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자주 쓰이지는 않으나 '준동'이라는 단어는 현 시국을 표현하는 데 있어 꽤나 적당한 말인 듯 여겨진다. 준동(蠢動). 한자로는 꿈틀거릴 준(蠢)에 움직일 동(動)을 쓰는데 직역하면 벌레 따위가 꿈틀거린다는 뜻이 되지만 흔히 쓰는 의미로는 '불순한 세력이나 보잘것없는 무리가 소동을 일으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예컨대 '네오나치들의 준동으로 내슈빌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식으로 쓸 수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회에 속하는 소수의 구성원(주로 혐오의 대상이나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이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숨어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때 쓰곤 한다.


오늘은 제79주년 광복절. 뉴라이트 세력이 준동하자 굥 정부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분노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우익은 우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의 우익은 자국의 역사나 민족을 우선시하는데 대한민국의 우익은 자국보다는 일본이나 미국, 심지어 이스라엘을 우선시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우익이 아니라 친일파 혹은 매국노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우익이라거나 보수주의라는 말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의 종군 위안부를 기리기 위한 소녀상에 테러를 가하고 그들을 가리켜 위안부가 아닌 매춘부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챌린지라는 명목으로 기림의 날을 맞아 소녀상에 별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리는 등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장이 될 자는 가장 비인권적인 자가, 노동부 장관이 될 자는 노동계를 가장 비하하는 자가 지명되었다. 국가의 모든 기관을 엉망으로 만들기 위해 각 기관의 취지나 목적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 채워 넣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벌레와 같은 자들이 꿈틀거리며 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음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준동(蠢動)'이라고 한다.


말복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덥기만 하다. 벌레들이 꿈틀대는 대한민국의 실상이 혐오스럽다는 듯 날씨마저 그렇게 변해가는 듯하다. 오늘은 제79주년 광복절.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고, 일제를 위해 그들을 토벌한 이의 명예를 되찾아줘야 한다는, 벌레만도 못한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준동하고 있다. '준동'은 그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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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8-15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말한 ‘검은 세력’에 저도 포함될 것 같아요. 기왕이면 좀 귀엽게 ‘블랙 팬더’ 혹은 ‘검은 푸바오’같은 모습으로 준동할까봐요.

안국역과 잠실에 있는 독도 모형마져 치워버리고(시민의 안전을 위해 라고요. 광복절에 이 기특한 생각을 해낸 거였어요), 동대구역엔 빅정희 광장이 들어섰다고 하더군요.이정도로 시민의 안전을 위했더라면 이태원 사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꼼쥐 2024-08-17 12:46   좋아요 2 | URL
광복절 경축사를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더군요. 초란공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까 싶어요. KBS에서 송출한 기미가요와 반대 모형의 태극기로 인해 하도 말이 많아서인지 지하철역에서 치워졌던 독도 모형은 독도의 날에 맞춰 재설치를 한다고 하더군요. 정말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산을 달리는 러너
박태외(막시) 지음 / 뜰boo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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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산을 오르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무더위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땀이 그렇고, 땀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떼의 공격도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장마철의 호우도 복병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을 오르는 일을 며칠 거르고 나면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온 습관도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다. 슬슬 꾀가 나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지 않을 핑곗거리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야 만다. 몇십 년 묵은 습관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하면서 마냥 미루다 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초입이 되어서야 겨우 운동을 재개하게 된다. 그와 같은 전철을 나 역시 무한반복하면서 계절을 나고 있다. 올여름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길었던 장마 이후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산길을 걷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을 뿐이다.


새벽의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얼굴은 대개 낯이 익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나이가 지긋한,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이다. 그러다 이따금 산길을 달리는 젊은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달렸던 적이 있었는데...' 하는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내 곁을 스쳐 달려 나간 사람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아직 산을 달리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산에서 달리는 게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것과 '등산만큼 산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의욕이 조금씩 모여 산 달리기 책을 쓰기 시작했다."  (p.11 'prologue' 중에서)


박태외(막시)의 에세이 <산을 달리는 러너>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이름조차 생소한 트레일 러닝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이기도 하다. 물론 나로서는 트레일 러닝을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고, 트레일 러닝을 꿈꾸지도 않지만 산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산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몸이 아닌 글을 통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는 게 나의 솔직한 소회이다. 비록 속도의 차이는 존재할지언정 산이 좋아서 산길을 걷는 사람과 산길을 달리는 사람 모두 산과 자연에 대한 애정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샤모니에서 돌아온 후 나는 산이 진심으로 좋아졌다. 달리기가 좋아 산으로 올라간 내가 이젠 산이 좋아 산을 오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남쪽 제주도부터 북쪽 경기도와 강원도까지 아름다운 산과 길을 걷고 달릴 생각에 설렘이 한껏 차오른다. 예전에는 트랜스 제주나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 같은 트레일 러닝 대회를 앞두면 호텔을 찾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텐트를 칠 만한 적당한 곳을 찾을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p.330)


사실 이 책의 출간 목적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모든 이들을 위한 산 달리기 지침서 혹은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책에서는 트레일 러닝에서 쓰는 용어며, 트레일 러닝화, 트레일 폴, 스마트 시계, 러닝 베스트 고르기 등 트레일 러닝에 대한 A to Z가 망라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제품의 브랜드와 제품명을 그대로 썼음은 물론 이쪽 분야에서 이름이 난 사람은 실명이나 닉네임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목차만 보더라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1장 '어쩌다 보니 산 달리기', 2장 '여전히 초보입니다만', 3장 'UTMB의 정체', 4장 '도전! UTMB', 5장 '대회는 최고의 훈련', 6장 '드디어 몽블랑'이 그것이다. 저자의 경험을 책에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써 산 달리기 입문자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산과 달리기가 삶을 더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지금은 책으로 만나지만 다음에는 꼭 함께 호흡하며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대회나 산에서 만나 함께 달리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p.333 'epilogue' 중에서)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입추를 기점으로 대기에 담긴 습도가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몸에 척척 감기는 듯한 끈적끈적한 바람이 아니라 그늘에서 맞으면 약간의 시원함이 곁들인 보송보송한 느낌의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초보 등산객들의 소란과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산을 찾는 목적이 언제나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산에서는 숲의 나무와 바람과 돌과 나누는 대화가 필요할 뿐 사람과의 대화는 그닥 필요치 않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이며 숲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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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부아가 치미는 일이 어디 한두 번으로 그칠까마는 그중 대다수는 쉽게 잊히거나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되어 나중에는 기억조차 희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게 부식되는 사소한 일들로 판명된다. 그러나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일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달아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도 한다. 그럴 때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꾹꾹 눌러 참으면서 견디거나 모든 걸 내려놓거나. 인간으로서 겪는 무력감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다. 자신으로선 어떤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는 막막한 상황. 그렇다고 자신에게 닥칠 피해를 곁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 운명이라며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극한의 고독은 차라리 죽음을 통해 자유로워지도록 종용한다.


명품백 수수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국민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이 정권의 무도함과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최고권력자 일가의 비리를 무마하고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소되거나, 좌천되거나,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가. 고인은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이 '종결'처리된 것과 관련해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해 괴롭다'는 취지로 지인들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는 사건을 종결하지 말고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이를 반대하는 상급자와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건을 '종결'처리한 후 국민들로부터 받게 된 '여사권익위'라는 비아냥과 조롱을 그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현 정부의 인사는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위원장을 이 나라에서 가장 진실과 거리가 먼 그리고 화해와는 더더욱 거리가 먼 사람을 앉히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애쓴 순국 선열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독립기념관의 관장에는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공정을 기치로 내세워야 할 방송통신위원장에는 가장 편파적인 인사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이런 결과는 그 밑에서 일하는 소위 '늘공'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할 것은 뻔한 사실, 제2, 제3의 김 국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올림픽도 이제 막바지, 금메달을 획득한 모 선수가 협회의 부당한 처사와 관행에 대해 반발하면서 대한체육협회 산하 모든 협회의 관행에 제동이 걸린 듯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과거의 관행으로 기필코 회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나는 요즘, 날씨는 도대체 왜 이리 덥기만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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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 - 지는 멘탈에서 이기는 멘탈로
김미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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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니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그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아침이면 도통 잠을 잔 것 같지 않다며 피곤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게다가 보고 싶은 올림픽 중계라도 있는 날이면 피곤은 배가 된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휴가자가 많아 업무가 가중되는 요즘, 만사 제쳐두고 농땡이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을 찾아 꾸역꾸역 처리하다 보면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만 흐르고 풀릴 새 없는 피곤은 쌓여만 간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풀어진 몸으로 귀가를 하여서도 쉽게 잠들 수 없는 조건은 이어진다. 아침까지 이어지는 열대야와 올림픽 중계. 나는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요즘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곱씹어볼 만한 여력도, 행동에 앞서 이것저것 되짚어볼 만한 여유도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갈 때에는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생각들은 바닥난 체력으로 인해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토막토막 끊어져 깊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러진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지금 인생을 이렇게 허비해도 될 나이인가?' 등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맥락도 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시간의 유속을 따라 자맥질하듯 구르며 떠내려간다. 생각을 따라 움직이는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우리는 종종 휴식을 잊고 삽니다. 성공하려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고 착각하는데, 이는 큰 오해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양의 휴식을 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휴식은 마라톤으로 치면 숨고르기와 같습니다. 호흡이지요. 휴식은 숨과 같은 존재입니다. 들이쉬고, 내쉬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쉬어야 우리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p.259)


국내 최고의 스포츠심리상담사 김미선이 쓴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은 올림픽이 한창인 지금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일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경쟁에 나서는 선수들. 그들의 얼굴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실패에 대한 불안감도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감을 안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터, 그들의 이면에는 김미선 스포츠심리상담사와 같은 이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은 1장 '시작하는 마음', 2장 '행동하는 마음', 3장 '실패하는 마음', 4장 '도약하는 마음', 5장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누구나가 강철 멘탈의 소유자로 거듭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어떤 일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쯤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만 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 약점을 개선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실패는 마침표가 아닙니다. 성장의 기회입니다. 또 '불안'이라는 감정을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이해하며, 잠재력을 끌어내고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도구로써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들은 쉽게 상실감에 빠지지 않으며, 외부의 잡음보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승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불안으로 성장하고, 실패로 성장해 마침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도전의 이유고, 삶의 목적이지요."  (p.18 '프롤로그' 중에서)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나 인터뷰를 모두 시청한 건 아니지만 사격에서 은메달을 딴 김예지 선수의 인터뷰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속사권총에서 시간초과로 0점을 받고 예선탈락했지만 그녀는 "한 발을 놓쳤다고 울지는 않았다. 인생은 계속되고 이건 하나의 대회일뿐, 사격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0점 쐈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한 일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이 났음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행운이 날아들 수도 있다. 삶은 그렇게 성공과 실패의 반복으로 꾸려지는 홀짝 게임일지도 모른다.


"가끔 보면 산다는 건 참 억울하지요.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타이밍은 항상 어긋나고, 그러나 삶은 원래 억울한 것이고 불공평한 것입니다. 꿈의 여정은 직선으로만 쭉 뻗어나가지 않아요. 울퉁불퉁 굽이치면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갑자기 날아오르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임계점을 넘어서 다른 존재가 되는 순간 말이지요."  (p.175~p.176)


우리는 종종 올림픽 경기의 승패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선수들이 했던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태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들 각자에게도, 선수들 개개인에게도 올핌픽은 단지 하나의 이벤트일 뿐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실패를 자주 경험하라는 건 아니지만 실패 역시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의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척이나 더웠던 2024년의 여름도 결국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올림픽 폐막일이 멀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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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으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의 문구가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익숙할지 모르겠다. 손바닥을 맞아 가며 달달 외우도록 교육받았던 게 아마도 초등학교(그 시절에는 국민학교) 시기였지 싶다. 뜻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한자투성이의 문장을 어리디어린 초등학생이 외운다는 건 무리가 있는 일이었지만 군부 독재의 험악한 시절에 이러한 사정은 결코 용인되지 않았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군대식 교육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던지라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한 학생은 방과후에 남아서 다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여 담임 선생님께 확인을 받아야 했다.


내가 기억도 흐릿한 '국민교육헌장'을, 한 세기 전의 추억을,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까닭은 그 시절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다른 건 몰라도 국사 교육에는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로 보면 분명 그 시절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 분명한데 국사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듯한, 어쩌면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듯한 사람들이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종군 위안부가 강제냐 자발적이냐는 질문에 대해 논쟁적인 사안이라 답변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있어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 문제를 삭제하는 데 우리나라 외교부 직원들이 동의해 주는 등 현 정부의 요직을 담당하는 자들이 국사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야말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 국가의 요직을 맡고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국사 교육은 전혀 받은 바 없는 듯한 사람들의 행보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일컬어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로 정정하기도 하고, 대한민국 군대를 자위대의 꼬붕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추진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으로 고생을 했던 우리 선조들에 대한 일본의 배상 판결도 무위로 돌리려고 부단히 노력 중에 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총독부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연일 폭염 경보와 주의보로 한반도가 들끓고 있다.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은 이 시점에 한 마리의 바퀴벌레와 같은 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 모두를 한 배에 태워 일본으로 보내버렸으면 싶다. 물론 약아빠진 일본 정부가 그런 얼빠진 사람들을 받아줄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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