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9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 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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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출판사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똑똑한 막내 돼지가 늑대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지요. 모든 잘못은 순전히 늑대에게 있고 늑대는 죽어 마땅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불쌍한 돼지와 못된 늑대의 이미지를 가슴 속 깊이 새겨놓고 평생을 간직합니다. 저도 그렇게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 아기 돼지 삼형제 사건에 대해 꼭 할 말이 있다고 주장하는 늑대가 한 마리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잘못된 거라고 하네요. 결국 아기 돼지를 잡아먹은 죄로 감방에 가게 된 늑대 알렉산더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세요. 고정 관념이 확 깨져버립니다.

늑대는 단지 할머니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다 설탕이 떨어진 걸 알았고 마침 근처에 사는 셋째 돼지네 집으로 설탕을 빌리러 가게 되었다는군요. 처음부터 돼지를 잡아먹을 생각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문제는 그때 마침 늑대가 감기에 걸려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첫째가 문을 안 열어준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런데 그냥 돌아서려던 늑대의 코가 간질간질하더니 요란한 재채기가 나온 거예요. 그 바람에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집이 홀라당 날아가버리고 그 충격으로 돼지가 죽어버린 거죠. 좋아하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니 늑대 입장에선 안 먹을 수가 없었던 거고요.

설탕을 구하지 못한 늑대는 둘째 돼지네 집으로 갔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돼지를 불렀지만 둘째 돼지는 문도 열어보지 않고 예의 없이 꺼져버리라고 소리만 버럭 질러댔지요. 그때 마침 또 재채기가 터져나왔고 나무로 지은 둘째 돼지네 집도 무너지고 말았대요. 그때의 충격으로 둘째 돼지가 죽은 사실을 믿어 달라는군요.

돼지 두 마리를 먹은 늑대는 배가 엄청 불렀어요. 그래도 설탕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째 돼지네 집으로 갔지요. 문을 두드리며 돼지씨를 불렀지만 고함과 함께 돌아온 건 "너희 할머니 다리나 부러져라!"라는 저주였답니다. 그래서 늑대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대요. 화를 참지 못하고 돼지네 집을 부수려는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고 결국 감방 신세를 지게 된 거죠.

그럼 왜 우리가 늑대의 이야기와 다른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만 알게 된 것일까요? 문제는 신문 기자들에게 있었답니다. 감기에 걸린 늑대가 설탕 한 컵을 얻으러 갔다가 생긴 사건이라고 하면 흥미를 끌지 못할 것 같아 이야기를 꾸며 늑대를 고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죠. 그러니 늑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일이지요. 수염이 성성한 늙은 늑대가 될 때까지 감방에 있었으니 왜 억울하지 않았겠어요. 이 대목은 작가가 은근히 신문 기자들의 말은 다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네요.

종종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사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만 하는 아이들에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때 슬쩍 읽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유아용 그림책이지만 책을 읽고 조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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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10-0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입장 바꾸어 생각하는것은 늘 늦으니...

소나무집 2007-11-16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