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글을 끄적거리려합니다.
사실 판타지 나부랭이, 라고 비난을 들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정말 멋진 작품들도 많으니깐...
어렸을때부터 읽어왔었던 판타지 소설들에 대해서 끄적거려보려고 해요.
물론 특히 기억에 남는 소설들...
대부분 개정판이 나왔지만 일부러 옛날 표지를 골랐답니다.
가즈 나이트.
아.. 정말 표지만 봐도 아련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네요. 저는 이 책을 처음으로 판타지의 길에 빠져들었습니다. 가즈 나이트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영어를 좀 배우고 나니깐. God's Knight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목 그대로, 세계의 주신 밑에 7명의 기사들이 있는데, 그 기사들이 소위 말하는 판타지 세계에서 좌충우돌하며 모험을 겪는 내용이랍니다. 특히 이 판타지가 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시점이었습니다. 이 가즈나이트의 저자의 지금 필력과 비교하자면, 그 당시 저자의 필력이 썩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감정이입하면서, 주인공이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울때는 저도 손을 꾹 쥐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지금 다시 읽어보라면 수많은 문제점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왜 주인공은 무슨 일만 터지면 수도로 가는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러니깐, 중학생때 읽으면 딱 좋은 책.
드래곤 라자.
앞의 가즈나이트를 중학생때 읽었다면, 고등학교때는 이 책을 읽어봄직합니다. 지금은 판타지 소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버린, 네크로맨서 이영도의 작품인데요, 왜 네크로맨서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하면 이영도씨가 인터넷 연재를 할 때 밤늦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연재란에 깨어있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지요. 이 책의 주인공은 세상물정 알거 다아는 후치, 라는 소년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그 주위의 중늙은이이자 현자이며 궁수 칼, 뛰어난 전사인 샌슨, 마법사 아프나이델, 프리스트 제레인트와 엘프 이루릴, 나이트호크 네리아 등이 파티Party를 이루어 드래곤에게 사로잡힌 그들의 마을 사람들을 위한 몸값 마련에 나서지요. 정말 이상적인 파티입니다. 밤도둑, 엘프, 마법사..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려면 저 정도 파티는 되어야겠지요. 그리고 각 인물들은 독특한 개성을 품고 있습니다. 독설가인 칼과 그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수시로 멋진 말을 내뱉는 후치, 생각없지만 무술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샌슨 등..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위태위태한 책입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후치가 하는 수많은 치기어린 말들은 어느새 현학적인 말이 되어 소위 '잘난체' 하는 문학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고, 정말 조금만 덜 나아갔다면 주인공의 개성이 확 죽어버렸을 수도 있었지요. 그 미묘한 틈을 잘 포착한 소설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주인공 보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말미에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은 소년에 불과한 후치입니다. 수백년을 살아온 대마법사도,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갈 드래곤도 결국 그 소년의 지혜를 빌렸지요. 현실이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뭐 어때요, 재미있으니깐 용서해줍시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이영도씨의 작품은 사실 어디 하나 버릴 작품이 없다는 게 중론이지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폴라리스 랩소디, 라는 작품은 버려도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이영도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인, 관념의 물화가 너무나 두드러지기에 읽기에 정말 어려운 소설이지요. 재미있으려고 읽는 판타지를 굳이 머리싸매며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머리싸맬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머리를 쓰게 만드는 책은 적절한 재미를 유발시키는데 충분한 도움이 됩니다. 이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재미와 주제 모두를 잘 잡은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의 내용은 네 종족인 나가, 레콘, 도깨비, 인간이 그들의 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가 종족의 정복 활동에 남은 세 종족이 연합해서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지요.
나가는 그들의 태생적인 한계(나가는 일반적으로 뱀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지요, 이 책에서는 그 내용을 거의 비슷하게 차용합니다.)로 인하여 너무 추운 북방에서는 살지 못하지만, 그들의 신을 어느 나가 여성에 유폐시킨 이후에는 북방한계선을 넘어서 계속 진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레콘(닭의 머리를 가진 물리적 힘이 매우 강한 종족)들은 애초에 국가를 잘 이루지 않지만 북방에 살고 있던 인간들로서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지요. 도깨비들은 그들의 성인 실재하는지조차도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는 '즈믄누리'에서 살고 있었고 말이지요. 하지만 신을 유폐시키고 균형을 깨고 정복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경구대로 그들은 연합을 해서 나가를 상대합니다. 동시에 나가에 대한 극한의 증오심을 품고 있는 나가살육자, 케이건과 그의 동료들 레콘 티나한, 도깨비 비형은 유폐된 신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신들의 화신을 찾아나서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얽혀서 나가 일족에서 일종의 배신자가 된 륜 페이를 살해하기, 혹은 구하기 위해서 그의 누나인 사모 페이가 북방 한계선을 넘어서 들어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무슨 서스펜스 추리영화를 광고하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최종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피를 마시는 새가 시작합니다. 피를 마시는 새의 내용은 눈물을 마시는 새의 결말부분의 내용을 이미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농담에 대해서는 조금 끄적거려야겠네요. 책에서는 고대로부터 이런 농담이 전해져내려온다고 하지요. 피, 눈물, 독, 물을 각각 마시는 형제 새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오래 살아가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이며, 가장 일찍 죽는 새는 눈물을 마시는 새라고 말이지요. 그 이유는 누구도 몸밖으로 흘리기 싫어하는 소중한 것인 피를 마시기 때문에 피를 마시는 새는 오래 살아가며, 누구나 몸밖으로 흘려 내보내는 나쁜 것인 눈물을 마시기에 눈물을 마시는 새는 일찍 죽는다고 말이지요. 각각의 이야기가 제목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아보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룬의 아이들.
한때 전민희 작가를 매우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이도 있고.. 판타지에 예전만큼 깊게 빠져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렸을때는 나름 순수했었기에 (엣헴) 전민희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이 뒤가 어떻게 될까 심각한 고민을 했었던 적이 많았지요. 사실 그녀의 초기작이자,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름을 각인 시킨 작품은 '세월의 돌' 인데, 아무래도 저에게 더 깊게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옆의 '룬의 아이들'이라서 룬의 아이들부터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룬의 아이들은 현재 '윈터러' 편과 '데모닉' 편으로 이루어져 발간되어있는 중입니다. 룬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주인공은 '아이' 이고, 각각의 편에서 그 주인공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 룬의 아이들 기획은 그 예전 소프트맥스(창세기전으로 유명한 그 소프트맥스)가 한참 포리프(브라우저 기반으로 게임이나 채팅을 즐길 수 있었던)를 서비스 중일때 설정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상황이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소프트맥스와 연합해서 게임과 책으로 동시에 나올 예정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게임은 기본 기획과는 좀 많이 지연도 되고.. 좀 다르게 '테일즈 위버' 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중이지만(저도 한때 이 테일즈 위버를 열심히 한 적이 있었지요) 소설은 세월의 돌 이후, 태양의 탑이라는 작품이 불의의 사건으로 출판이 중지된 후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발간된 것은 룬의 아이들 윈터러로, 윈터러,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 겨울을 닮은 아이 '보리스'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문이 그의 삼촌의 손에 의해 멸문당하고,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그리고 함께 삼촌의 손에서 살아남았던 형도 떠나버리게 되며, 그나마 만났던 조력자처럼 보였던 백작도 그에게 도리어 조력이 아닌 세상의 엄혹함만을 가르쳐주며 이용하려듭니다. 세상 밑까지 떨어져버린 보리스는 구사일생으로 진정한 조력자를 만나게 되지만, 언제나 그의 삶은 보리스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좋았던 것에서부터 시작한 적이 없었'던 일들로만 가득차게 됩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 난 뒤에도 보리스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작 15살에 불과한 주인공이 너무 어른스럽게 말을 하는 것 같다, 라고 말이지요. 사실 보리스의 대사들, 예를 들자면 '날 죽이고 그 시체를 가져'와 같은 말을 지금 15살인 중2학생이 말한다면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라들겠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성장기로만 판단하자면 읽다 보시면 마음 한 구석이 찡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하네요.
윈터러가 어두침침한 이야기라면 데모닉은 표지에서부터 의미하듯 상대적으로 밝은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태생부터가 고귀한 공작가의 아들인 '조슈아' 가 주인공인데, 다른 룬의 아이들이 그렇듯 조슈아도 어딘가 결함 혹은 축복을 안고 있지요. 2부의 부제 데모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슈아는 악마적인Demonic 천재입니다. 완전기억능력을 가지고, 어떤 것이든 다 이해하고, 모든 면에서 재능을 가진, 그리고 강령술을 할 수 있는 그런 천재말이지요. 그러나 천재는 항상 광기에 맞닿아있듯, 조슈아도 광기와 천재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지금껏 그의 가문의 다른 데모닉들은 대부분 그 광기때문에 제대로 살아남지를 못했었는데, 과연 그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태양의 탑.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작품입니다. 결국 표지와 출판사를 바꾸어 이렇게 출간 중에 있는 작품인데, 예전 내용까지에도 아직 이르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지금은 따라잡았는지 모르겠네요. 많은 전민희 작가의 팬들이 어서 출간되기를 기대하는 작품입니다. 전민희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된 '세월의 돌'의 이전 이야기입니다. 사실 전민희 작가는 세월의 돌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 책은 그 연작의 일부분인데, 지금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와서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제법 발견할 수 있습니다. 뒤에 '룬의 아이들'의 배경이 되는 '학원' 생활이라던가, 룬의 아이들의 이름이나 캐릭터성이 (물론 동명이인이지만) 살짝 보여지는 부분도 있으며, 전작 세월의 돌이 밝고 경쾌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점차 음침한 내용이 주가 되는 그런 경계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네요.
퇴마록.
어렸을 때 정말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했었던 작품이 바로 이 '퇴마록' 입니다. 단순한 공포이야기는 제가 어렸을때도 정말 많이 나왔었지요. 지금도 기억나는 책이 '쉿'인데, (아마 셀로판지로 그림을 보면 귀신이 보이고 하는 류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걸 가지고 있는 여자애한테서 빌려가면서 읽다가 다보면 재빨리 돌려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차마 살 수는 없었던 것이, 너무 무서워서 였지요. 그런데 그런 류의 책을 넘어서, 이제 귀신을 퇴치하는 작품이 나왔을때, 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도 느꼈습니다. 맨날 도망가고 저주받아 죽는 사람들이 이제 반격을 시도하다니, 정도의 느낌이었달까요. 하지만 이 책의 국내편이나 세계편 정도까지는 귀신에 대해 맞서 싸우는 퇴마사들의 노력이 주가 되었다면, 혼세편 이후에는 이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라는 것이 중심 주제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아, 이건 여담인데 퇴마사라는 직업도 실제로 있기는 있다죠. 그리고 소설의 중심되는 인물인 박신부의 엑소시즘의례도 실제로 카톨릭에서 장엄구마식이라는 이름으로 있는 의례이기도 합니다. 다만 소설과는 좀 많이 동떨어져있다는게 흠아닌 흠이 되겠지요.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고 있는 중인데, 원작의 팬들을 고려하여 거의 그대로 내용을 진행하기로 작가가 마음을 먹었나봅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 깨끗한 표지로 다시 출간되는 것이 기분 좋네요.
p. s. 헉헉.. 여기까지...
저는 시간이 좀 생겨서.. 끄적거리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네요.
아직 소개 못한 다른 판타지들은 다음 이 시간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