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워낙 인기가 좋길래 한 번 살짝 쳐다보았는데, 확실히 처음 프롤로그부분에서는 나를 압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가스통 바슐라르를 추모하며' 라니. 와우. 이런 류의 책은 사실 소위 말하는 '아는 만큼 보이는 책' 이다. 이런 말을 끄적거리는게 좀 웃기긴 하지만.. 어느 독서에서든 배경 지식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뽑아낼 수 있고, 혹은 뽑아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지적 역량을 무한히 펼쳐서 비교를 하든지 대조를 하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유희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의 놀람이 중반부 이후에서는 점차 당황스러움으로 바뀌는 것 있지. 중간 중간에 논리적 비약이 엿보이고 (심지어 문맥상으로도 오류가 있는 부분이 있다.)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엄밀하지 않은 티가 난다.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원래 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이 책이 인문 서가에 꽂혀있지 않고 소설 서가에 꽂쳐 있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 이 책의 내용이 어떤 건가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구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을 범주로 묶어서 낸 책, 이라고. 이 문장 또한 엄밀하지는 않지만 일부의 진실을 품고 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불의 정신분석.

방금 언급한 책이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이라면, 과연 얼마나 알아야 책의 내용을 골수까지 뽑아먹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다는 것의 정의 자체도 확립되어져있지 않고, 내 멋대로 안다, 라는 말을 독서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다, 라고 규정한다고 할 지라도 출판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저작물들이 쏟아져나오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수많은 책을 다 읽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 물론 나는 안다는 것의 정의를 저렇게 내리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예를 들어서. 그러나 어쨌든 아는 만큼 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일부 찾아보는게 좋지 않을까. 책에서 '가스통 바슐라르'를 추모한다고 써져있으면 적어도 가스통 바슐라르가 누구인지 정도는 훑어보는게 좋지 않겠나. 그래서 이 책을 여기다가 묶어놓는다. 여기서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가스통 바슐라르는 원래 과학자였는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겪으면서 철학에 뛰어들게 된 학자다. 상대성 이론을 겪으면서 과학자에서 철학자로 바뀌었다는 말이 좀 역설적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만큼이나 상대성 이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겠지. 그 후에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설에서 착안하여 불, 물, 공기, 흙에 관한 상징과 이미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접목시켜서 책을 썼으며 이 책은 그 책들의 첫 번째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서 얇기 때문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여기서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신을 자처한 사나이, 그리고 끝내 화산에 뛰어들어 광기로 얼룩진 삶을 마감한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혹은 샤르트르의 '상상력' 그리고 '상상계'를 읽으며 빅토르 위고와 로르샤흐 테스트의 사이에서 이미지와 상징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킨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 질베르 뒤랑의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읽어도 좋겠다. 물론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은 어렵다. 매우 어렵다.

 

 

 

사르트르와 카뮈.

 샤르트르는 흔히들 많이 알고 있는 실존주의에 관한 철학자이지만 실제로 그는 이미지는 의식이다, 라는 문장으로 결론내리는 상상력 연구에도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사실 그의 상상력, 그리고 상상계에 바슐라르나 뒤랑과 같은 사람들이 조금은 빚지고 있다고 말해도 완전히 그른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그리 쉽지 않고 맛으로 따지자면 숭고함을 뺀 쓴 사탕에 다름 없겠지. 이때 우리는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볼 수 있는데, 이는 미셸 투르니에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에서 쓴 방법 그대로 일종의 범주를 만들어 대립시키거나 비교시키는 것이다. 그가 머리말에서 이렇게 비교시키는 방법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았다, 라고 언급하지만 사실 이런 방법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이전에 자크 데리다도 대립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철학을 끌어와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내 지식이 얕으니 만만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만 걸고 넘어지면 미셸 투르니에는 말과 소를 대비시켰지만 범주의 힘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를 확장시켜서 샤르트르와 그의 친구였었던 카뮈를 비교시킬수 있겠다. 그런 결과로 아마 이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샤르트르와 하이데거와 같은 쌍으로도 충분히 한 쌍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책이 어려워질테니 그나마 만만해보이는, 아니 친숙한 카뮈를 골라잡았다. 아, 물론 카뮈의 철학적 깊이가 얕다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사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속에서 올라오지 않는가?

 

 

 

천국에서 지옥까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샤르트르에게는 카뮈보다 더 친근하고 깊이 있는 관계였었던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여자다. 계약 결혼으로 워낙 유명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앗, 그러면 샤르트르와 보부아르를 묶어서 책을 쓴다면? 하는 생각으로 나온 책이 이 책이 아닐까? 심지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이니 적절히 찐득찐...큼큼 여하튼 내밀한 관계까지 보여주니깐 독자들의 (특히 나같은) 몰입도를 올려줄 수도 있겠고 말이지. 그러고보면 이 책은 2006년도에 이미 발간된 책이다. 위의 샤르트르와 카뮈가 2011년도에 나온 것을 생각해본다면 말이지.. 역시 남자와 여자 관계로 묶어서 적당히 철학이라는 조미료를 뿌리면 멋진 요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절대 샤르트르의 수많은 연인[...]들과 그들과의 일에 대한 고백[..]을 찾아본다고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젠장. 빨리 여자친구를 만들든지 해야지. 없는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나. 헉 글내용이 산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이 책은 나중에 천천히 읽어볼 생각으로 묶어둔 것이니...

 

 

 

아.. 춥다... 그래서 솔로는 웁니다... 그런데 솔로보다 더 싫은 것은 이제 다시 바빠진다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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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06 10:00   좋아요 0 | URL
다시 왜 바빠져요???응??

저는 가스통 바슐라르를 많이 좋아해요,,,쥘베르 뒤랑이 바슐라르의 제자였군요!!오호~~

가연 2012-02-06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일을 다시 시작해야되니깐..

네, 질베르 뒤랑이 제자라더군요.. 바슐라르의 철학세계는 정말 아름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