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의 자원외교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모 기업의 회장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사실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목표로 현 정권이 야심차게 준비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고인이 된 기업의 회장은 죽기 직전 모 신문사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이 돈을 건넸던 정치인들의 이름을 쪽지에 줄줄이 남김으로써 검찰의 조사를 받게 만들기도 했구요. 그 소식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더니 요즘은 조금 잠잠해진 듯합니다. 물론 그 쪽지에 적힌 인사들은 하나같이 펄쩍 뛰더군요. 자신만큼은 누구보다 결백하다고 말이지요. 심지어 어느 정치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구요. 예전부터 써먹던 상투적인 수법이지요. 저는 지금껏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정계를 떠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늘 누명만 쓰며 살았던 걸까요?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언제가 되면, 도대체 언제 국가는 그 최고의 임무가 그저 몇백만의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이라는 걸 인정할까? 그리고 언제, 국가는 평화를 향해 전혀 눈에 띄진 않지만 애쓰는 많은 발걸음들이야말로 개인에게도 여러 민족들에게도 전장에서의 대승리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뮌헨 대학교 의대생인 한스 숄과 뜻을 함께 한 3명의 친구, 조직을 이끌었던 쿠르트 후버 철학 교수님, 뒤늦게 합류한 한스 숄의 여동생 조피 숄이 모여 만든 '백장미'단은 나치에 반대하고 히틀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배포합니다. 그러다 1943년 2월, 대학 강의실 지붕에 올라가 유인물을 살포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조국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됩니다.

 

어찌 보면 조피와 그의 동료들이 한 일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히틀러 체제에 반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삐라'를 뿌린 것뿐이었고, 조피는 이것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었으나 나치 시절엔 그 '소극적 저항'마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뮌헨의 '백장미단'은 여섯 번째 '삐라'를 뿌린 뒤 모두 체포되었지만, 그 삐라들은 침묵하며 나찌에 동조하던 독일인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고, 나라 바깥까지 퍼져 나갔던 것이지요.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조국의 패전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고뇌는 조피의 일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대를 종말의 시대로 믿고 있다. 이 모든 끔찍한 징조들이 그렇게 믿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한 번이라도 이 시대에 살았다면, 영원히 이 시대와 함께 묶여 생각될 사람으로서,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신에게 해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내일도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폭탄 한 개가 우리 모두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죽는다면 내 죄는 적잖이 클 것이다. 마치 죽으면서 이 땅덩어리도 함께 파괴한 것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오늘날 경건한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자취를 좇아가는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 고작 칼부림과 같은 수치스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은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듯이… 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존재만을 위한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 중에 조피는 이런 말도 남깁니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올바름 넘치는 세상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날씨는 화창한데 나는 간다. 그러나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젊고 희망에 찬 생명이… 만약 우리가 한 행동이 많은 사람을 깨우쳤다면, 지금 죽는다고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제가 이 책을 인용한 이유는 고인이 된 기업 회장을 미화하거나 그의 행동이 정당했다 변호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는 마당에 자신을 괴롭혔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그 한을 품고 죽는다 한들 남아 있는 사람에 의해 불쌍하다 동정을 받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적어도 정의나 평화 등 우리가 '대의'라고 믿게 되는 넓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한 사람의 죽음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이유는 이 정부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목숨 앞에 정의롭지 못하였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한 이 정부는 다른 어떤 변명으로도 정의를 내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저는 아직도 믿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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