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이 우리집으로 온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정말 재미있어라 했다. "빨리 밥 줘"나 외칠 줄 알지 모든 게 제멋대로인 아빠와 아이들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식탁에 앉지도 못하고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엄마,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회사로 가는 엄마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 눈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하나 돼지로 변해가고 심지어는 아빠와 아이들까지 돼지로 변해가는 그 모습에 박장대소할 뿐이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어리니까 힘든 엄마의 모습을 애써 들춰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던가? 요즘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아들을 위해 오랜만에 <돼지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아빠와 아이들이 아닌 엄마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책을 읽어주었다.

아주 중요한 유치원에 가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밥 먹으면서 돌아다니지 않고, 가지고 논 장난감은 스스로 치워야 한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도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아이는 돼지가 되는 건 별로 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킬킬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세상에, 이렇게 엄마의 깊은 뜻을 모르다니...

끝내 엄마도 피곳 부인처럼 집을 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그건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요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란다. 어이쿠, 큰 기대를 한 내가 바보지. <돼지책> 한 번 읽어 주면 아이가 금방이라도 변할 것 같은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산산이 무너지는 기대여...

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의 그 말 속에는 엄마가 우리집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절대로 집을 나가지 말라는 의미임을. 아이가 책에서처럼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도 그럴 수 없는데 하물며 가장 말을 안 듣는다는 일곱 살 사내 아이 아닌가! 천천히 기다려야지. 가끔씩 <돼지책>을 협박용으로 들이대면서.

그런데 오늘 아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들 녀석이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서 유치원복으로 갈아입고 식탁 앞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어제 읽어 준 <돼지책>의 효과가 틀림없다고 외치며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냥 한번 그래 본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표지 그림을 보면 엄마 등에 업힌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이다. 그 아래 힘겨운 아내의 표정은 아무도 모른다. 모두 엄마 등에서 내려와 손에 손을 잡는다면 온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나누자. 모든 일을 나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말자. 내가 아니어도 잘 굴러갈 수 있다. 나도 나만의 삶을 누리자. 그래야만 아이들이나 남편이 엄마나 아내의 삶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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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2-1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야겟어요 아기 없을땐 그냥 휙 읽고 말았는데 이제 두고두고 볼 아기가 있을테니까요

소나무집 2006-12-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앤서니 브라운을 좋아해서 그의 책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답니다.

하늘바람 2006-12-1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앤서니 브라운 나무랄데 없이 정말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