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한다면 어느 누구의 공감도 받아내지 못할 일방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적인 얘기에 누군가의 공감을 바라는 일, 그것은 마치 말도 못하게 추웠던 어느 겨울 날 작열하는 태양과 그에 어울리는 풍경을 머릿속에서나마 희미하게 떠올려 봄으로써 잠시나마 추위를 잊어보려는 얄팍한 시도와 같다. 사실 오늘처럼 더운 날 겨울의 어느 모퉁이를 떠올려 본들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더운 건 더운 것일 뿐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짧은 연휴의 감질나는 열기가 하룻밤 새에 푸스스 꺼져버렸는지 막상 연휴의 시작인 오늘은 초여름처럼 더운 한낮의 열기에 나른한 졸음만 몰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6주기이기도 한 오늘. 벌써 6년? 놀라게 된다. 서거 당시에는 그저 놀랍고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몸서리가 쳐졌을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과연 노 전 대통령의 운명이었을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시들한 죽음에 이르고야 말겠지만 그때까지 그들의 작태를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마음이란...

 

민주주의의 퇴행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경제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 또한 최정점에 있는 몇몇의 사람들에게 점차 집중되어 가는 현상을 두고 대한민국에서는 '발전'이라고 칭한다. 노인 두 명 중 한명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이 나라의 현실은, 취업절벽과도 같은 청년실업의 문제는 권력자의 욕심에 묻혀 화석처럼 굳어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바랐던 노 전 대통령의 꿈은 노란 풍선에 실려 날아갔을 뿐이다. 연휴의 첫째날이 힘없이 사그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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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어떠어떠하다." 또는 "당신은 어떠어떠한 사람이다." 나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예전부터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인 것 같아."도 아니고 그렇게 규정하듯 말해버리면 그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층이 갑자기 생겨나 나는 저 밑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공손히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만 같고, 뭔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면서도 잔뜩 주눅이 들어 뭐라 항변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외치고 싶어도 그러면 꼭 안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비록 내가 지금은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마저 들기도 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정말 그렇다.

 

어느 책에선가 김형경 작가는 20대에는 자살을 주머니 속 동전처럼 만지작 거리며 살다가 결국 자살은 하지 못하고 자원해서 정신분석을 받아 보았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놀랐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을 받아볼 필요가 있긴 있나보다.' 생각했었다. 작가도 물론 베스트셀러가 된 심리 에세이를 몇 권 쓸 수 있었으니 시쳇말로 '뻘짓'을 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많이 남는 장사를 한 셈이지 않은가. 아무튼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던 게 사실이다.

 

"'태도attitude'란 '어떻게how'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삶의 태도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 태도들의 틀 안에서 개별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p.7)

 

12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11년째 전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임경선 작가. 그녀를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의 일인 듯하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더 가깝게 느꼈을 수도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한 글쓰기 방식이 맘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이 책 <태도에 관하여>에서 작가가 가장 신뢰하는 5개의 핵심적인 태도, 예컨대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에 대하여 쓰고 있다. 작가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살아라.' 강요하지 않았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든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멈춰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속으로 한동안 빠져들게 된다.

 

"'누가 뭐라든 난 이걸로 됐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p.24~p.25)

 

사실 나는 웃을 일 하나 없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거나, 최선을 다하라거나,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거나, 도전하는 삶을 살라거나 하는 식의 얼빠지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 쓴 책은 딱 질색이다. 자신은 이만큼 살고 있으니 너희들도 잘만 하면 나 정도로 살 수 있을 거다 뻐기는 것도 아니고, 너희같은 찌질이들은 절대로 나처럼 될 수 없으니 애당초 포기해라 저주하는 것도 아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 말이다. 그러나 임선경 작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꿈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삶의 태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미안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잘못될 인생이 크게 달라지라는 법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살하는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자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고, 내 아이만큼은 남보다 뒤쳐지지 않고 공부 잘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 아닌 위안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동안에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고 더불어 행복했는가? 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이젠 꿈이라는 단어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 내가 하면서 불행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거, 가끔 충만함이나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거,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여하튼 내 꿈이 뭘까? 나는 꿈을 이루어야 하는데, 라며 꿈이라는 명제에 사로잡히다 보면 오히려 지금 내 앞으로 휙휙 지나가는 이 시간들, 즉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하거나 현실을 부정하게 되죠. 미래라는 것은 끊임없는 '오늘'의 반복일 뿐이잖아요." (p.277~p.278)

 

오늘, 5월 21일은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에서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부부의 날'이란다. 제정 목적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데 의의를 두었다는데 나는 기억하고 기념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아무튼 이것 저것 신경쓰며 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세상이 되었다.  그럴수록 스스로 만족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원칙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 세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의지할 만한 원칙은 살아가는 데 종종 도움이 된다. 임경선 작가의 생각들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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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의 자원외교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모 기업의 회장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사실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목표로 현 정권이 야심차게 준비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고인이 된 기업의 회장은 죽기 직전 모 신문사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이 돈을 건넸던 정치인들의 이름을 쪽지에 줄줄이 남김으로써 검찰의 조사를 받게 만들기도 했구요. 그 소식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더니 요즘은 조금 잠잠해진 듯합니다. 물론 그 쪽지에 적힌 인사들은 하나같이 펄쩍 뛰더군요. 자신만큼은 누구보다 결백하다고 말이지요. 심지어 어느 정치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구요. 예전부터 써먹던 상투적인 수법이지요. 저는 지금껏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정계를 떠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늘 누명만 쓰며 살았던 걸까요?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언제가 되면, 도대체 언제 국가는 그 최고의 임무가 그저 몇백만의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이라는 걸 인정할까? 그리고 언제, 국가는 평화를 향해 전혀 눈에 띄진 않지만 애쓰는 많은 발걸음들이야말로 개인에게도 여러 민족들에게도 전장에서의 대승리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뮌헨 대학교 의대생인 한스 숄과 뜻을 함께 한 3명의 친구, 조직을 이끌었던 쿠르트 후버 철학 교수님, 뒤늦게 합류한 한스 숄의 여동생 조피 숄이 모여 만든 '백장미'단은 나치에 반대하고 히틀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배포합니다. 그러다 1943년 2월, 대학 강의실 지붕에 올라가 유인물을 살포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조국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됩니다.

 

어찌 보면 조피와 그의 동료들이 한 일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히틀러 체제에 반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삐라'를 뿌린 것뿐이었고, 조피는 이것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었으나 나치 시절엔 그 '소극적 저항'마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뮌헨의 '백장미단'은 여섯 번째 '삐라'를 뿌린 뒤 모두 체포되었지만, 그 삐라들은 침묵하며 나찌에 동조하던 독일인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고, 나라 바깥까지 퍼져 나갔던 것이지요.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조국의 패전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고뇌는 조피의 일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대를 종말의 시대로 믿고 있다. 이 모든 끔찍한 징조들이 그렇게 믿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한 번이라도 이 시대에 살았다면, 영원히 이 시대와 함께 묶여 생각될 사람으로서,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신에게 해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내일도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폭탄 한 개가 우리 모두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죽는다면 내 죄는 적잖이 클 것이다. 마치 죽으면서 이 땅덩어리도 함께 파괴한 것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오늘날 경건한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자취를 좇아가는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 고작 칼부림과 같은 수치스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은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듯이… 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존재만을 위한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 중에 조피는 이런 말도 남깁니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올바름 넘치는 세상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날씨는 화창한데 나는 간다. 그러나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젊고 희망에 찬 생명이… 만약 우리가 한 행동이 많은 사람을 깨우쳤다면, 지금 죽는다고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제가 이 책을 인용한 이유는 고인이 된 기업 회장을 미화하거나 그의 행동이 정당했다 변호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는 마당에 자신을 괴롭혔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그 한을 품고 죽는다 한들 남아 있는 사람에 의해 불쌍하다 동정을 받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적어도 정의나 평화 등 우리가 '대의'라고 믿게 되는 넓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한 사람의 죽음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이유는 이 정부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목숨 앞에 정의롭지 못하였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한 이 정부는 다른 어떤 변명으로도 정의를 내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저는 아직도 믿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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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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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는 게 뭘까?', 혼자 고민할 때가 있다.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 대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나라고 무슨 정답을 내놓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사는 건 말이지, 삶에서 쌓은 기억들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일이야.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만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길가의 나무일 수도 있고, 문득 바라본 하늘일 수도 있고, 꼬물거리며 기어 가는 개미일 수도 있겠지. 그마저도 없다면 그냥 텅 빈 장소일 수도 있겠지. 언젠가 그 장소에 다시 가보면 그때 두고 떠났던 기억이 반갑게 나를 맞을 테니까.'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다.

 

김혜남 작가의 수필집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었다. 왠지 낯이 익은 제목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혹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위지안 교수의 유작이 새로 나왔나 생각했었다. 유방암 4기의 몸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그녀의 병상기록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고 정말이지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더랬다. 읽는 내내 먹먹해진 마음에 몇 번씩이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의 저자는 유감스럽게도 위지안 교수가 아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혜남 교수가 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다. 책의 제목을 갖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왜 이런 제목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조금만 읽어 보아도 저자가 왜 위지안의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와 비슷한 제목을 골랐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김혜남 작가도 환자의 몸이다. 그것도 파킨슨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15년째 앓고 있단다. 이제 그녀는 잘 나가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보잘 것 없는 환자일 뿐이다. 나는 위지안 교수의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도대체 왜 그 책에 열광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의 과거 경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것도 아니다. 공자나 노자처럼 학문의 깊이가 있어서? 그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때 내가 그 책에 빠져들었던 일차적인 이유는 저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람도 사는데..., 하는 심리,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고, 살아갈 날이 나에 비하면 턱없이 짧을 것이라는 이유로 작가를 동정했었다. 말이나 글에서 느끼는 우리의 공감은 적어도 비교우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감동하지는 않는다. 위지안 교수는 적어도 자신의 아집이나 에고를 모두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였었다.

 

"나는 내가 불치병 환자가 되어 의사로부터 몇 년 안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래도 의사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빨리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울고불고 원망한다 해도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무섭고 끔찍했으며,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p.19)

 

책의 내용은 작가의 경험으로 채워져 있다. 자신의 병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병에 걸린 이후에 사람들과의 관계며,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며, 스스로 깨달았던 삶의 노하우들을 꼼꼼히 적고 있다. 'chapter 1.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chapter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chapter 3. 오늘 내가 재미있게 사는 이유, chapter 4.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chapter 5. 삶과 연애하라' 의 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나는 작가의 '버킷 리스트 10' 이 인상 깊었다. 1.그림 그리기, 2.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3.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4.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 5.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6.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7.책 한 권 쓰기, 8.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9.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10.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나는 마지막 10번째 버킷 리스트를 읽으며 짠해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답게 자신의 문제는 아주 조금 풀어 놓았을 뿐 정신과 의사로서의 당부와 조언이 비교적 많았다. 작가의 몸은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유, 아니 그 고통을 이기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독자들은 궁금하리라.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287)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삶이란 경험으로 축적된 내 기억을 어떤 대상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평탄하게 산 까닭에 아무것도 들려줄 게 없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은 다른 어떤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한다.누구나 내 마지막 순간에 내 머릿속 기억을 서로 차지하려고 안달한다면 나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의 기억이 소진되어,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지기를 소망한다. 예컨대 홈쇼핑에서 삶의 기억도 판매된다면 내 삶의 기억이 순식간에 완판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작가가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도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까닭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순간에 완판을 꿈꾸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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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5-14 15:56   좋아요 0 | URL
저자도 환자였군요.. 참으로 위대한 분입니다.

꼼쥐 2015-05-14 16:01   좋아요 0 | URL
네, 정신과 의사로서 바쁘게 살던 분이 15년전 어느 날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사는 걸 보면 대단한 분이지요.
 
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시신을 한번이라도 만져본 사람은 안다. 맨손에 전해져오는 그 느낌은 차라리 천길 낭떠러지를 밟은 듯한 삶의 허방, 그 아득함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생명을 잃은 모든 주검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온기가 빠져나간 시신에서 우리는 섬뜩하다거나 두렵다기보다 오히려 욕심의 중력에서 벗어난 듯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성(聖)과 속(俗)의 갈림이라는 것도 결국 그 아득한 허무를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터키 여행기 <우천 염천>을 읽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 치고는 그의 여행기는 많지 않다. 너무나도 유명한 <먼 북소리>를 제외하면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우천 염천>, <위스키 성지 여행>, <하루키 여행법>이 고작이다. 그 중에서 <하루키의 여행법>은 제목만 그렇지 여행기라고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여행기에 실린 그의 글은 다른 작가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된다. 여행기라기보다 차리리 '디아스포라적 생활기' 또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보기'라고 부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일정으로 많은 명소 방문하기를 실천하는 우리네 여행과는 달리 그는 한 나라에서 몇 년을 살아본다거나 적어도 그 나라 전체를 차를 타고 돌아보는 식으로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우천 염천>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찌 보면 가장 보편적이고 평이한 여행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사실 소설에서든 수필에서든 작가의 묘사는 어느 누가 읽어도 '아, 하루키의 글이군.' 금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하루키다운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하루키의 광팬이라고 자부하는 나의 눈에도 '이건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그리스정교의 성지인 아토스 섬의 여러 수도원을 방문하는 길에 만난 대책 없는 장대비(雨天)와 터키의 마을을 돌아다닐 때의 불볕더위(炎天)로 인해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인데 이 책이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간략한 스케치에 그쳤던 탓도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작가를 대신하여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우리는 이곳에서 흠뻑 젖어버린 여행용 신발을 벗고 양말과 바지를 새로운 것으로 바꿔 입은 뒤 점심식사 대신 크래커와 치즈를 먹었다.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먹었다. 그리고 침대에 눕자 당연하다는 듯이 깊은 잠에 빠졌다. 너무나 편안한 잠이었다. 비를 맞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이렇게 나약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좀더 심한 비를 3일 정도 맞는다면 종교에 귀화해버릴지도 모른다. 수도원의 침대는 우리에게 그만큼 고마운 존재였다." (p.54)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해에 하루키는 그리스의 성지인 아토스 반도와 터키를 여행하였다고 한다. 책에서 아토스에 관한 애기를 읽은 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는 아토스 반도. 그곳에는 현재 20개의 수도원이 존재하고, 약 2천여 명의 수도승들이 엄격한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수도원이 처음으로 세워진 비잔틴 시대와 다름없이 소박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밤낮으로 기도를 드리는 수도승과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족하며 사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작가는 '확신에 가득찬 진짜 세상'을 보았던 듯하다.

 

"나는 처음에 쓴 것처럼 종교적인 관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인간이고 그렇게 쉽사리 뭔가에 감동을 하지 않는, 굳이 말하자면 회의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토스의 길에서 만난 야생동물처럼 지저분한 수도승으로부터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을 한 뒤에 오시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상황을 이상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마 그것은 종교 운운하기보다 인간이 사는 방법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믿음이라는 점에서는 전세계를 뒤져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찬 땅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세 그것은 의심할 구석이 없는 확신에 가득 찬 진짜 세상 그 자체인 것이다. 캅소카리비아의 그 고양이에게 곰팡이가 핀 빵은 세상에서 제일 현실적인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정말 현실 세계인가?" (p.109)

 

터키여행은 4륜구동차를 타고 흑해 연안을 따라 일주를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하루키는 운전면허를 땄다고 한다. 초보운전 표지를 달고 시작된 21일간의 터키 여행은 작가에게 그닥 우호적이지 않았던 듯 보인다. 길을 물으면 아무말 없이 차에 올라타 찾는 곳까지 안내하고는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곤 하던 터키 사람들의 과잉 친절,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풀어놓은 것만 같은 앳된 얼굴의 순진한 군인들과 지나친 검문 검색, 말보로 담배 한 개비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시골 남자들의 순진함과 담배 사랑, 이란 국경 힛카리 마을에서의 위험천만했던 경험, 24번 국도의 목숨을 건 운전 등은 '반 고양이'를 직접 보고 싶어 햇던 작가의 기대도 무색하게 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어째서인지는 나로서도 잘 알 수가 없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랠 것이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p.142)

 

터키 여행은 작가에게 힘들었던 경험인 듯하다. 처음 방문했을 때 맡았던 '공기의 질' 같은 것에 이끌려 7년만에 다시 방문했던 터키에서 작가는 에게 해 근처의 잘 알려진 관광지를 피하여 오지로만 돌았는데 작가는 어쩌면 터키 국민의 내밀한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여정은 힘들었을 테고. 작가는 길이 끊긴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도 했고,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국경 근처의 마을을 통과하기도 했고, 석유 운송 트럭이 질주하는 편도 1차선의 24번 국도를 달리기도 했다. 작가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속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최소한의 온기를 지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의 우천(雨天) 아닌 열기로 숨을 헐떡이게 만드는 염천(炎天)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치열하게 다툴지라도. 성(聖)과 속(俗)은 에게해를 건너는 것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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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5-13 14:16   좋아요 0 | URL
책표지의 우천염천 글자가 멋있네요.
그리스와 터키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걸로 알고 있는데 하루키가 여행하는 동안 날씨도 우천과 염천으로 대조적이었나보네요. 여행기 제목이라고 짐작도 못했는데 꼼쥐님 리뷰 읽어보고 알았습니다. 사실 이 리뷰의 첫문장에 눈길이 가서 읽기 시작했어요. 중환자실에서 며칠째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시는 아버지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차있는 때라서요. 오래전 유럽의 몇나라 여행을 다녀오셔서는 터키가 제일 좋았다고 하셨었어요.

꼼쥐 2015-05-14 15:58   좋아요 0 | URL
아토스 반도의 높은 산지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을 방문했었고 그 길로 터키로 이동하여 차를 타고 터키 일주를 했었나 봅니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곳만 골라서 간 듯합니다. 에게해 주변의 잘 알려진 관광지는 터키 냄새가 나지 않는다구요. 아버님 때문에 상심이 크시겠어요. 부디 쾌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