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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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똑같은 글을 써도 글쓴이의 성격이나 개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작가가 있다. 마치 자신의 글 속에 영혼의 빛깔과 무늬를 안 보이는 곳에 몰래 숨겨 놓기라도 한 듯 말이다. 독자는 책의 한 페이지 또는 누군가 인용한 단 하나의 문장만 읽어봐도 '그래. 이건 아무개의 글이 확실해.' 라고, 단박에 알아채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런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글 속에 영혼의 문장(紋章)인 양 자신만의 고유한 표식을 새겨넣을 수 있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작가의 집에 정중히 초대된 느낌을 받곤 한다. 하여, 나는 작가가 따라 준 차 한 잔을 마시며 작가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마스다 미리'는 내게 그런 작가로 비쳐진다. 작가는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들고 있던 곤충 채집상자의 모래가 쏟아져 어쩔 수 없이 모래를 쓸어 담는 아이를 도와주며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망상에 빠지는 버릇이 있어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거나 마흔의 나이에 친구와 함께 '저스포 축제'(저스트 40이 된 축하 여행)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의지하거나 응석 부리는 것이 서툴러서' 오래된 치통을 안고 살기도 하고, 서점에서 자신의 책을 들춰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는 독자에게 직접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되는 날 오래 머물렀던 집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좋고 싫음이 분명하여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도 못한다. 그런 자신을 뻔히 알고 있는 작가는 '앞으로도 철없는 어른인 채 나이만 먹어갈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나는사람을 싫어하면 온 마음이 싫음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싫은 사람은 싫어만 하는 게 아니라, 용서한다거나 용서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차원을 넘어서 무작정 싫어한다. 싫어한 채 잊고 살다가, 이따금 무슨 계기로 아아, 싫어하길 잘했어, 와하하, 하고 확인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한다고 했던 음식조차 싫어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친한 사람도 좀 싫어진다." (p.133)

 

그러나 그녀의 글이 항상 철없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전문대생 시절에 그렸던 서양화를 귀중품이라도 되는 양 끌어 안고 사시는 엄마에게 창피하니까 제발 버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 거라는 말에 가슴이 짠해지기도 하고, 젊은 엄마와 네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작은 돌멩이 밥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며칠 전 뉴스에서 본 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물 주세요, 라고 부모에게 애원했지만 끝내 굶어 죽고 만 사건이었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좋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연극의 여운을 가슴에 안은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니, '인생, 이런 느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천천히 밀려왔다." (p.65)

 

기모노를 멋지게 차려 입고 외출할 생각에 부풀어 기모노 입기 교실을 수강하고, 감기에 걸린 날 출근하는 남자친구의 귀가 시간을 묻게 되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원작으로 읽고 애니메이션의 훌륭함에 감동하기도 하고,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매료되어 피아노 교실을 수강하기도 하고, 새로 산 로봇 청소기를 보며 기특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 아이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일기와 다름없는 그녀의 글에 감동하게 된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마음을 바꿔먹으려고 애쓰지만, 검지 하나조차 얌전히 두지 못하는데, 내 몸에서 가장 큰 '마음'을 간단히 조정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침울할 때는 그런 식으로 암시를 걸어 어떻게든 자신을 뜻대로 하려고 애쓰는 나." (p.208)

 

제제가 그랬듯 작가도 어쩌면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하고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새'를 떠나보낼 결심을 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도 희미하게 살아 있을 그 새를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우리가 이따금 꿈꾸었을 평온한 일상을 가만가만 들려주거나 특별하지 않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가 인생에 몇 번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그 한 번에 들어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니, 잠깐만. 꽃가루 때문에 눈이 엄청나게 가렵다. 완벽한 행복까지는 앞으로 한걸음." (p.203)

 

살아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마음 속에 있는 '당신의 무늬'를 완벽하게 지우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순전히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마음 속에 '당신의 무늬'를 간직한다는 것, 그 무늬결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마스다 미리의 수필집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를 읽으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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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결정 발표와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성주군민을 보면서 들었던 솔직한 심정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매번 그와 같은 중요한 결정에 앞서서 국민들의 동의를 먼저 구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정부의 무능함에 화가 솟구쳤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공청회다, 주민들 의견 수렴이다, 전문가의 설명회다 해서 주민들을 만나 수차례 설득하고 최종적으로 주민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 정책을 결정하는데 같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왜 그게 안 되는가 말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국민들에게는 우리가 알아서 이러이러하게 정했으니 너희들은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관료주의적 발상을 언제쯤에나 버릴 수 있을지 참으로 한심할 뿐이다. 어떤 돌대가리가 그런 고릿적 발상을 했으며 그걸 따르는 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왜 그걸 모르는지 답답하다. 도대체 이게 뭔 꼴인가. 사드 문제로 나라 전체를 벌집 쑤시듯 쑤셔 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비애국자로 매도하는 걸 보면 정부 관료라는 작자들의 인식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경상도 지역이라서 그런지 언론도, 정부도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는 주민들을 빨갱이로 매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늘 국방부 장관과 총리가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상주를 찾았다가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모양이다.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총리가 사드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드 배치 후 가족들과 함께 1년쯤 상주에서 살아보겠노라 약속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프랑스 니스의 테러로 전세계가 뒤숭숭한데 사드 문제에만 골몰하다가 니스 테러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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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7-15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국민들 의견을 물어볼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왜 우리는 늘 일을 섣불리 벌려놓고 그 ‘뒤치닥거리’에 온 국력을 낭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백년하청입니다. 구한말이나 21세기 지금이나 대한민국 헬조선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장차 대한민국/헬조선이 망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가 먼저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꼼쥐 2016-07-16 11:02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국민들에게 의견을 묻는다는 게 고위 관료나 정부 부처의 수장들의 낯을 깎거나 자존심을 구기는 일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물론 국민들이 개 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억의집 2016-07-15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번 찍는 지역이라 사드를 배치한다고 해도 넙죽 받아줄 줄 안 거 아닐까요? 마을회관에 닭사진 큰 거 걸어놓은 거 보니.... 우상 숭배가 북한과 같은 수준인데, 닭이 그렇게 해라 이러면 네네하고 개처럼 꼬리칠 줄 알았던 거죠. 닭정부는 나향욱처럼 국민을 특히 경상도민을 개로 보는 거죠. 꼬리 흔드는 개!

꼼쥐 2016-07-16 11:05   좋아요 1 | URL
아마 그렇게 판단하겠죠. 자신들이 결정하고 발표를 한다 해도 잠깐 반항하다가 금세 수그러들겠지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조금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을 테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는데 그들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거겠죠. 이런 일이 전라도 쪽에서 벌어졌다면 아마도 언론을 통하여 빨갱이라는 둥, 매국노라는 둥 난리가 났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6-07-15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대로 사드배치를 비롯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많이 아쉽습니다. 지금 이 과정도 더 나아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꼼쥐 2016-07-16 11:10   좋아요 1 | URL
결국 지금의 여당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정당이었죠. 이제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졌고 안보 프레임이나 지역색으로는 먹히지 않는다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동안 지탱했던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더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사분오열 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발악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멋대로 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게 마지막일 듯.

우민(愚民)ngs01 2016-07-16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하고 국민들의 정보력과 사고력들도 다 발전했는데 이 정권은 아직도 60년대나 70년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세월호 문제도 아직 진행형이고 국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막가파식의 발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실에 입각해서 공청회도
열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꼼쥐 2016-07-21 14:17   좋아요 1 | URL
옛시절에 대한 향수로 버티는 정당이 새누리당임을 감안한다면 그것도 이번 정권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호가호위 하면서 잘 살았던 거죠.

겨울호랑이 2016-07-1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면 사건의 반대편에는 생각하지 못한 숨겨진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드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래도 정부 덕분에 국민 의식은 많이 깨어났습니다. 고마워해야할 일이지요. 대가가 조금 많이 비싸서 그렇지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꼼쥐 2016-07-21 14:19   좋아요 1 | URL
대가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비쌌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가 확실한 거라면 감수해야 하겠지요. 김진명 작가의 `싸드`가 잘 팔린다는 걸 보면 국민들 의식도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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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큰둥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온 국민의 캐치프레이즈인 양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누가 지어 낸 말인 줄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그 말이 진리이자 정의인 양 떠받들었다. 정말 그랬다. '떠받들었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강조하자면 '신봉하였다'고 해도 좋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 말을 내가 심하게 비꼬고 있는 듯 오해하실 분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그런 건 아니다.(주변에는 아직도 그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에게 위해를 가할까봐 어쩔 수 없이 덧붙이는 말이다.-나는 비교적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웃기는 발상이지만 이런 생각을 일관되게 밀어붙여 성공한 나라가 있다. 그건 바로 초강대국 미국이다. 미국의 인기 있는 영화나 소설은 어느것 할 것 없이 미국적인 냄새가 난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는 인기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A형(고진감래형)-흙수저로 태어난 어떤 사람이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성공한다는 유형, B형(사필귀정형)-승승장구하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곤경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자신을 곤경에 빠트린 악의 근원을 모두 제거한 후 화려하게 복귀한다는 유형, 그 외에도 더 있지만 이쯤에서 접고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두 유형에서 어쩐지 서부영화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나요? 서부영화가 아니라 무협지 냄새가 난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나는 줏대가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금세 수용하는 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가장 미국적인 것'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은 언제나 고정 독자층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에 읽었던 그의 소설 <템테이션>도 다르지 않았다. 소설의 구성을 간단히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두 유형을 적절히 섞어 놓았다고 보면 된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짐작할 것이다. 하나만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데 두 유형을 섞어놓았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말이다. 벌써부터 읽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두 명이나 보인다.

 

무명의 극작가인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어느 날 그의 에이전시로부터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유명 방송국 FRT에 팔렸다는 꿈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 작가의 세월을 견딘 지 십삼 년만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성공을 기원하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 온 아내 루시와 딸 케이틀린이 있다. 그의 대본으로 제작된 시트콤 '셀링 유'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시트콤의 시즌 연장이 결정되고,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영화제작사와의 계약이 줄줄이 성사된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삶은 어쩔 수 없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더 복잡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갈증에 자극을 받으며 더욱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던 걸 성취하면 또 다른 바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린 또 다시 결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완벽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든다. 그때껏 이룬 것들을 모두 뒤엎더라도 새로운 성취와 변화를 찾아 매진한다." (p.121)

 

성공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그의 주변에도 그를 유혹하는 것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능한 투자 브로커인 바비 바라가 그의 자산 관리를 맡게 되고, 억만장자인 필립 플렉으로부터 '시나리오'에 관한 엄청난 제안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에미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한 그는 집과 차를 바꾸고 급기야 아내마저 바꾼다. 폭스텔레비전의 젊고 예쁜 이사 샐리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자 이제 유형 B로 넘어갈 시간이 왔다. 잘나가던 그가 아내 루시와 이혼하고 샐리와 동거를 시작했던 그는 어느 날 표절 시비에 휘말린다.연예인들의 가십이나 캐는 무가지 삼류 기자인 테오 맥콜은 그가 쓴 대본에서 표절의 증거를 찾아 내어 기사화하지만 그에게 우호적인 방송국과 여러 언론에 의해 무마되는 듯했다. 처음에는 말이다. 테오 맥콜은 다른 증거들을 상세히 수집하여 다시 기사화하자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는 금세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내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쓸수록 '최악의 거짓말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p.285)

 

방송국에서 해고되고 모든 계약이 취소된 그는 이제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샐리로부터 날아온 이별 통보와 전처 루시에 의한 그의 딸 케이틀린에 대한 접근금지명령. 그는 이제 회복 불능의 위기에 처햇다. 그러나 그의 에이전시 앨리슨만큼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의 거처를 마련해주고, 상담치료사를 붙여주고, 일거리를 주선하고, 이 모든 음모의 배후를 캔다. 앨리슨의 도움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한 그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다시 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모든 걸 줄이자 기분이 묘했다. '버릴수록 자유롭다' 같은 뻔한 헛소리가 아니라 확실히 삶이 단순하고 편해졌다. 앨리슨이 마지막으로 맥콜의 칼럼을 읽어주었을 때 느낀 멍한 기분은 여전히 벗어던질 수 없었다. 그저 자동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신용카드를 모두 자르거나 노트북컴퓨터를 판 것도 그랬다." (p.347)

 

그러나 그렇게 끝나버린다면 미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겠는가. 위기의 순간에 그를 도와줄 구세주가 짜잔 하고 등장한다. 앨리슨의 노력에 의해 그를 나락으로 빠트린 음모의 배후에 억만장자인 필립 플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워낙 교묘하게 설계된 계획인지라 반격을 가할 증거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그를 나락으로부터 구해준 사람은 바로 필립 플렉의 아내 마사였다. 필립에게 보기 좋게 카운터펀치를 날린 데이비드는 원래의 자리로 복귀한다. 게다가 필립과의 TV 대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필립이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의 돈도 받게 된다.

 

"인생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선택을 하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요. 그게 바로 '인과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정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늘 남 탓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았다거나 사악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진정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되죠." (p.426)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배신했던 투자 브로커 바비 바라와 샐리는 그가 복귀함으로써 다시 연락을 시도하지만 그는 끝내 거절한다. 이제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셈인가? 아, 하나가 남았다. 루시와 케이틀린. '데이비드는 루시와 다시 재결합하고 케이틀린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면 그건 동화에나 나올 법한 결말이다. 적어도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 정도로 뻔뻔한 삼류 작가는 아니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믿게 된다.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믿게 되고, 모든 게 그저 순간에 불과한 거라 믿게 되고, 자신이 하찮은 존재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 싫든 좋든 우리는 누구나 나쁜 늑대의 그림자 아래 있음을,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위험 아래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행하는 위험 아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p.451)

 

어떤가? 미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다못해 버터 냄새로 속이 니글거리지 않는가. 이로써 '가장 미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이 증명된 셈이다. 그것은 어쩌면 문화적 토대가 부족한 미국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내러티브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하여 그들에게는 돈이 있지 않은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광고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헐리우드식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더글라스 케네디에게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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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의 망언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그들이 하는 짓거리로 보자면 이건 뭐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복은커녕 숫제 모리배 집단의 일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수장이라는 작자가 워크숍 자리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지 않나,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기자단과의 오찬에서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고 말하질 않나, 역사 국정교과서 대표집필진이었던 서울대 명예교수는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술 맛있게 먹은 죄밖에 없다"고 하면서 사퇴하더니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직자의 입에서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우리나라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발언이 튀어나오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그동안 있었던 제반 사건들을 그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여 왔고, 그런 까닭에 문제의 심각성을 그닥 깨닫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일의 발단이 개인적 차원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게 국민 대부분의 생각인 듯하다. 즉 고위 공직자 중에는 우리 역사의 정통성이나 헌법의 기본권 등 우리가 믿고 지켜야 할 가치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포진하여 있었고, 먹고 사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 국민들이 그들의 가치관까지 돌볼 여력이 없어지자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교육문제를 다룬 신작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들고 나온 조정래 작가는 오늘 기자 간담회에서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막말 파문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국민의 99%가 개·돼지 새끼들이라면 개·돼지가 낸 세금 받아놓고 살아온 그는 누구냐. 그는 개·돼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거나 진딧물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분노해야 하는 대상은 따로 있는 듯하다.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일회성의 막말이 뉴스에 보도될 때마다 파르르 분노하기보다는 그런 말이 밖으로 나오게 된 배경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자신의 소신을 자신있게 말하였을 뿐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런 사람을 고위공직자로 임명한 정부나 그런 사고를 가능케 한 정부 조직의 문제를 철저히 되짚어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망언을 한 공직자 한 명 자른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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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1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번에도 조속한 대처를 빌미로 개인의 일탈로 급히 마무리하는군요. 그리고, 조정래 작가님 말씀에 속이 시원합니다. ^^

꼼쥐 2016-07-13 16:5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교육을 담당하던 사람이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무력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 비단 사건의 당사자를 자르고 자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우리는 얼마나 한심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2016-07-12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2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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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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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면서 종종 마주치는 문제는 '내가 이 짓을 왜하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과 아주 가끔씩 부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허무감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도 블로깅이라면 으레 공부가 하기 싫어 SNS에 매달리는 10대의 일탈과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저 남아 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뻘짓'쯤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돼지우리와 진배없는 어두침침한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불빛을 마주한 채 웅크린 모습으로 자판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과히 아름다운 풍경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블로그를 하는가? 하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도대체 나는 왜 사는가?' 하고 이따금 자신을 향해 의미도 없이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신에게는 '매일 복용량'처럼 매일 써야만 하는 글의 양이 있다며 자신을 글쓰기에 미친 글쓰기광이라고 지칭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오래된 블로거들 대부분은 어떤 알 수 없는 의무로 그들 자신을 속박하거나 일정한 주기로 찾아 오는 조급함과 초조함에 얽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날씨가 궂은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기상통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봐왔던 오래된 블로거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가려 뽑아 이따금 자신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보석인 양 간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쩌면 블로그를 하는 보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글쓰기에 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 뚜렷한 주제도 없이 잡다한 글만 올리는 블로거에게는 언감생심 그마저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들의 책은 신춘문예와 같은 일정한 루트를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는 작가의 책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작가의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책은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예컨대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밝혀야만 하는 순간에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중견작가의 노련함에 비해 블로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쓴다는 데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순진하게도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블로그에 쓰는 글 중 대부분이 자신의 경험과 직접적인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꾸미지 않고 기록한다는, 말하자면 일기와 같은 특성이 일정 부분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집『일요일들』. 작위적이지만, 일요일 밤에『일요일들』 을 읽는 것이 내 오래된 습관이다. 시시콜콜한 일상에 숨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유쾌하고 날카롭게 풀어내는 작가답게 이 소설은 쉽게 읽히고, 오늘의 안녕을 안심하게 만든다." (p.21)

 

조안나의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는 순전히 제목이 좋아서 읽게 된 책이다. 나는 그녀가 대학생 때 시작한 블로그를 십 년째 운영하는 오래된 블로거라는 사실도, 결혼을 하기 전에는 출판사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도, 이십 대의 치기 어린 애독기를 담은『달빛책방』의 저자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저자는 자신이 예전에 읽었거나 새로 읽은 소설 200여 권 가운데서 이 책에 소개된 30권의 소설을 간추리는 데에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고 한다. 그 시간은 어쩌면 바쁜 직장인으로서의 '눈으로만' 읽는 독서에서 전업주부이자 전업작가로서의 감각이 살아 있는 독서로 탈바꿈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필수적인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하는 과정에 드는 일정한 시간처럼 말이다.

 

"유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세련된 말투로 걸려온 전화에 응대하지 않아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미소를 짓지 않아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최신 맛집을 몰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시에 어울리는 차림을 하지 않아도 내 삶이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걸 밤마다 읽은 소설들이 가르쳐 주었다." (p.272~p.273)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소설에 대한 국내 독자의 열기가 뜨겁다. 교재, 수험서, 자기계발서 등의 실용서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국내의 독서 생태에서 소설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낯선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곧 나 자신의 이야기이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며,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대되는 것이기에 한번쯤 소설에 빠져들었던 독자는 그 행복한 글감옥에서의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발적인 수감을 요구할런지도 모른다.

 

"결혼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에야 비로소 책을 읽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 밀려왔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을 갖다 버리고 싶어질 만큼 절망적이었다." (p.260)

 

주말에 맞는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날은 덥지만 내일 당장 출근해야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을 그들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결 느긋해진 표정과 발걸음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전염되는 듯 덩달아 미소가 번지게 된다. 이런 날 에쿠니 가오리나 박민규가 쓴 가벼운 소설 한 권 옆에 끼고 가까운 계곡에 나들이라도 나가보는 건 어떨까? 계곡에 발을 담그고 소설을 읽는 재미에 한껏 빠져 보면 하루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소슬한 밤길을 달려 귀가하는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볍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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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7-10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꼼쥐님처럼 글쓰고 싶어요! 길어도 계속 읽게 되는 문장의 자연스러움~ 많이 배우고 갑니다.

꼼쥐 2016-07-12 15:54   좋아요 1 | URL
너무 과분한 칭찬을...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

qualia 2016-07-1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인터넷의 발명이 가장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모든 혁명 중에서도 인터넷 혁명이 가장 파급력이 컸다고 봅니다. 모든 게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고 볼 수 있죠. 그 덕에 꼼쥐 님의 노트에 적혀 어느 한 가정집의 서랍이나 책장 속에 꼭꼭 숨어 있었을 사적인 글들을 (꼼쥐 님과는 전혀 안면도 없고 관계도 없는) 제가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있는 공간과 꼼쥐 님의 책상 혹은 컴퓨터 사이까지의 거리는 그 어느 우주 공간보다도 더 아득히 멀다고 할 수 있잖아요. 지금이 인터넷도 없는 1980년대와 같은 시대라면 말이죠. 그런데 지금 2016년 07월 10일 낮 2시 38분, 한국의 어느 한 도시에서 제가 꼼쥐 님의 내밀한 사적 공간으로 잠입해 들어가 그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꼼쥐 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서슴없이 공개하고 있으니까요. 인터넷이 없었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현상이죠. 거듭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인터넷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 중 지극히 작은 한 사례에 불과하죠. 다른 거대하고 심층적인 변화와 혁신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잖아요. 아무튼 꼼쥐 님의 윗글 가운데 첫째와 둘째 단락에 들어 있는 얘기와 생각들이 정말 맘에 듭니다. 인용해 주신 글도 그 인용문에 대한 꼼쥐 님의 느낌글도 정말 너무 좋습니다. 덕분에 얕은 생각이지만 이렇게 적을 수 있었네요~ hehe 고맙습니다~ ㅋ

꼼쥐 2016-07-12 16:02   좋아요 1 | URL
qualia 님의 꼼꼼하게 적어내려간 댓글을 읽으며 순간 감동하게 되는군요. 저는 사실 생각이 날 때마다 이따금 두서없는 글을 남기고 그것을 읽는 다른 블로거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 생각도 없이 지내왔었습니다. 제 블로그의 다른 글들을 보시면 알겟지만 이렇다 할 댓글이 달리지 않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지요. 제가 쓰고 싶은 대로 멋대로 쓰고 제가 쓴 글에 누군가 댓글을 달든 그렇지 않든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물론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여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경우는 좀체 없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게으르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군요. 아무튼 이런 성의있는 댓글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제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남깁니다. 더불어 제 글에 대한 칭찬도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