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을 달리는 러너
박태외(막시) 지음 / 뜰book / 2024년 7월
평점 :
여름에 산을 오르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무더위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땀이 그렇고, 땀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떼의 공격도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장마철의 호우도 복병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을 오르는 일을 며칠 거르고 나면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온 습관도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다. 슬슬 꾀가 나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지 않을 핑곗거리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야 만다. 몇십 년 묵은 습관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하면서 마냥 미루다 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초입이 되어서야 겨우 운동을 재개하게 된다. 그와 같은 전철을 나 역시 무한반복하면서 계절을 나고 있다. 올여름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길었던 장마 이후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산길을 걷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을 뿐이다.
새벽의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얼굴은 대개 낯이 익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나이가 지긋한,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이다. 그러다 이따금 산길을 달리는 젊은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달렸던 적이 있었는데...' 하는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내 곁을 스쳐 달려 나간 사람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아직 산을 달리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산에서 달리는 게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것과 '등산만큼 산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의욕이 조금씩 모여 산 달리기 책을 쓰기 시작했다." (p.11 'prologue' 중에서)
박태외(막시)의 에세이 <산을 달리는 러너>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이름조차 생소한 트레일 러닝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이기도 하다. 물론 나로서는 트레일 러닝을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고, 트레일 러닝을 꿈꾸지도 않지만 산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산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몸이 아닌 글을 통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는 게 나의 솔직한 소회이다. 비록 속도의 차이는 존재할지언정 산이 좋아서 산길을 걷는 사람과 산길을 달리는 사람 모두 산과 자연에 대한 애정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샤모니에서 돌아온 후 나는 산이 진심으로 좋아졌다. 달리기가 좋아 산으로 올라간 내가 이젠 산이 좋아 산을 오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남쪽 제주도부터 북쪽 경기도와 강원도까지 아름다운 산과 길을 걷고 달릴 생각에 설렘이 한껏 차오른다. 예전에는 트랜스 제주나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 같은 트레일 러닝 대회를 앞두면 호텔을 찾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텐트를 칠 만한 적당한 곳을 찾을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p.330)
사실 이 책의 출간 목적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모든 이들을 위한 산 달리기 지침서 혹은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책에서는 트레일 러닝에서 쓰는 용어며, 트레일 러닝화, 트레일 폴, 스마트 시계, 러닝 베스트 고르기 등 트레일 러닝에 대한 A to Z가 망라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제품의 브랜드와 제품명을 그대로 썼음은 물론 이쪽 분야에서 이름이 난 사람은 실명이나 닉네임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목차만 보더라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1장 '어쩌다 보니 산 달리기', 2장 '여전히 초보입니다만', 3장 'UTMB의 정체', 4장 '도전! UTMB', 5장 '대회는 최고의 훈련', 6장 '드디어 몽블랑'이 그것이다. 저자의 경험을 책에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써 산 달리기 입문자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산과 달리기가 삶을 더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지금은 책으로 만나지만 다음에는 꼭 함께 호흡하며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대회나 산에서 만나 함께 달리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p.333 'epilogue' 중에서)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입추를 기점으로 대기에 담긴 습도가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몸에 척척 감기는 듯한 끈적끈적한 바람이 아니라 그늘에서 맞으면 약간의 시원함이 곁들인 보송보송한 느낌의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초보 등산객들의 소란과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산을 찾는 목적이 언제나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산에서는 숲의 나무와 바람과 돌과 나누는 대화가 필요할 뿐 사람과의 대화는 그닥 필요치 않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이며 숲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