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똑같은 글을 써도 글쓴이의 성격이나 개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작가가 있다. 마치 자신의 글 속에 영혼의 빛깔과 무늬를 안 보이는 곳에 몰래 숨겨 놓기라도 한 듯 말이다. 독자는 책의 한 페이지 또는 누군가 인용한 단 하나의 문장만 읽어봐도 '그래. 이건 아무개의 글이 확실해.' 라고, 단박에 알아채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런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글 속에 영혼의 문장(紋章)인 양 자신만의 고유한 표식을 새겨넣을 수 있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작가의 집에 정중히 초대된 느낌을 받곤 한다. 하여, 나는 작가가 따라 준 차 한 잔을 마시며 작가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마스다 미리'는 내게 그런 작가로 비쳐진다. 작가는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들고 있던 곤충 채집상자의 모래가 쏟아져 어쩔 수 없이 모래를 쓸어 담는 아이를 도와주며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망상에 빠지는 버릇이 있어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거나 마흔의 나이에 친구와 함께 '저스포 축제'(저스트 40이 된 축하 여행)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의지하거나 응석 부리는 것이 서툴러서' 오래된 치통을 안고 살기도 하고, 서점에서 자신의 책을 들춰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는 독자에게 직접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되는 날 오래 머물렀던 집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좋고 싫음이 분명하여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도 못한다. 그런 자신을 뻔히 알고 있는 작가는 '앞으로도 철없는 어른인 채 나이만 먹어갈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나는사람을 싫어하면 온 마음이 싫음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싫은 사람은 싫어만 하는 게 아니라, 용서한다거나 용서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차원을 넘어서 무작정 싫어한다. 싫어한 채 잊고 살다가, 이따금 무슨 계기로 아아, 싫어하길 잘했어, 와하하, 하고 확인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한다고 했던 음식조차 싫어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친한 사람도 좀 싫어진다." (p.133)

 

그러나 그녀의 글이 항상 철없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전문대생 시절에 그렸던 서양화를 귀중품이라도 되는 양 끌어 안고 사시는 엄마에게 창피하니까 제발 버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갖고 있을 거라는 말에 가슴이 짠해지기도 하고, 젊은 엄마와 네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작은 돌멩이 밥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며칠 전 뉴스에서 본 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물 주세요, 라고 부모에게 애원했지만 끝내 굶어 죽고 만 사건이었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좋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연극의 여운을 가슴에 안은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니, '인생, 이런 느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천천히 밀려왔다." (p.65)

 

기모노를 멋지게 차려 입고 외출할 생각에 부풀어 기모노 입기 교실을 수강하고, 감기에 걸린 날 출근하는 남자친구의 귀가 시간을 묻게 되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원작으로 읽고 애니메이션의 훌륭함에 감동하기도 하고,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매료되어 피아노 교실을 수강하기도 하고, 새로 산 로봇 청소기를 보며 기특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 아이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일기와 다름없는 그녀의 글에 감동하게 된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마음을 바꿔먹으려고 애쓰지만, 검지 하나조차 얌전히 두지 못하는데, 내 몸에서 가장 큰 '마음'을 간단히 조정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침울할 때는 그런 식으로 암시를 걸어 어떻게든 자신을 뜻대로 하려고 애쓰는 나." (p.208)

 

제제가 그랬듯 작가도 어쩌면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하고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새'를 떠나보낼 결심을 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도 희미하게 살아 있을 그 새를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우리가 이따금 꿈꾸었을 평온한 일상을 가만가만 들려주거나 특별하지 않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가 인생에 몇 번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그 한 번에 들어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니, 잠깐만. 꽃가루 때문에 눈이 엄청나게 가렵다. 완벽한 행복까지는 앞으로 한걸음." (p.203)

 

살아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마음 속에 있는 '당신의 무늬'를 완벽하게 지우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순전히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마음 속에 '당신의 무늬'를 간직한다는 것, 그 무늬결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마스다 미리의 수필집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를 읽으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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