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맹렬하게 뜨거웠던 여름과 하루 건너 비가 내렸던 가을. 늦장마가 연상되는 궂은 날씨였지만 가을은 여전히 진행중이리라 믿었는데 갑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져 오슬오슬 추위를 느끼다 보니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1년 중 더없이 좋은 이 짧은 계절의 흥취를 느껴본 적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가을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가뜩이나 서늘한 날씨에 오후 들어 하늘마저 어두워진 탓에 반차라도 내고 일찍 퇴근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았던 하루.
점심으로 뜨끈한 순두부를 먹었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긴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정신없이 퍼먹느라 입천장이 벗겨지는 줄도 몰랐다. 새벽 등산로에는 요즘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부쩍 줄었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지고 눈이라도 한 차례 내리면 등산객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겨우내 활동량을 줄였던 사람들은 새순이 돋는 봄이 되어서야 다시 또 산을 찾을 것이다. 몇 달 동안 불어난 체중에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말이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요즘 대법원장을 비롯한 몇몇 판사들의 일탈행동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법부는 국민들의 신뢰가 비교적 높은 부처였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 정권과 내란 시국을 거치면서 사법부의 몇몇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제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했고, 그들이 추구해야 할 양심이나 정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과거에도 그런 사람들이 왜 없었을까마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그 바람에 비밀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그런 인사들의 비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의 욕심을 좇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걸 보면 한편으로 가엾고 딱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간혹 잘못 알고 있거나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인생의 여러 경험을 두루 겪어서 판단도 현명해지고, 성격도 원만하게 바뀔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본래 성격이 되살아나고, 감정이나 인지 편향의 통제력이 감소하는 까닭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그야말로 고집불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대개 젊은 시절부터 성격도 좋고 판단력도 좋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조희대 대법원장처럼 늙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벚나무처럼 얇고 여린 잎들은 한 차례 바람에도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