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거울 창비아동문고 231
방미진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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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 학생 시절을 늘 오빠의 그늘에 가려 살았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개의 동생일 뿐이었다. 더구나 공부도 잘하고 늘 학교 임원을 도맡는 오빠에 비해 난 정말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공부를 아주 못한 것도 아니었건만  집안의 주인공은 항상 오빠였다. 성인이 된 후 친정엄마 말씀이 둘째인 나는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키웠다고 했으니 나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을지 알 만하다. 그런데 그 시절 난 그런 상황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속으로 불만이야  있었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대가족 사이에서 계집애인 내가 목소리를 높일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이 간 거울>에 나오는 수현이는 누나이면서도 동생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경우이다. 수현이는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착한 아이다. 하지만 동생 재현이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척척 박사에 변호사가 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의 관심은 당연히 동생에게만 쏠린다. 집에서도 동생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고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도 수현이가 아닌 재현이 누나로 인식해준다. 수현이는 점점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재현이를 들먹일 때마다 상처를 받는 수현이, 그때마다 우연히 문구점에서 훔친 거울에 금이 간다. 자기도 당당해지고 싶고 따뜻한 관심을 받고 싶지만 어른들에게 지극히 평범하고 착한 아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수현은 부모와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도둑질을 하게 된다. 도둑질을 하면서까지 관심을 받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수현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도둑질이 반복되고 거울에 금이 가득해질 때까지 수현은 상처만 받는다. 사랑받고 싶은 수현의 마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수현은 일부러 선생님 지갑을 훔침으로써 자신의 도둑질을 만천하에 고한다. 들키고 싶어서 도둑질을 한 아이. 결국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되자 수현은 자신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날아가버렸다며 엉엉 소리내어 운다. 수현의 "드디어 들켰다!"는 한마디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 책에는 표제작 <금이 간 거울>을 비롯해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늘은, 메리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모두 가족 관계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오빠의 닭>은 오빠가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가 커가며 성가신 존재가 되자 오빠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 먹어버린다. 이로 인해 생기는 죄책감과 갈등을 여동생의 눈으로 보여준다.

<삼등짜리 운동회 날>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술만 좋아는 경비원 아버지가  창피해서 운동회 날 못 오게 한다. 딸의 마음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골목 근처에서 딸을 기다린다. 일부러 늦게 오는 딸과 친구 은경이에게 자장면을 사주러 간다는 이야기에 아버지 김만득 씨가 슬그머니 좋아졌다. <기다란 머리카락>도 우울한 가족 관계 이야기이다. 가족간에 서로 관심이 없다. 아무도 서로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하거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집안에는 알 수 없는 긴 머리카락이 늘어난다. 다행스럽게 모두 손에 손을 잡으면서 화해는 이루어진다.

자라면서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 아이들과 멀어져가는 가족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섬뜩했다. 아직은 어리지만 내 아이들도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비명을 지르기 전에 많이 안아주고 함께 해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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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1-2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누구나 한번 쯤은 겪어본 직 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집 아들이 맞을 까? 하는 의문부호. 하지만 수현이의 생각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네요.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을 텐데 어릴 때야 많이 서운 한 것이 사실이지요.

씩씩하니 2007-01-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온전히 자기로 인정받지 못하구 누군가를 통해 자기 존재를 알아주는 세상 속에서 사람은 늘..외롭고 쓸쓸하지요....
많은걸 느끼게하는 동화인듯해요...
님의 솔직한 리뷰가 마음에 꽂힙니다.....

소나무집 2007-01-3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벽이라는 것이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들에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