상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행복한 느낌 만땅이다. 일등만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세상에 던지는 못난이 완득이의 행복한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완득아, 평~생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