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 방학의 반이 지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는 방학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방학하고는 바로 서울 쪽으로 올라가서는 딸 친구네서 하루, 아들 친구네서 하루, 오빠네서 하루, 동생네서 3일을 보내고 내려왔다. 사실 계획은 많았는데 아이들이 친구들 만나는 걸 가장 큰 소원으로 드는 바람에 엄마의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만 그쳤다.
아이들은 체험 학습이나 미술관 관람보다는 친구들 만나서 예전처럼 노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엄마들은 피곤해서 두세 시면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게 얼마나 좋은지 새벽 다섯시까지도 종알대고 있었다. 하긴 4~5년씩 달라붙어 살던 친구들이니 할 이야기가 오죽 많았을까 싶기는 하다. 헤어질 때 지하철역 앞에서 선우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딸아이의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짠해지기는 했다. 아마도 그 아이와 선우의 우정은 평생 갈 것 같기도 하다. 여자 아이들이란 원래 그런 건가...
완도로 내려오니 집에 남편 손님들이 와 있어 쉬지도 못하고 장부터 보러 가야만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부터 한 팀 가면 또 한 팀이 내려오고, 또 한 팀이 가면 다시 한 팀이 내려오고. 멀다 보니 한 번 오면 2박 3일은 기본. 아이 둘을 데리고 내려온 아가씨네는 3박 4일 동안 푹 쉬고 싶다며 밥 한 끼 안 사 먹고 집에만 있었다. 누구는 안 쉬고 싶나 뭐! 이렇게 한 열흘을 끊임없이 손님 뒤치닥거리만 했다.
방학이 엉망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아이들이 멋들어지게 세운 방학 생활 계획표는 그냥 장식이 되어 책상 앞에 붙어 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진다. 오늘도 남편 친구들이 와 있는데 집에 데려오면 칼부림날 줄 알라고 경고해놓은 상태다. 날은 덥지 뜨거운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것도 한두 끼지 남편한테 짜증 팍팍 내고 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잘해준 게 틀림없다. 아직 마누라 무서운 줄을 모르는 걸 보니...
찾아오는 사람은 십 년 만에 한 번, 5년 만에 한 번이지만 나의 2007년 여름은 완전히 실종되어가고 있다. 사실 가끔 보는 남편 손님들인지라 더 어렵다. 손님이 올 때마다 회도 한 번은 먹여줘야 되고, 이 동네 특산품도 한 상자 사서 트렁크에 넣어주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가 없다. 내년 여름에는 아예 어디로 도망을 가든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