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이지만 상처 받은 또렷한 기억이 있다.
은행에 간단한 업무을 보러 갔다(그 은행의 모습과 공기까지 생생).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번호가 밀리고 있었고-102번 호출하는데 101번이 가는 꼴-나보다 한 번호 앞인 아저씨가 내 번호가 들어온 창구로 가는 거다. 그 아저씨 앞에서도 한 번호 밀렸던 듯. 아무튼 나는 저 다음에 가서 하면 되겠지 싶어서 기다렸고 다음 번호로 넘어가기에 그 창구로 갔더니 창구 여직원이 ˝아휴~ 오늘은 다 왜이렇게 밀려서 오지?˝라며 나를 책망하는 투로 말을 하는 거다. ˝아니, 저는 제 번호 뜬 거 봤는데 제 앞 번호 가진 분이 가시기에..˝라며 상황을 설명하는데 내 말을 뚝 끊고 ˝아, 됐어요.˝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멸감과 억울함이 몰려왔다. 나름 배려하느라 한 행동이었는데,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오해만 안했음 싶었던 건데 사람 면전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당시는 끝까지 따지지도 못하고 일만 보고 나왔는데, 지금까지도 그게 마음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당시 엄청난 상처였나보다. 사실 그 당시가 인생에서 가장 자존감이 바닥인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 아마도 자존감이 높았다면 그 창구 여직원이 진실을 그리고 나를 알아주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기분만 조금 나빴겠지. 15년도 더 지난 일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을 거다. 그리고 이런 걸 보면 용서도 못한 거 같다. 사실 과거의 그 창구 여직원의 냉랭함,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몸짓과 표정 등은 실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의 해석이 덧입혀진 채로 더 표독스럽게 각색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차피 과거는 실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 마음이 거기에 매여 있을 뿐! 오늘 생각난 김에 지나간 과거를 툴툴 털고, 당신도 고충이 있었겠지-물론 손님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되지만(뒤끝ㅋ)-이해하는 마음으로 용서하기로 한다. 사실 마음에서 놓아버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 같다. 잘 가~~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구든지간에 우리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어려운 교훈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Whoever hurt us is teaching us how to forgive.
It‘s a difficult lesson, but it‘s worth it.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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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15 2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쌤~ 그 은행 어디에요? 제가 애들 데리고 가서 좀 혼내줄게요!

붕붕툐툐 2021-09-16 11:37   좋아요 2 | URL
역시 의리에 자냥이! 다같이 가자!!!!!😍

서니데이 2021-09-15 22: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은행에서 순서가 잘 맞지 않을 때가 있어요. 너무 빨리 눌러서 가는데 순서가 지나간 적도 있었고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만, 상대가 그렇게 말하면 불편해질것 같아요.
시간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는 일들은 있을것 같은데, 더 시간 지나면 지나갈지도 몰라요.
대신 더 좋은 일이 더 많으시기를.
붕붕툐툐님, 좋은 밤 되세요.^^

붕붕툐툐 2021-09-16 11:39   좋아요 3 | URL
맞아요~ 시간 지나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건 억지로 보내기도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어제 하나는 억지로 보냈는데, 또 오면 또 보내야죠~ㅎㅎㅎ
서니데이님 고운 마음 잘 받을게요~ 사실 좋은 일이 훠얼씬 많은데, 그런 건 왜 마음에 박히지 않는 걸까요?ㅎㅎ

scott 2021-09-15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됐어요‘ 라뇨!(저얼대 이런 상황 기냥 넘어가지 마삼 333)툐툐님 넘 순둥순둥해서 맘에 상처만 가득 ㅠ.ㅠ

붕붕툐툐 2021-09-16 11:40   좋아요 2 | URL
ㅋㅋ순둥인 걸까요? 좀 바보같긴 했던 거 같아요. 지금이면 어림도 없죠~ 그리고 지금이면 왠지 저한테 그러지도 않을 듯해요!ㅎㅎㅎㅎ

mini74 2021-09-15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온갖 것들을 이고 지고 살아요ㅎㅎ 그러고보면 우리조상님들 똑똑한거 같아요 1년간 기분나쁜 일 액운 연에 날려서 태운다잖아요. 툐툐님 잘하셨어요. 훨 훨 놓아버리고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나아지는 툐툐님 되실거예요 *^^*

붕붕툐툐 2021-09-16 11:42   좋아요 2 | URL
오~ 맞아요~ 훨훨 태워 보내는 의식 그런게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필요할 거 같아요. 왜일케 묵은짐을 얹어 사는지.. 미니님 덕분에 더 훌훌 버린 느낌이에요!!^^

청아 2021-09-15 23: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툐툐님! 황당하고 예의에 어긋난 상황에 처하면 마음 여린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서 할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도 최소한 미러링은 해야함요. ˝됐다고요?˝ 아님 ˝뭐라고요?˝한마디 라도요.(흥분하지않고 화내지않는게 포인트!) 이게 환기가 되고 상대에게 상황객관화를 보여준대요. 아무것도 안하면 당연하게 생각해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깁니다.ㅠㅇㅠ툐툐님 맘에 스크레치도 오래 남고요. 아웅...
암튼 툐툐님 이렇게 글로 정리하시고 용서하시는건 너무너무 멋짐요~👍

붕붕툐툐 2021-09-16 11:43   좋아요 2 | URL
와~ 미러링 너무 좋은 방법이에요~ 이렇게 배우네요! 사실 지금이었음 부당함에 대해 한마디 할텐데 그땐 진짜 쭈구리였어요~ㅎㅎ
헤헷~ 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해용~🙆

행복한책읽기 2021-09-16 0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5년이나 된 묵은 상처를, 히야~~~멋지게 날려 버리시다니. 잘가~~ 최고의 안녕 인사에요^^

붕붕툐툐 2021-09-16 11:44   좋아요 2 | URL
상처하는데 딱 생각이 나더라구요~ 묵은 아이 보내줄 때였나봐요~ 잘가~ 했으니 잘 갔을 거예요!ㅎㅎ

새파랑 2021-09-16 06: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의 툐툐님은 순수(?)하셨군요 ㅋ 지금은 안그러실듯 😆

붕붕툐툐 2021-09-16 11:44   좋아요 2 | URL
지금은 멱살잡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순수라기 보단 쭈구리 시절이었슴다~ㅎㅎㅎ

유부만두 2021-09-16 0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 직원은 앞 아저씨한텐 말 못하고 만만한(?) 여자 고객에게 그러는군요. 정말 못됐다요.

붕붕툐툐 2021-09-16 11:4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ㅠㅠ그러고보면 저에게 뭔가 만만하다는 아우라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 땐 진짜 나 자신을 엄청 작게 봤으니 그게 드러난다는 게 소름인 거죠~ 이 부분 짚어주셔서 작은 깨달음이 온 듯해요!😊

고양이라디오 2021-09-16 1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툐툐님 안좋은 일이 있으셨군요ㅠㅠ 기분나빴던 일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거 같아요. 저도 용서하고 훌훌 털어버려야 되는데 쉽지 않네요ㅠㅠ

용서하고 놓아버리기. 저도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면 실천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붕붕툐툐 2021-09-16 12:20   좋아요 1 | URL
마음에 꽂힌 몇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고라님 댓글 읽으면서 났어요~ 타인도 용서하지만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도 해야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1-09-16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잘 가, 라고 하며 잘 보내셨습니다. 현명한 선택.

상처를 준 사람이 저에게 분노를 가르쳐 주던데... (이러면 안 되는 거지요?)^^

붕붕툐툐 2021-09-17 00:5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괜찮습니다. 다 괜찮아요~ 저는 보낼 때가 된거고 분노할 땐 준노해야죠!!ㅎㅎ

초딩 2021-09-16 12: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전 바꾸러 갔다 무시 당했는데
간달프 같은 친구가 그 은행을 엎었어요 ㅎㅎㅎ
은행에서 전화와서 사죄하고 직접 사과하겠다는거 괜찮다 했어요 ㅎㅎㅎ

그런걸 보면 ㅜㅜ 진상인 진상으로 가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에효

목소리 큰 사람에게는 절절 기고
참는 사람은 내비두고 에효

붕붕툐툐 2021-09-17 00:55   좋아요 3 | URL
어머, 저에게 빠진 것을 찾았네요. 친구!! 담번엔 든든한 친구랑 같이 가야겠네요!!ㅎㅎㅎㅎ

han22598 2021-09-17 0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붕붕툐툐님..진짜 성격 좋으시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바로 퐈이어 하는데...(성격이 별로 안 좋아요..ㅠㅠ)

붕붕툐툐 2021-09-17 22:56   좋아요 0 | URL
속으로 곪는 것보다 퐈이어가 훨씬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한님은 성격이 좋으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