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낙하 미래그림책 52
데이비드 위스너 지음, 이지유 해설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일어나 잠옷도 벗지 않은 아들 녀석이 이 책을 꺼내와 들여다보고 있었다. 밤에도 이 책을 보다가 잠이 든 것 같은데 아직 뭔가 발견할 게 남아 있는지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늘 꾸물대서 함께 집을 나서는 아빠와 누나의 온갖 원성을 사면서도 아들 녀석은 급한 게 하나도 없다. 빨리 세수하라는 엄마의 말도 들은 척하지 않더니 하는 말.

"엄마, 나도 이런 꿈 꾸고 싶어요."

아들이 있는 동안 우리집은 늘 정신이 없다. 구석구석으로 끌고 다니는 책은 아주 얌전한 축에 드는 물건이다. 만들다 만 레고 블럭, 너덜너덜해진 딱지, 부서진 고무 찰흙 덩어리, 대충 접어서 알아먹지 못할 색종이 작품까지. 이런 거 싹 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랬다가 봉변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버릴 마음이 생길 때까지 참는 수밖에 없다.

밤에 잠을 잘 때도 이불 속에 뭔가 한가지씩은 숨기고 있다. 아들 녀석이 끌어다놓은 처지 곤란한 곤충 모형과 쓰레기로 분류해야 할 물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통에 아직도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는 나는 늘 꿈자리가 심란하다.

우리 아들이 이 책에 푹 빠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영락없이 자신을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년은 멋진 꿈을 꾸는데 자기는 그런 꿈을 꿀 수가 없으니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무엇이 제일 부러웠느냐는 말에 "나무가 책으로 변하고 그 책 속에 무시무시하게 큰 용을 집어넣었잖아요." 한다. 자신이 용띠이다 보니 용의 모습이 제일 인상 깊었나 보다. 책 속에 들어간 용은 꼬리만 보이는 난쟁이가 되고, 반대로 거인이 된 소년은 난쟁이들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평소 어른들을 마음대로 조종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 어른보다 큰 사람이 되는 꿈을 꾸게 한 건 아닐까 싶다.

소년의 꿈 속엔 평소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크게 변하고 싶은 마음, 자기보다 힘센 것을 조종하고 싶은 마음, 커지고 싶은 마음, 대장이 되어 누군가를 이끌고 싶은 마음,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마음,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 무엇으로든 변해보고 싶은 마음 등.

우리 아들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 속에서라도 다 이루었으면 좋겠다. 오늘부터는 아들 녀석이 끌고 다니는 잡동사니에 좀더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글자가 없는 책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열심히 구석구석 오랫동안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사실 이게 글자 없는 그림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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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0-0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네요. 이책.
님 님이 말해주시는 아이들 이야기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정신없다고 하시는데도 말이에요.
저번에도 말했었나요? 전 아주 자주 바닷가 에서 딸이 아빠에게 달려가는 그 사진을 생각한답니다.

소나무집 2007-10-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고마워요. 데이비드 위스너의 글자 없는 그림책은 무조건 권해주고 싶어요. 그림 속에서 아이들이 발견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