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풍경은 봄보다 가을이 좋다.
생명이 움트는 시기에 타오를 듯한 생명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넘실대는 교정은 감정이 격해지는 장소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는 곳이다.  부산스럽다.  때론, '오!'하는 탄성을 남발하며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소비하기도 한다.  뜨거운 입김이 확확 뿜어져 나올 듯한 젊은 날의 열정에 계절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감정을 가누지 못해 처음 보는 남자의 한 마디 사랑 고백에도 자신의 입술을 내어주고 마는 장소가 바로 봄의 교정이 아니던가.

그런가 하면 가을은 오히려 젊음의 열기를 어느 정도 잠재우는 시기이다.
가을을 응시하는 젊은이의 눈에서 쇠락하는 계절의 탓인지 젊음의 철없음은 찾기 어렵다.  치기가 사라진 얼굴은 아름답다.  길지 않은 그들의 삶을 고요히 돌이킬 수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을 젊은날엔 알지 못한다.

얼마 전 한 대학병원으로 친구의 병문안을 갔었다.
대학 교정의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았다.  링거줄을 매단 그의 깡마른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설멍한 다리 위에 걸쳐진 헐렁한 병원복이 바람에 힘없이 날리는 것도...
괜시리 찔끔거리는 내게 친구는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넨다.  먼 산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선연한 피빛 광채의 화살이 물기 어린 내 시선을 뚫고 가슴에 박힌다.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붉은빛의 그라디에이션.  친구의 가슴도 저 노을처럼 타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어느 순간 막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지나 않을지...

싫다는 나를 잡아 끌고 친구는 가까운 대학건물로 향했다.
주인 없는 빈 건물에는 안으로 굳게 잠긴 강의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두운 복도에는 괴괴한 적막감이 흘렀다.  친구는 순간 비틀거렸다.  그만 가자며 그의 한쪽 팔을 부축했을 때,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친구는 왜 빈 강의실에 들어가려 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추억 속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건재하다는 것을 그 과거의 시간 속에서 확인 받고 싶었던 것일까?  잠겨진 문을 확인하는 순간 과거와 현재의 분명한 구획이 그를 절망하게 했던 것일까?
           
마지막 햇살이 붉은색 듬뿍 찍어 푸른 하늘 멀리 길게 사선을 긋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힘겹게 걷는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누군가 옆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든든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던가.  걸어가는 모습만으로도 아무런 사심없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던 적이 있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 살아 숨쉰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고마운 나이.  이제 그 고개를 향해 묵묵히 걸어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친구를 병실로 데려다 주고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친구야, 암이라는 무거운 병이 네 발목을 잡더라도 그때처럼 걷는 일은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님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를 읽으면 너는 또 다시 기운을 얻어 보란 듯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되지 않을까?
   
 "그냥 은은한 잔광만 남기고 꼴딱 질 적도 있지만 산정에 구름이라도 몇 점 머물러 있으면 기가 막힌 노을을 보여줄 적도 있다. 구름은 부드러운 솜털구름보다는 터치가 힘찬 약간 성난 구름이면 더욱 장관을 보여준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온몸을 나사처럼 죄어오다가 순식간에 풀어 준다. 그러고 나면 속은 것처럼,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서럽고 막막해진다.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박완서님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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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7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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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9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