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아홉 시도 되기 전에 자야만 했다. 일찍 자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불 켜놓고 있으면 전기 값이 많이 나오니까'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밤에 환하게 살 수가 없었고, 무슨 소리만 들리면 모두 다 도깨비 짓인 줄만 알았다. 사실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한 어른들의 술수였는데 아이들은 정말 도깨비가 나올 것처럼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곤 했던 것이다.

정말 반갑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협박용으로 써먹던 도깨비들을 만났다. 부뚜막에서 잠자던 고양이가 솥뚜껑을 건드려 덜커덩 소리를 내도, 대문 옆에 기대놓은 빗자루가  바람에 와르륵 쓰러져도, 마루 밑이나 다락에서 쥐들이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녀도, 창호지가 바람에 부르르 떨어도 어른들은 모두 도깨비를 들먹였다. 그 도깨비들이 앙증맞은 이름을 하나씩 달고는 나타났다.

산골 마을에서 진짜 심심하게 살고 있는 천온이가 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일곱 도깨비들을 깨운다. 부뚜막에 따끈따끈, 빗자루에 쓱싹쓱싹, 마루 밑에 엉금엉금, 감나무에 대롱대롱, 창호지에 중얼중얼, 솜이불에 푹신푹신, 다락에 달그락달그락. 귀여운 이름만 들어도 어디에 살던 도깨비인지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서워 벌벌 떨던 그 도깨비들은 아니다.

가지고 있던 헝겊이 도깨비 감투인 줄도, 도깨비 방망이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천방지축이다. 잘 잊어먹어서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르지도 못한다. 늘 뭔가 부족하고 철이 없어 보이지만 눈싸움도 하고  고드름도 따 먹고, 바느질도 한다. 심지어는 수염 할아버지 집에서 김장을 도와주고 팥죽을 얻어 먹기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 눈에만 도깨비들이 보이는 건 그들만이 도깨비와 놀아줄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산귀신에게 잡혀 간 쓱싹쓱싹을 구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쓱싹쓱싹을 잡아먹으려는 산귀신을 지렁이를 이용해 따돌리고, 도깨비 방망이가 숨겨진 나무 밑 동굴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일곱 도깨비와 천온이까지 힘을 합쳐 도깨비들의 필수품인 방망이를 찾아낸다. 그 방망이를 이용해 산귀신을 주름살 투성이 들쥐로 만들고 서로의 우정까지 확인한다.

일곱 도깨비들의 모습이 낮설지 않은 것은 바로 그들에게서 개구쟁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도깨비니?"라고 묻는 온이의 말처럼 도깨비들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이다. 도깨비 이야기를 빌어 신나게 놀고 싶고, 모험을 떠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가득 담았다. 

이혜리 선생님의 사람을 닮은 둥글둥글한 도깨비 그림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하는 짓이 도깨비와 비슷한 천온이마저 점점 도깨비 얼굴을 닮아가는 것 같다. 사실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대상은 도깨비나 산귀신이 아니라 엄마라는 천온이의 말에 약간 찔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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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