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옛 서울 - 진경산수화 3 보림한국미술관 10
박정애 지음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내게 서울은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10년 이상을 머물렀던 도시이다. 지금 사는 곳도 과천이다 보니 여전히 서울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복잡한 곳을 싫어하다 보니 서울의 장점보다도 단점들이 더 많이 보이고 종종 떠날 궁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서울이 여러 면에서 편리하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아름다운 옛 서울>은 이런 나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게 만들었다. 책을 다 보고 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2, 3백 년 전 서울과 그 주변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현대 도시로 탈바꿈한 서울 속에 숨어  있는 옛 서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정이 갔다. 그리고 갑자기 서울이 좋아지면서 구석구석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단지 몇 장의 옛 지도와 그림 속에서 서울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드나들면서 수없이 보아왔던 옛 지도와 그림들, 난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정선이나 김홍도 같은 유명한 화가의 이름과 작품 제목에 눈도장만 찍고 지나쳤던 게 틀림없다. 정선이나 심사정, 임득명의 그림에서 서울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으니 원....

보았으되 기억에 없는 것은 잘못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도를 포함한 옛 그림을 제대로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작품에 담긴 옛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하나하나 풀어 보여줌으로써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가 구어체로 쉽게 그림을 설명해주니 누구나 친근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옛 지도는 대부분 회화체로 아름답게 그린 것이 많아 그림 대접을 받는다. 특히 산이나 숲을 진경산수화법으로 표현한 지도는 그림 같은 지도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대부분 나라에서 필요에 의해 궁중 화가들을 동원해 제작한 경우가 많아 김정호의 지도를 빼면 작가 미상인 경우가 많다.  정조 때 제작된 <도성도>는 회화식으로 그려진 서울 지도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을 활짝 핀 꽃처럼 사방으로 펼쳐놓은 점이 재미있다.

작가 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정선이다. <인왕제색도>는 시커먼 바위와 수목의 진한 먹색이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정선의 <목멱산도>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연상시킨다. 목멱산은 남산의 옛 이름으로 당시 사람들이 세속의 출세나 번잡함에서 벗어나는 공간이었단다. 남산 그림에는 꼭 소나무가 등장한다는 걸 보면 남산은 옛부터 소나무 숲이 무성했던 모양이다.

옛 사람들은 임금이 계신 궁궐의 모습도 많이 그렸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자 미상의 <동궐도>는 조선 시대 궁궐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 크기가 세로 3미터, 가로 6미터의 대작이다. 왕 이하 2천 명 이상이 살고 날마다 수백 명이 드나들던 궁궐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 그림이다.

임득명의 <가교보월>은 청계천 광통교에서 행해진 다리 밟기 장면을 그린 것이다. 기와집 사이로 흐르는 청계천이란 뜻의 그림 제목 그대로이다. 2005년에 복원된 청계천의 모습을 실어놓아 비교해 볼 수 있다. 현재의 빌딩 숲과 당시의 기와집이 대조적이다. 아마 이런 그림들을 참고해서 현재의 청계천도 복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맨 뒤엔 이 책에 실린 화가들을 시대별로 간단하게 정리해놓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어려운 미술 용어 풀이도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장정 또한 아주 고급스러워 책이 더 돋보인다.

이젠 미술관에서 만나는 옛 그림들이 살아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나도 그냥 스쳐 지나치지 않고 반갑게 다가서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나누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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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1-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되는 책일듯한걸요?
저는 시골사람이라 높은 건물 즐비한 서울 가면,,왠지 답답해요,,,서울서 사는 4년...넘 싫었던 기억나요,,,ㅋㅋ
근대 서울분들은 시골 오면,,서울이 그립다고 하든대....ㅋㅋ

소나무집 2007-01-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