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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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슬한 삶의 한기(寒氣)를 느낄 나이가 되었다는 건 아마도 삶의 속도에 비례하여 삶의 덧없음과 허무의 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감지한고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살았던 시간보다는 막막한 현실을 어떻게 하면 떨쳐낼 수 있을까, 궁리하며 겨우겨우 '살아낸' 시간들이 많았던 까닭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 알갱이처럼 인생은 그저 허망하고 덧없는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간에도 '관성의 법칙'은 여전히 통용되는 까닭에 삶의 깨달음이 나의 지난 습관을 말끔히 없애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삶을 '살기'보다는 '살아내기'에 급급한 시간들로 남은 시간들이 채워지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가중되어 매일 밤 나는 불성실한 잠으로 하루의 피곤을 지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다. 낙태가 금지된 상태에서도 한국의 낙태율은 OECD 최상위권이고 출생률은 전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한국은 2750년 즈음 왜소한 공룡처럼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토록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그 하루를 사는 것이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도 애써 공동체의 소멸에 공헌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정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는 국가들 가운데 해외 이민을 떠난 뒤 모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비율은 한국인이 2014년 이래 가장 높다."  (p.18)

 

김영민 교수가 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입소문을 타고 내 귀에 전해진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약간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일부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책에 대한 대화를 삼가 왔다. 그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수도 있고, 불성실한 잠을 전쟁처럼 치르고 난 다음날 아침의 나른한 피곤 때문일 수도 있었다. '죽음'과 '아침'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현격한 거리감이 책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내게 극적인 변화를 던져주었던 건 최근에 걸려 온 지인으로부터의 전화였다. 서로의 안부와 함께 이런저런 잡담이 이어지던 도중 '김영민 교수'를 아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이 있었고,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모른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최근 장안의 화제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힐난 섞인 반박이 있지 않았겠나. 나는 멍한 기분으로 책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오늘날 자기계발서들은 당신을 위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삶이 힘들죠?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멈춰서 보세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기 전에 잠깐 스치는 게 삶이죠. 마음을 고쳐먹으세요. 내려놓으세요. 집착을 버리세요. 세상 탓을 하지 마세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해요. 옳은 것보다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해요. (중략) "삶이 힘들어"라는 말은 대개 "취직을 하고, 괴롭히는 상사가 없고, 빚이 없고,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 봄가을에는 여행을 다니고 싶어"의 준말이다. 그런 이에게 자기계발서의 달콤한 위로를 선물하는 것은 욕조가 없는 이에게 입욕제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p.224~p.225)

 

책의 제목과는 다르게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쓴 여러 편의 칼럼과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리뷰, 자신이 했던 인터뷰 등 우리가 흔히 보았던 산문집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 책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알려진 까닭은 책의 제목이 특이해서라기보다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강한 니킥을 날리는 저자의 솔직한 입담 덕분으로 인해 책을 통해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그러한 책들의 주장에는 특히 확신이 없거든요. 그런 책들은 확신할 근거가 없는 것들까지 확신하기에, 그런 책들을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  (p.340 '에필로그' 중에서)

 

지식인의 책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한 시민들의 공동체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파적인 이득이나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져 교묘한 말로 독자들을 현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서 객관적인 기준에서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바쁜 현대인들이 책을 읽을 짬을 내기도 힘든데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는 건 더더구나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들을 덥석 구매한다. 독서는 그렇게 무분별한 선택과 함께 진행된다. 세밀하게 느끼며 감각하며 살기에도 짧은 시간을 우리는 그저 살아내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소슬한 삶의 한기를 느끼는 나이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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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심약한 인간이 주변에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많은 고통 중 하나는 자신의 본성에 반하는 도덕이나 법률, 혹은 관습이나 규칙과 같은 것들로 인한 강한 압박감일지도 모른다. 무릇 도덕이나 관습이라는 게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경우가 태반이지 않은가. 하여 성인이 아닌 장삼이사(張三李四)가 평생 동안 공동체의 법규를 단 한 차례도 위반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양심에 거리끼는 바가 있으나 자신을 비롯한 공동체의 구성원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극히 심약하거나 남들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를 지닌 인간의 경우에는 단 한 번의 실수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럼에도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을 스스로 생을 마감한(남들보다 심약하거나 도덕적 잣대가 높은) 그에게 쏟아낸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이와 같은 부조리가 마치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이 아닌, 안드로메다의 어느 행성에서나 있음 직한 것인 양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 나는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한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LH에서 근무하던 직원의 잇단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로부터 소중한 생명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는 게 먼저일 텐데 뉴스를 보던 친구 왈,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죽었겠지." 하였다.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을 죄의 대가로 등치 하는 친구의 정형화된 의식 체계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예컨대 캐디를 성추행하고 뻔뻔하게 살아 있는  박희태 전 국회의원이나 인턴을 성추행하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떳떳함을 주장하는 윤창중 씨는 피해자에게 잘한 것이고, 성추행의 죄과를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한 박원순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정말 몹쓸 짓을 했단 말인가. 과연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 논리로 작금의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바라본다면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과연 누구를 의지하여 남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광기의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작가가 썼듯이 "죽음을 대면하고, 잔혹함에 가까운 최후를 일찌감치 받아들이는 것은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경멸과 달리 모욕받기보다 오히려 칭송받을 만하다". 타르드가 말했듯이 삶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그만큼 이 소중한 삶을 버리기 위해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자살에 관한 모든 것> - 마르탱 모네스티에)

 

공동체의 유지와 연속성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도덕이나 관습은 필요 불가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절제력이란 때로 과도한 욕망을 억제하기에는 너무도 허술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한 번의 실수가 한 사람을 우리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정말 가혹한 일이지 그 사람의 죄를 부풀려서 비난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생명마저 내놓은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도덕적인 인간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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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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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의 성패는 촘촘한 디테일과 허를 찌르는 반전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장쾌한 액션과 국경을 넘나드는 큰 스케일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에 의해 발전되어 온 20세기 탐정소설의 주류는 역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폭력과 섹스를 다루는 데 있어 너무 노골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폭력적인 주제를 다소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한다는 측면에서 비판보다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은 부조리한 세계를 응시하는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에 더욱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 하라 료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일본 땅에서 하드보일드 소설을 도입하여 크게 유행시킨 일본 하드보일드의 역사이자 전설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그런 까닭인지 하라 료의 최신작 <지금부터의 내일> 역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부터의 내일>이 탄생하는 데 무려 십사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420여 쪽에 이르는 긴 이야기이지만 스릴 넘치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으레 그렇듯 매 순간이 사건의 연속이고, 다음 장면이 궁금한 독자들은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결코 내려놓을 수 없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니시신주쿠 변두리 쇠락한 거리에 있는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찾아오는 건 의뢰인만이 아니었다. 낡은 문을 노크만 하면, 기억을 잃은 사격 선수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대필 작가도, 탐정을 지망하는 불량소년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었다. 1억 엔을 빼앗긴 폭력단 조직원도,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악덕 경찰도 나타났다."  (p.9)

 

소설의 주인공이자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주인인 사와자키 역시 쇠락한 거리와 함께 나이가 든 오십 대의 탐정이었다. 소설은 그가 근처 흥신소에서 하청 받은 잠복근무를 마치고 사흘 만에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 마침 '밀레니엄 파이낸스' 신주쿠 지점 지점장인 모치즈키 고이치가 찾아온다. 모치즈키는 자신의 지점에서 대출이 예정된 아카사카 요정 여주인인 히라오카 시즈코의 사생활을 조사해달라며 선금을 주고 사라진다. 그러나 의뢰받은 여주인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와자키는 모치지키와의 연락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는 '밀레니엄 파이낸스' 신주쿠 지점을 직접 찾아가기에 이르렀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그 시간에 마주친 은행강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요정 여주인의 사생활을 조사하고자 했던 흔하고 단순했던 일에서 오십 대의 노련한 탐정에게도 벅찬 큰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어쩔 수 없이 빠져 들게 되는데...

 

"그날 아침 집 근처 식당에서 본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밀레니엄 파이낸스 신주쿠 지점의 강도사건을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인 범행이라고 보도했다. 이인조 범인 중 한 명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은 채 도주했고 다른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체포됐으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앞머리를 반듯하게 손질한 아나운서가 뉴스 원고를 단조롭게 읽어내려 갔다."  (p.86)

 

모치즈키 지점장마저 행방불명인 상태에서 사건은 점차 분화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 속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이 도대체 어떤 시점에서 해결될 것이며, 사와자키는 또 어떤 단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 채 복잡한 플롯을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는, 다소 산만하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십 년 이상 살다 보면 놀랄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탐정 업무를 하는 탓에 죽음의 위험에 빈번히 노출되기도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폭력이 상대라면 악담을 내뱉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에 들린 담배를 다시 물고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나는 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p.423)

 

의뢰받은 사건에 따라 시간에 쫓기는 일도 다반사일 테고, 위험에 처해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해야 할 경우도 많을 텐데 사와자키는 여전히 휴대전화도 없이 전화응답 서비스를 애용하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탐하는 돈과 건강에는 초연한 듯 줄담배와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자신의 인생에서 내일은 마치 선물처럼 주어질 뿐, 약속된 것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와자키. 안락하고 풍요로운 가정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삐딱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와자키를 독자들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아마도 그가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독자들 대다수가 사와자키와 같은 삶을 꿈꾸지는 않지만, 이번 생에서는 결코 가보지 못할 그런 삶을 사와자키가 대신 살아주는 까닭에 우리는 세상 어느 것에도 거리낄 게 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봄비가 촉촉히 내렸던 오늘, 탐정 사와자키라면 빗속을 우산도 없이 걸었겠지만, 세상의 이목을 신경 쓰는 나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 우산을 쓰고 소심하게 은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복면강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소심한 나의 삶에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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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굳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 드는 사람들의 성향은 대개 두 가지로 분류되는 듯합니다. 자신의 이념이나 확고한 정치 철학에 기반하여 상대방을 끝까지 설득하겠다는 부류와 나와 상반되는 정치 철학을 가진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게 최근 이슈가 되는 정치인의 부적절한 행위를 슬쩍 던져봄으로써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그에 상응하는 논리적 반격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부류. 전자는 주로 나이 혹은 직책을 무기로 상대방의 의견은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막무가내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서열이든 직책이든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교양인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자보다는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의 대화나 행동으로 볼 때 상대방이 나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대화의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이 정치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양보하고 배려하여 그들 진영 사람들의 잘못을 슬몃 던져보는 것입니다. 이것도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보도된 뉴스를 곁다리로 삼아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조직 사회에서 정치 이야기는 주로 윗사람의 전유물인 경우가 다반사이지요.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랫사람은 그저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들으련다.' 하는 태도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히 듣고만 있게 됩니다.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이 아닐 수 없지요. 물론 윗사람과 정치 성향이 같은 경우라면 신이 나서 동조하거나 한발 더 나아감으로써 점수를 따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는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말을 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정치 성향을 교묘하게 덧씌우는지요. 예컨대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이것이 마치 현 정권에서 비롯된 부정부패의 전형인 양 비판하며 열을 올리고,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이보다 더한 투기가 보수정권 하에서도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성행되던 것인데 이제서야 겨우 드러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겠지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지나치면 시기와 질시, 편견과 배척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와 같은 현상을 부추겼던 건 아마도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와 패거리 정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서로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부패는 오히려 관대하게 처벌하는 사례가 반복됨으로써 부자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불신만 가중시켜 왔던 것이지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남이 사는 땅은 오죽이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비리를 제보할 수밖에요. 과거에도 배가 아픈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겠지만 이런 비리를 말할 수 없었던 건 공익 제보를 한 사람이 오히려 징역을 사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힘은 그만큼 무서웠고 서민들은 끽소리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았던 것이지요.

 

배가 아픈 사람이 땅을 산 사촌을 사회에 고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정점에 와 있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의 민주적 성숙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지요. 나를 고발할 사촌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혹여라도 있다면 그들이 배가 아프지 않도록 베풀며 사세요. 누가 그러더군요.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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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1-03-1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함은 우익인데 사상은 좌익이었던 분이죠 ^^

꼼쥐 2021-03-12 17: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고인이 되신 전우익 작가.
이따금 그분이 그립습니다.

잉크냄새 2021-03-1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라고도 하시더군요.

꼼쥐 2021-03-12 17:22   좋아요 0 | URL
담배꽁초를 문 전우익 작가의 얼굴 표지가 인상적이었죠.
 
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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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보았던 어느 방송사의 뉴스 한 토막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뉴스의 내용인 즉,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치킨이 먹고 싶다는 동생 손에 이끌려 치킨 골목을 찾았지만, 형이 가진 돈은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전부였고 그 돈으로는 어디에서도 치킨을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치킨! 치킨!" 보채는 동생을 달랠 방법이 없었던 형은 그저 난처할 뿐이었는데, 그때 마침 이를 목격한 치킨집 사장님 한 분이 형제에게 선뜻 따뜻한 치킨을 대접했고, 고등학생 형은 1년이 지난 뒤에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냈단다.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치킨집을 돈쭐('돈'과 '혼쭐'이 결합한 신조어) 내주겠다며 주문과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서현숙 선생님이 쓴 <소년을 읽다>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와 울컥 목이 메었었다. <소년을 읽다>는 저자가 소년원에서 1년 동안 국어수업을 하며 그곳의 학생이었던 소년들과 교감을 나누었던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저자는 수업이 없는 어느 토요일 '멘토'의 자격으로 소년들의 면회를 갔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짜장면과 컵라면을 사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참석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인 근철이가 저자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쓴 것은 물론 너무 죄송스럽다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했던 장면에서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뉴스의 한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근철이가 느낀 고마움 너머, 거기에 미안함이 있다. 어른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마움에 미안함이 왜 찰떡처럼 들러붙어 있는지 말이다. 마음의 일이어서 그렇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그렇다. 바다는 푸른 물결이 가득 차서 끊임없이 넘실거린다. 사람 안에는 마음이 가득하다. 마음은 단단하지 못한 채로 항시 흔들린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으로 꽉 차서 넘실거린다."  (p.77)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읽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부로 구성된 책의 계절을 따라 나는 마치 저자와 함께 네 계절을 모두 모두 살아보기라도 할 것처럼 아주 천천히 읽어나갔던 것이다. 아이들 틈에 끼어 국어 수업을 함께 듣는 듯도 하였고, 선생님과 함께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쿵쿵 뛰는 것만 같았다.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길을 잃은 빛나는 별이 되어 가슴속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시간에는 농도가 있다. 어떤 시간은 묽은 채로 주르르 흘러,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이 없다. 어떤 시간은 기운이 깃들어 찐득하다. 그런 시간은 삶에 굵고 뜨거운 자국을,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 흔적을 남긴다. 좀처럼 잊지 못하게 마련이다. 오늘을 통과한 아이들의 영혼에는 어떤 자국이, 흔적이 그려졌으려나. 아마 전과 다른 무늬가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들려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소리."  (p.36)

 

무거운 철장을 대여섯 번 통과해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소년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품성과 험상궂은 외모의 아이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다들 추측한다. 저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소년들을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과자나 젤리를 먹고 싶어 하고, 걸그룹 스티커에 환호하는 평범한 소년들이었다. 저자는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적은 분량의 책을 서로 돌아가며 읽어주는 수업을 진행하고, 그들이 읽었던 책의 작가를 초대하고, 그들이 맞이하는 작가를 진심으로 환대하는 체험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관계를 배운다. 진실한 독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작가가 설정한 관계의 틀에 완벽히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한 작품의 좋은 독자가 되어간다.

 

"한 사람의 영혼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곳, 지금 거기에 있을 소년에게 미안하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서 얼굴 내밀고, 글이나 몇 줄 읽다가 오는 국어 선생 주제에 엄살 피우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나 역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p.167)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외부적이 요소를 통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그런 비교가 마치 절대적인 가치인 양 확대 해석하며, 내가 적어도 너보다는 낫다는 암묵적인 비교우위에 기뻐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평가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요, 스포츠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서열상 우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인간의 다양한 기능 중 한 부분에서 재능이 있다는 것일 뿐.

 

나는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성장기의 소년들이야 변화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까닭에 변화는 곧 일상이요, 달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쓴 서현숙 선생님이 아이들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의 변화란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소년들을 읽다'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소년들을 읽음으로써 저자 스스로가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이 책에 대한 나의 솔직한 평이다.

 

책에 등장하는 소년들 각자의 사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마저 이해된다는 것은 아니다. 소년들은 저마다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환경과 소년들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어느 치킨집 사장님에게 '돈쭐을 내주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처럼 말이다. 며칠 전에도 소주와 번개탄을 사간 손님의 극단적 선택을 막은 마트 주인의 미담에 시민들이 "돈쭐을 내주자"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살 만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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