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1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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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른도 아이들도 다 바쁜 세상입니다. 조금 여유가 생겨 시간이 나면 뭔가로 꼭 채워보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바빠야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쁜 어른들은 자신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바쁘게 만들어놓아야 만족을 합니다.

걸어가기보다는 차를 타고, 차보다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늘로 붕 떠올라 위에서 아래만 어렴풋이 내려다볼 수 있지요. 하지만 걸어가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걷다가 꽃이나 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냇물이나 강을 만나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 하는 것이 손해 같지만 손해가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한 소년의 이야기는 바쁜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쯤 쉬었다 가기를 권합니다. 소년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황량한 사막에 버스 정거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어딜 가려는지 소년의 보따리는 정말 큽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살짝 궁금합니다. 책도 몇 권쯤은 들어 있겠죠?

사막의 태양은 뜨거운데 버스가 오질 않네요. 심심한 소년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룸룸파룸 룸파룸 음악을 들어요. 처음 듣는 신나는 음악이에요. 이 리듬 속에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신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같아요.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이 지나가고, 말을 탄 사람도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도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버스는 안 옵니다.

캄캄한 밤이 되자 소년은 불평 한마디 없이 버스 정거장에 누워 잠을 잡니다.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보며 버스가 오는 꿈을 꾸었을까요?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되자 소년은 룸룸파룸 룸파룸 라디오를 켰어요. 하지만 여전히 버스는 안 오네요. 소년이 버스를 기다리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는 안 오지만 소년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소년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버스가 왔군요. 하지만 기차보다도 더 긴 버스는 북적북적 발 디딜 틈이 없네요. 버스는 소년을 사막에 내버려둔 채 휭하니 지나가버렸어요. 얼마나 기다린 버스인데 그냥 지나가버리다니 이젠 어떡하죠? 그쯤이면 실망을 할 만도 한데 소년은 룸룸파룸 룸파룸 기운을 차립니다. 버스는 소년의 것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탈 수 없는 버스 대신 소년은 걸어가기로 합니다. 마음을 바꾸면 걸어서도 여행은 할 수 있거든요. 타박타박 걸어서 멀리멀리 갈 수 있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걸어가는 소년의 여유가 책장을 넘기는 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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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일상에 맞추어 점점 바빠지는 마음에 여유로운 바람을 불어주는 책인 것 같군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집 2007-09-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