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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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가까운 미래를 염두에 둔 채 살아간다. 시간에 대한 거리감이 없는 우리로서는 가까운 미래를 곧 닥칠 현재로, 비교적 먼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가상의 세계쯤으로 인식하는 게 다반사이다. 그런 까닭에 오롯이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가까운 미래가 현재인 양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비교적 먼 미래로 인식되는 젊은이들도, 아주 가까운 미래로 생각해야 마땅한 노인들에게도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미래이면서 또한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듯한 까마득히 먼 미래인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실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고 만다.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죽지 못해 살아갈 때도, 이별 후 죽고 싶었던 어느 젊은 날에도, 죽을 만큼 심심했던 어느 휴일 오후에도 '죽음'은 가깝고도 먼 미래였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빅토리 노트』에서 이옥선 작가님은 노자의 사상을 인용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대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저보다 한참 오래 산 선배가 조금 느긋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게 참 마음이 놓여요."  (p.35)


김혼비 작가와 황선우 작가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모아 묶은 서간에세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우리에게 잊혀진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편지. SNS의 즉각적인 문자 메시지가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린다는 건 꽤나 답답하고 지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라디오 드라마가 그렇듯 소리만으로 극 중 인물과 상황을 떠올리며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처럼 편지지를 수놓은 빼곡한 글씨를 통해 상대방의 얼굴과 감정을 상상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물론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느낌을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편지를 쓴다는 건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오직 미래를 향해 달리려고 하는 현대인의 불치병, 조급증을 치료하는 데 꽤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몇 달을, 특히 여름을 번아웃 상태로 통과하면서 번아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번아웃이 일 효율을 깡그리 앗아가는 통에 한 번 붙든 일이 끝나질 않아 마음놓고 놀거나 쉴 시간까지 사라지는 게 가장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휴식과 저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다리마저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번아웃이더군요."  (P.63)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 오가던 편지에는 남에게 내보이지 못했던 자신의 고민이 조심스레 내비치기 시작했고, 세상 사람들이 김혼비 작가에게 늘 작가와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어쩌면 그렇게 현명하게 잘 적응하느냐 묻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오래전부터 번아웃에 시달려왔음을 편지에 쓰게 된다. 선우씨, 혼비씨 하는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조차 어색하기 짝이 없었던 두 사람이 자신에게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내보일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편지가 갖는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단어 하나에도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하지만, 답장을 기다리며 어떤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될지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쓰고 지워지는 경험을 겪게 되는 동안 속절없는 기다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더불어 편지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자신의 편지를 통해 상대방을 이겨먹거나 으스대기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혼비씨,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몸이었어요. 제가 계속 내일을 기대하며 낙관적으로 살아온 건 대단히 의지가 강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꺾이지 않는 식욕 덕분이었던 거죠. 제 태도나 생각이 개방적이었다면, 많은 부분은 활짝 열린 혀와 위장으로 세상과 만나겠다는 자세에서 왔을 거예요."  (p.175)


단순한 에세이를 통하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과 편지라는 특별한 양식을 통해 다정한 이에게 상담하듯 조금씩 조금씩 털어놓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편지라는 특별한 형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과거의 특별한 기억마저 함께 소환하는 까닭에 텍스트에 담긴 의미에 더하여 독자의 경험과 그때의 감정까지 함께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준다. 특히 인터넷이 없던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더구나 글을 쓰는 일이 본업인 작가에게 있어 편지란 얼마나 유용한 도구이며 얼마나 되찾고 싶은 감성일지...


"더 놀라운 것은 초반에는 (목탁이 필요할 정도로) 조금 헤맸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편지 쓰는 일이 정말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이래서 편지를 쓰는구나. 다들 이런 마음으로 썼겠구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쓰는 동안만이 아니라 쓰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편지를 받을 상대방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이제서야!) 알았고, 떠올릴 때마다 웃음과 기운이 나는 사람을 자주 생각하는 게 얼마나 삶을 즐거운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새삼 온 마음으로 느낀 1년 남짓의 여정이었다."  (p.216)


4월도 다 가고 만 지금은 이팝나무의 계절. 순쌀밥(이밥)처럼 흰 꽃들이 풍성하게 피고, 우리는 이 계절에 배달된 배불렀던 기억들을 꽃잎에 적힌 사연인 양 읽고 또 읽는 것이다. 봄마다 피는 꽃은 지난 기억들을 담은 한 통의 편지. 우리는 그 편지를 사진에 담고 다음에 올 봄을 기다리며 또 한 해를 견딘다. 꽃잎에 담긴 기억의 편지 한 통을 우리는 내년 봄의 자신에게 아쉬운 마음을 담아 부친다. 4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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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 시기가 누구나 있게 마련이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음으로 양으로 쌓였던 내공이 마침내 도래한 시대의 유행 시기에 끝 간 데 없이 분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늘 술이나 처먹고 방귀나 뿡뿡 뀌던 자가 대통령으로 대접받는 경우는 좀 사정이 다른 듯하다. 사적인 행운이나 시대를 잘 만나서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고 께름칙한 면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용변을 본 후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것조차 사적인 행운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로 인한 많은 이들의 불행 역시 어찌할 수 없는 각자의 운명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 해석이 정당한가.


총선도 끝났건만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물론 22대 국회는 개원도 하지 않았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도 국정을 쇄신해야 되겠다는 어떠한 경각심도, 이렇게 가다가는 뭔가 사달이 나겠다는 불안감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고,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뜻대로 밀고 나갈 생각인데 너희들이 어쩔 건데?' 하는 생각이 여권 전체를 대변하는 형세판단인 듯하다. 그런 와중에 피해는 전적으로 힘없는 국민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 총선 전부터 치솟았던 과일값은 말할 것도 없고 양배추 한 통에 9000원이라니... 자주 가던 닭갈비집에서도 푸짐하게 넣어 주던 양배추는 그 양이 반 이상 줄어든 느낌이다. 제육볶음에 들어가던 양배추도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그렇고 고깃집에서 항상 푸짐하게 내놓던 각종 채소는 이제 먼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회사 근처의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살다 살다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다." 하는 말을 유행가 가사처럼 듣게 된다. 총선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마치 큰일이라도 난 양 떠들고 있다. 나는 오히려 아직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대한민국 국민 비율이 20%대가 된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한데 말이다. 최근 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처음으로 158엔선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처럼 사상 유례가 없는 엔화 약세는 일본 제품의 수출에는 긍정적이지만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강력한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물가 상승을 능가하는 임금 인상이 뒤따른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이런 추세는 그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원/달러 환율도 1400원을 추월할 기세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초콜릿이며 커피 등 인상을 앞둔 수입 제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손을 놓고 있는 듯하고...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민 각자가 제 앞가림을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일기를 쓰지 않는 대신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라도 자주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당최 의욕이 나지 않는다. 저질 체력 때문인가? 하고 그 원인을 유추해보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저질 체력이 아니라 저질 의지가 문제라면 문제이다. 저질 의지를 개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데 도무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이참에 <저질 의지 개선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책이라도 한 권 써야 하나? 내 인생에 작가가 될 운세는 없었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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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3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배추 값 보고 놀랐어요
야채박스에 굴러다니다 결국 버린 쪼가리가 생각나대요^^
그렇게 막 대할게 아니었는데,,,

꼼쥐 2024-04-30 16:09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후회하고 있습니다. 반성이나 자책도 함께.
냉장고에서 굴러다닐 때만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곤 했는데...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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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가 트인 생각이 수로를 따라 외길로 흐를 때가 있다. 논에 물을 대는 모든 봇도랑이 그렇듯 외길로 흐르는 생각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거나 또 다른 생각과 합쳐지지도 않는다. 하나의 결과 혹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생각은 대개가 부정적이다. 긍정적이거나 합리적인 생각은 그렇게 조금의 여유도 없이 외길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따금 본류를 벗어나 겉돌기도 하고 다른 생각과 자연스레 합쳐지기도 한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처한 고민이나 상실의 고통 등은 오직 외길의 수로를 따라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헤맬 뿐이다.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시간을 통해 선명했던 그 길을 차츰 지우는 방법뿐이다. 시간이 지운 그 길은 옅은 흔적만 남긴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언제든 잊었던 그 길의 흔적이 선명하게 되살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이 되풀이된다면...


"도박에 빠져든 뒤로 남편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걸핏하면 불끈해서 험한 욕설을 퍼붓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가정 폭력을 저지르곤 했다. 견디다 못해 나는 아야나를 데리고 남편에게서 도망치듯이 집을 뛰쳐나왔다."  (p.33)


시가 아키라의 미스터리 소설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는 꽤나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시대상을 그린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게 대개 흡입력이 있고 마니아층을 형성한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호평을 받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마구잡이로 출간되는 미스터리 소설로 인한 폐해는 많은 독자들의 이탈을 부추겨왔던 것도 사실이다. 미스터리 소설의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실력 있고 참신한 신예 작가의 유입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017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데뷔한 시가 아키라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최근 발표한 <너는 속고 있다>는 지금 일본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SNS 불법 사채업'을 소재로 재구성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고 아야나마저 잃어버린 뒤로 사채업의 트러블을 해결하기에 급급해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은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었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동안에도 벚꽃은 몇 번이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이렇게 아낌없이 떨어져 흩어졌을 것이다."  (p.307~p.308)


사업 실패 후 폭력적으로 변한 남편을 피해 일곱 살 딸아이를 데리고 도쿄로 도망쳐 나온 싱글맘 누마지리 다카요는 콜센터 일을 했던 경력을 살려 클레임 처리팀의 상담사로 일했으나 산경에 이상이 생겨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자 3개월째 연체된 임대료를 열흘 안에 납부하지 못하면 강제 퇴거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변변한 직장도 없는 그녀에게 돈을 융통해 주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녀는 결국 SNS로 고객을 모집하는 불법 사채업자에게 매달리게 되는데...


"사채업자라고 하면 살벌하다 못해 끔찍한 폭력과 피 튀기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사채업자들은 '소프트 사채'라는 신조어처럼 겉으로는 말랑하게 예의를 차리는 보통 사람입니다. 이웃처럼 선량한 얼굴의 사채업자라니, 더더욱 피부에 스며드는 오싹함이 있습니다."  (P.325 '옮긴이의 말' 중에서)


생각의 외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같은 길을 헤매는 이는 오히려 사채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한 달 이자 9%라는 살인적인 금리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미래의 일은 그다음의 문제일 뿐이다. 당장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채의 늪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그렇게 더욱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채업자들 역시 이런 심리를 십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 시가 아키라의 소설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를 읽는 독자라면 채무자의 딱한 사정과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에 탄식하며 안타까움에 몇 번이고 손에서 책을 놓게 될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마련한 마지막의 반전에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터리 소설의 묘미는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비가 그친 바깥 풍경은 마치 물때를 제거한 유리창처럼 맑고 신선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하지만 덥다 싶었던 기온이 제자리를 찾아서인지 산책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선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 보인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불법 사채업의 수렁에 빠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질지 걱정이 되지만 오늘은 일단 선선한 날씨의 일요일 오후. 산책에 나선 저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이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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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도 지난 주말,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때마침 비가 내린다. 여기저기 초록이 짙어지고 있다. 떡갈나무 잎사귀도 손바닥만큼 자라 등산로는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삶이란 언제나 '제로섬 게임'인지라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잃는 게 순리, 다만 우리의 인식은 두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를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기대했던 수익을 거뒀다면 그것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이 잃었던 것들(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거나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건강 악화 등)에 대해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사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앞둔 이들의 절절한 고백을 마치 유언인 양 듣게 된다. 그러나 삶이 지속되는 한 운명과도 같은 인간의 우둔함은 피하기 어렵다.


마르셀 서루의 소설 <먼 북쪽>을 읽고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던 것은 물론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몇 가지 현실적 묘사는 우리에게 은연중에 소름을 돋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사태가 그저 픽션의 장치가 아닌,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임을 이미 알아버렸다. 우리가 이야기라는 장치를 헤쳐 가는 동안 발견하는 것은 통절할 정도의 공감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마치 선거 전에는 100% 잘하던 정부가 선거를 기점으로 180도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손바닥을 뒤집듯 순식간에 표변하는 행태는 비단 언론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대답이 30%대 중후반을 넘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발표하던 여론조사가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건 여당의 지지자들뿐만이 아니다.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선거에 상관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왔더라면 신뢰는 고사하고 욕이라도 덜 먹었을 텐데 이제는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으로부터 어떤 신뢰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언론사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말이다. <먼 북쪽>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아버지가 늘 말했듯이, 자궁의 원시 진흙에서 썰매를 타고 빠져나온 이후로 우리를 규정한 건 바로 결핍이었다. 치즈, 교회, 예절, 절약, 맥주, 비누, 인내, 가족, 살인, 울타리. 무엇을 행하고 만든들 모두가 결핍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돌아가기에 충분치 못하거나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투쟁하거나 투쟁에 실패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곡우가 딱 하루 지난 오늘 풍년을 예감하듯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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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4-21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지않는 채널이지만 들리는 소문에 심지어 TV조선에서도 이제 ‘버렸다‘고
하더군요. 보수도 아닌 수구를 보수언론이 여태 구분하지 못했다는건지..기대는 안하지만 언론이 이제부터라도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꼼쥐 2024-04-27 12:54   좋아요 2 | URL
버릴려면 진작에 버렸어야지 다 망하고 나니까 손을 끊겠다는 건 너무 속 보이는 짓이 아닌가요? 그렇다고 다른 대안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홍준표를 띄워줄 수도 없고...
 
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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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읽을 책이 쌓인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배가 불러 결국 다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라도 여러 반찬이 놓인 밥상은 언제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처럼. 게다가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나 3권 이상의 장편 소설이라도 보일라치면 고되고 긴 여정을 앞에 둔 순례자처럼 괜스레 설레는 것이다. 최근에 나의 책상 위에는 다 읽어서 치워지는 책보다는 읽기 위해 새로 올려지는 책이 더 많았던 까닭에 책상은 수시로 난장판이 되곤 했다. 이 책 저 책을 꺼내 읽다가 읽던 쪽을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 남짓 위치를 바꿔가며 책상 위를 떠돌던 책이 허먼 멜빌의 대작 <모비딕>이다. 나는 김석희 작가의 개역판 <모비딕>을 앞에 놓고 책의 화자인 이슈메일과 함께 문제의 포경선 '피쿼드호'에 탑승하였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게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43)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껴 뉴욕 맨해튼을 떠나 동부의 낸터컷에서 피쿼드호에 탑승한 이슈메일 일행은 추운 크리스마스 날 운명의 항해에 나선다. '신과 같은 남자' 선장 에이해브는 한쪽 다리를 잃고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했으며 모비딕을 향한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에이해브 선장은 무리한 항해를 말리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충고를 뿌리치고 모비딕을 끝까지 쫓는다. 대서양에서 출발한 배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그리고 마침내 태평양에 도달한 그들은 모비딕과 대면하게 된다. 


"나는 희망봉을 돌고 혼곶을 돌고 노르웨이의 마엘스트롬을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놈을 추적하겠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 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해하는 목적이다... 나는 놈에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우는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 내가 증오하는 건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 흰 고래가 앞잡이든 주역이든, 나는 그 증오를 녀석에게 터뜨릴 것이다. 천벌이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다. 태양이 나를 모욕할 수 있다면 나도 태양을 모욕할 수 있을 테니까."  (p.250~p.251)


1800년대에 쓰인 이 소설은 사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하고, 대화에 있어서도 신파적인 요소가 다소 눈에 띈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명상을 각각의 인물에 투영하여 어색하지 않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소설은 존재적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실제로 포경선에 승선하였던 경험과 해군 수병으로 복무하였던 경험 등 파란만장했던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된 까닭에 소설에서 작가는 포경업에 대한 지식적 탐색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나간 네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아득한 곳에서 밀려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더욱 높게 일게 하라!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너와 끝까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르고,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증오를 담아서 뱉어주마. 관도, 상여도 모두 같은 웅덩이에 가라앉혀라! 어떤 관도, 어떤 상여도 나에겐 소용없다. 저주받을 고래여, 나는 너에게 묶인 채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이 부서지겠다. 자, 이 창을 받아라!"  (p.760)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평가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현대의 관점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를 평가한다는 건 여러 면에서 모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소설 <모비딕>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읽힌다는 건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인간 본성과 불굴의 의지가 세대를 건너 감동을 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p.403)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 '인간은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는 동안 10년 전의 세월호처럼 '죽음으로 급선회'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보름 남짓 내 책상 위에서 장식품처럼 뒹굴던 <모비딕>을 치우며 10년 전 오늘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했다.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였던 이슈메일. 화자인 이슈메일의 타임라인을 따라 전개되는 장대한 이 소설이 오늘따라 슬프게 읽혔던 것도, 보름 남짓 정들었던 책의 표지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던 것도 소설 속에 쓰러져가는 세월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터. 하늘엔 뿌옇게 황사먼지가 떠돌고 나는 어쩌면 눈물 한 방울 흘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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