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면 누구에게나 선뜻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개쯤은 있을 것이다.
가령 낙엽, 추억, 우수, 낭만, 상실, 이별, 독서 등 자신의 경험에 의해 굳어진 이미지들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처럼 맑고 쾌청한 날엔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곤 한다.
며칠째 지속되는 행복.  여름 내 나를 휘휘 감고 떨어질 줄 몰랐던 습기를 마침내 걷어낸 듯한 가벼움.  한낮의 햇살 아래서도 허파꽈리의 사소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시원한 바람.  이른 가을부터 목을 길게 늘이고 제 순서를 기다린던 추억 몇 놈들.  
그리고 하늘.  그래.  아아, 하늘.   긴 머리의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배배 꼬아 한 쪽 어깨로 넘겼을 때 드러나던 희고 가녀린 목선.  가을 하늘은 여인의 뒷목에 소년의 시선이 닿았던 그 짜릿한 순간처럼 아쉽다.  곧 낙엽이 지고 거리에는 한동안 알 수 없는 우수와 서글픔이 자신의 시선을 들킨 소년의 자책처럼 정처없이 헤매일 것이다.

이래도 되나?  이 좋은 날을 마냥 즐겨도 되나?
나는 몹시 불안하다.  그것은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성장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 남매의 다섯째로 자란 나는 좋은 것이 내 손에 쥐어질 때면 기쁨보다 불안이 먼저 찾아왔고, 행복한 순간에는 언제 사라질지 몰라 두려워 했다.  작가 은희경의 표현을 빌자면 "집착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심리를 배우이자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은 <뉴요커의 페이소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안은 인간의 자연스런 상태에요. 그래서 저는 그게 아마도 합당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불안을 경험하는 게 중요한 건 아마도 그게 종족의 생존을 가능케 하기 때문일 거에요. 저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걸 개의치 않는데, 그건 제가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행복한 시간을 맛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걸 얻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대가를 지불하죠.

이제 막 가을이 오는데, 엄마 잃은 세살박이 어린애처럼 나는 갈 곳을 몰라 불안하다.
내가 있는 이 곳이 너무 행복하고, 지금 이시간이 더없이 좋아 더더욱 불안하다.  이 가을에 문득 생각나는 싯구들을 옮겨본다.  나는 타들어가는 불안 속에 행복에 겨워 읊는다.  

그대/구월이 오면/구월의 강가에 나가/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안도현의 구월이 오면),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도종환의  가을 사랑),  가을엔 사랑하게 하소서/아픔이 아닌 웃음으로 /예쁜 사랑 하게 하소서(가을엔 사랑하게 하소서/장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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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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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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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오후 2시 -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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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을 만나 인생상담 겸 연애상담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카사노바와 같은 청춘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게디기 한발 더 나간다면 장동건 뺨치는 빼어난 외모에 모든 여자들을 뿅가게 하는 뛰어난 언변을 갖춘, 거기에 돈도 넘치도록 풍족하여 말 한마디 걸지 않았는데도도 여자들이 줄줄 따라 붙는, 시쳇말로 엄친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정 반대였다.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내가 연애상담이라니...
그러나 어느 곳에서든 예외는 있는 법.  장기도 직접 두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정세를 더 잘보지 않던가.  지금도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어디서 뵌 분 같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만큼 나는 남의 시선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를 지녔음이리라.  그래서인지 내 주위에는 의외로 여자들이 많았다.  아무도 눈독을 들이지 않는 외모이니 여자들 입장에서 나와 만난다고 추문이 날 것도 아니요, 성격도 소심한지라 죽네 사네 하면서 달려들 것도 아니니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뭇여성들에게 있어 나보다 더 적합한 상담자를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유머가 풍부한 남성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엇보다 만남은 즐거워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진면목을 숨긴 채 만날 수밖에 없는 연애 초반의 탐색전에서는 그 어색한 시간을 채워줄 유머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유머가 때로는 남녀 사이에 벽을 만든다는 걸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만나면 늘 깔깔대고 웃는 연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비칠지언정 당사자들에게는 독과 같다.  유머는 더할 수 없이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게 하면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든다.  남녀 사이의 진전은 8할의 유머에 더하여 2할의 진지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것이 남녀 사이다.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지 않는 삶은 지루하고 밋밋하듯이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부부를 만나면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곤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애정이 없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갖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서로의 속내를 시시콜콜 밝히는 관계에서 어찌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성인군자끼리의 결합도 아닌데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책은 <인터넷 한겨레> 뉴스부장을 지낸 뒤 <허스토리> 편집장을 지냈던 작가가 2005년 뉴욕으로 옮겨 한국 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딸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볍고 경쾌한 필체로 그린 산문집이다.  2007년 친구들과 함께 만든 웹 매거진 <선주스쿨>에 '브루클린 이야기'로 연재하던 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혼녀로 사는 자신과 딸의 이야기이다.  미국 문화에 동화된 딸과 자신의 이력과는 상관없이 제2의 인생을 사는 저자의 이야기는 슬픔이나 고뇌의 그림자라곤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단 한줄도 보이지 않는다.

19금을 넘나들듯한 아슬아슬한 표현과 과하다 싶을 정도의 유쾌, 통쾌한 이야기들은 동양적 사고에 반평생이 절어 흐물흐물 생기를 잃은 나의 뇌세포에 짜르르한 전기를 보내는 듯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것은 진지함이 묻어나는 감동의 글이 없다는 것이다.  기자로서, 더구나 '석사 아내와 고졸 남편'으로 유명했던 저자가 자신을 지켜주던 그런 꼬리표를 모두 떼고 지금처럼 한없이 가볍게 살아가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 흘렀으리라.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한 귀절을 옮긴다.  저자와  그녀의 딸 마린의 대화다.
"엄마, 엄마는 언제 섹스했어?"
"음...... 대학교 1학년 때 첫 애인이랑."
"어휴, 그러면 스무 살 될 때까지 섹스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그때는 다들 그랬어.  엄마는 그래도 빨리 한 셈일걸?"  
"그래? 왜 다들 그렇게 살았대?"
"글쎄, 섹스 너무 빨리 하면 그거 생각하느라 공부도 못하고 그럴까봐 그랬겠지."
"나는 스무 살 때까지 참을 수 없어."
"하고 싶어서 못 살겠다 싶으면 해야지 뭐......"
  <"키스하고 섹스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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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lat 2011-09-24 14:01   좋아요 0 | URL
유머가 벽을 만들 수도 있다니....
ㅎㅎ그런데 그럴 듯도 합니다.
오랜 연애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깊이 공감은 못하겠지만요. ㅎㅎ

평생 안 싸우다가 요즘 몰아서 싸우고 있는 울부부는 그나마 다행인 걸까요?
힘들어요~~ㅠㅠ

꼼쥐 2011-09-25 20:13   좋아요 0 | URL
저는 직장 내에서도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주야장천 농담만 한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까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벽이 생기죠. 가끔 싸우고 또 화해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지 싶네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10년, 20년도 아닌 1년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그에 버금가고도 남을 만큼 길게 느껴진다.
지방근무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된 주말부부의 생활은 그렇게 갈망했던 자유의 가치를 발 아래 떨어진 담배꽁초보다 못할 정도로 짓밟어 놓았다.  혼자 사는 즐거움은 아주 잠시 뿐이었고, '자유'라는 허여멀건한 뼈대는 외로움과 무료함으로 구멍이 송송 뚫린 채 골다공증에 시달렸다.  나는 그 헛헛함을 메울 칼슘 성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헐값에 팔아치운 '자유'에 대한 댓가치고는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라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곳곳에서 터졌다.  고초 당초 맵다지만 나의 이중생활(?)에 비할까.  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을 무료로 가르치겠다는 나의 광고 아닌 광고는 빛의 속도로 하루에도 수십 번 동네를 맴돌았다.  느긋하게 중학생만 가르치려던 얄팍한 속셈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깨어지고 말았다.  내 삶에 두번 다시 찾아 오지 않을 듯싶었던 수험생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책의 제목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정석'을 다시 구해서 읽고, 영어 능력 향상에는 별 도움도 되지 못하는 부정사, 관계 대명사, 동명사 등을 가르치고, 직장에서는 병든 닭처럼 졸기 일쑤였다.  영문을 몰랐던 동료들은 내 건강이 걱정되었는지 심각한 어조로 건강검진을 권하기도 했었다.  내 좁은 숙소에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수다가 연일 이어지니 옆집의 항의도 빈번했다.  많은 아이들이 찾아 오고 또 떠나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내 사정을 알게 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가 공익적 차원에서 자금 지원을 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호의를 아이들과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시킨 이후 나는 여러 갈등에 시달렸다.  퇴근 후 12시까지 이어지는 강의와 그로 인해 누적된 피로는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쪽으로 나를 몰아갔다.  나를 합리화하는 수많은 핑계거리들이 굴비 엮듯 줄줄 딸려 올라왔다.

7월 이후 나는 이 제목으로 단 한 줄의 글도 올리지 못했다.
어떤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강의는 이어갔지만, 나의 속셈을 모르는 아이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달라진 내 태도가 불안했던지 무슨 일이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가을 날씨만큼이나 쾌청한 결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잊었던 자유가 왕방울눈으로 윙크를 보내는 오후.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이 머리를 무겁게 한다.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찬물이라도 끼얹고 싶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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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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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3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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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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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로부터 용서받는다는 것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이 문제에 집착했었고 진정한 용서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휩싸였었다.  성경을 종교가 아닌 독서 혹은 상식의 차원으로 읽었던 내게 그들이 말하는 참회나 회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문제였다.  나의 상식으로는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가 된다는 것이 궤변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신으로부터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는 죄의 범위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다.  가령 거짓말과 같은 작은 죄는 용서가 되지만 살인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고 믿었다.

성경에 대한 이런 주관적 해석은 칸트가 말했던 정언명령에 더하여 감성적 일깨움으로 굳어지게 마련인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순결 혹은 성적인 면에서도 자신이 책임질 수 없거나 사랑하지 않는 이성과의 육체적 결합은 신의 용서를 기대할 수 없는 범죄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탓에 아내와 만나 결혼을 약속하기 전까지 나는 일체의 스킨쉽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그때의 나는 숨이 콱콱 막힐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어쩌면 열등의식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 또는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선민의식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용서"는 일종의 나약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진정한 용서는 대다수 일반인에게 불가능한 일임에도 자신만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이에게 보여주려는 유치한 발상에서 기인한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시쳇말로 쿨해 보이기 위한 치기어린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었다.  겉으로는 용서하는 체하면서도 마음 속에 존재하는 감정의 찌꺼기는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의 인내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상대방에 대한 증오나 분노는 분명 이성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위선적 용서보다는 오히려, 지금은 나의 감정을 존중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노의 감정이 희석되기를 바라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결론짓고 한동안 덮어 두었던 "용서"의 문제는 이 책으로 인해 불거졌다.
저자인 시몬 비젠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포로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하였다.  하루하루의 삶이 늘 죽음과 함께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저자는 나치의 학살자들에 의해 무려 89명의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 둘이서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용소의 강제노역 도중에 만난 한 SS대원의 참회와 그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과연 정당했는지 묻고 있다. 

저자는 어느 날 임시병동으로 쓰이던 기술전문학교 건물의 쓰레기 하치 작업에 동원되었다.  그 학교는 자신의 모교였고, 작업 도중 한 간호사에 의해 임종을 앞둔 젊은 SS대원의 병상으로 인도된다.  온몸에 붕대를 두른 채 누워있는 병사는 자신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고백한다.  그리고 불이 붙은 채 건물 밖으로 떨어지던 유대인 부부와 아이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다며 용서를 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병사의 참회를 듣게된 저자,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던 저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병사는 죽었고 간호사는 그 병사가 자신에게 남긴 유품을 전하지만 거절한다.  전쟁이 끝나고 저자는 그 병사의 어머니를 만난다.  남편도 잃고 아들마저 잃은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착한 아이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자는 그 아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난다.
저자는 글의 말미에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이 책의 2부에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28명의 주장이 실려 있다.
비젠탈의 행동은 옳았다고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  홍세화, 달라이 라마 등 각계의 유명인사들의 견해는 서로 달랐다.  성직자의 견해와 일반인의 견해는 분명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용서의 행위를 시간적 연속성(또는 관계의 지속성)을 전제로 한 행동이라고 간주할 때 이 책에서 제기한 용서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그 병사는 임종을 앞두고 있었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그 병사는 무엇보다 영혼의 안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관계의 지속성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라는 말이다.  또한 저자의 입장에서 임종을 앞둔 한 인간의 모습은 일말의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고 싶었던 지극히 이기적인 병사의 참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병사의 행위는 자신에게 행해진 것이 아니기에) 저자의 갈등은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그 상황을 재연할 수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 비젠탈의 질문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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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9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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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3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캠퍼스 풍경은 봄보다 가을이 좋다.
생명이 움트는 시기에 타오를 듯한 생명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넘실대는 교정은 감정이 격해지는 장소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는 곳이다.  부산스럽다.  때론, '오!'하는 탄성을 남발하며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소비하기도 한다.  뜨거운 입김이 확확 뿜어져 나올 듯한 젊은 날의 열정에 계절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감정을 가누지 못해 처음 보는 남자의 한 마디 사랑 고백에도 자신의 입술을 내어주고 마는 장소가 바로 봄의 교정이 아니던가.

그런가 하면 가을은 오히려 젊음의 열기를 어느 정도 잠재우는 시기이다.
가을을 응시하는 젊은이의 눈에서 쇠락하는 계절의 탓인지 젊음의 철없음은 찾기 어렵다.  치기가 사라진 얼굴은 아름답다.  길지 않은 그들의 삶을 고요히 돌이킬 수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을 젊은날엔 알지 못한다.

얼마 전 한 대학병원으로 친구의 병문안을 갔었다.
대학 교정의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았다.  링거줄을 매단 그의 깡마른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설멍한 다리 위에 걸쳐진 헐렁한 병원복이 바람에 힘없이 날리는 것도...
괜시리 찔끔거리는 내게 친구는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넨다.  먼 산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선연한 피빛 광채의 화살이 물기 어린 내 시선을 뚫고 가슴에 박힌다.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붉은빛의 그라디에이션.  친구의 가슴도 저 노을처럼 타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어느 순간 막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지나 않을지...

싫다는 나를 잡아 끌고 친구는 가까운 대학건물로 향했다.
주인 없는 빈 건물에는 안으로 굳게 잠긴 강의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두운 복도에는 괴괴한 적막감이 흘렀다.  친구는 순간 비틀거렸다.  그만 가자며 그의 한쪽 팔을 부축했을 때,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친구는 왜 빈 강의실에 들어가려 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건재하다는 것을 그 과거의 시간 속에서 확인 받고 싶었던 것일까?  잠겨진 문을 확인하는 순간 과거와 현재의 분명한 구획이 그를 절망하게 했던 것일까?
           
마지막 햇살이 붉은색 듬뿍 찍어 푸른 하늘 멀리 길게 사선을 긋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힘겹게 걷는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든든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던가.  걸어가는 모습만으로도 아무런 사심없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던 적이 있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 살아 숨쉰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고마운 나이.  이제 그 고개를 향해 묵묵히 걸어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친구를 병실로 데려다 주고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친구야, 암이라는 무거운 병이 네 발목을 잡더라도 그때처럼 걷는 일은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님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를 읽으면 너는 또 다시 기운을 얻어 보란 듯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 않을까?
   
 "그냥 은은한 잔광만 남기고 꼴딱 질 적도 있지만 산정에 구름이라도 몇 점 머물러 있으면 기가 막힌 노을을 보여줄 적도 있다. 구름은 부드러운 솜털구름보다는 터치가 힘찬 약간 성난 구름이면 더욱 장관을 보여준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온몸을 나사처럼 죄어오다가 순식간에 풀어 준다. 그러고 나면 속은 것처럼,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서럽고 막막해진다.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박완서님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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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9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