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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돼지의 불끄기 대작전 29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9
아서 가이서트 지음, 길미향 옮김 / 보림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커튼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조금만 들어와도 잠을 못 자는 나는 완벽하게 불빛을 차단하기 위해 애를 쓴다. 반면에 아이들은 캄캄한 걸 싫어해서 늘 불을 켜두거나 방문을 열어놓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쩐지 환하면 잠이 푹 들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자꾸만 방문을 닫곤 했는데 이 책을 보고는 내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사실 나도 아이였을 땐 불을 끄고 잠들 때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옛날 나 어렸을 적엔 캄캄해지면 귀신이 나올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는데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귀신보다도 자기들 재워놓고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더 궁금한 것도 같다.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우리 자면 엄마 아빠/비디오 보구 늦게 잘 거지?''
꼬마 돼지네도 사정이 비슷하다. 꼬마 돼지에게는 여덟시만 되면 불끄고 자라 해놓고 엄마 아빠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꼬마 돼지가 좀 억울하기도 했겠다 싶다. 하지만 엄청 머리가 좋은 꼬마 돼지는 좋은 수를 생각해낸다. 깜깜한 방에서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공포의 시간을 없애보고자 천천히 불이 꺼지게 만드는 장치를 만든다. 이런 장치를 루브 골드버그 장치라고 한단다. 쉽고 아주 단순한 작업을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처리하는 장치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이런 장치를 확인해보는 재미에 <치킨 런>이나 <나 홀로 집에>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은 꼬마 돼지의 29단계에 걸친 불끄기 장치를 따라가더니 그대로 하고 싶어했다. 사실 간단해 보이지만 집에서 그대로 따라해 보기는 좀 어려운데 그 아쉬움을 부록으로 들어 있는 종이 모형 집을 조립하는 걸로 대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초등 학교 1학년만 되어도 스스로 붙여가면서 만들어 볼 수 있다. 더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좀 필요하겠다.
스스로 만든 장치의 스위치를 눌러놓고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보며 편안하게 누워 있는 꼬마 돼지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불이 꺼지려면 1분에 한 개의 장치가 작동되니까 앞으로 29분은 지나야 되고 그 사이에 공포감 없이 잠들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꼬마 돼지의 엄마 아빠는 아이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것 같다. 가끔은 아이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걸 알 테니까.
영리한 꼬마 돼지네 집에선 매일 재미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우리 아이들은 꼬마 돼지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머리 좋은 돼지랑 이런 사업을 같이 하고 싶다나 어쨌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