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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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보았던 어느 방송사의 뉴스 한 토막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뉴스의 내용인 즉,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치킨이 먹고 싶다는 동생 손에 이끌려 치킨 골목을 찾았지만, 형이 가진 돈은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전부였고 그 돈으로는 어디에서도 치킨을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치킨! 치킨!" 보채는 동생을 달랠 방법이 없었던 형은 그저 난처할 뿐이었는데, 그때 마침 이를 목격한 치킨집 사장님 한 분이 형제에게 선뜻 따뜻한 치킨을 대접했고, 고등학생 형은 1년이 지난 뒤에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냈단다.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치킨집을 돈쭐('돈'과 '혼쭐'이 결합한 신조어) 내주겠다며 주문과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서현숙 선생님이 쓴 <소년을 읽다>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와 울컥 목이 메었었다. <소년을 읽다>는 저자가 소년원에서 1년 동안 국어수업을 하며 그곳의 학생이었던 소년들과 교감을 나누었던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저자는 수업이 없는 어느 토요일 '멘토'의 자격으로 소년들의 면회를 갔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짜장면과 컵라면을 사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참석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인 근철이가 저자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쓴 것은 물론 너무 죄송스럽다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했던 장면에서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뉴스의 한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근철이가 느낀 고마움 너머, 거기에 미안함이 있다. 어른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마움에 미안함이 왜 찰떡처럼 들러붙어 있는지 말이다. 마음의 일이어서 그렇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그렇다. 바다는 푸른 물결이 가득 차서 끊임없이 넘실거린다. 사람 안에는 마음이 가득하다. 마음은 단단하지 못한 채로 항시 흔들린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으로 꽉 차서 넘실거린다."  (p.77)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읽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부로 구성된 책의 계절을 따라 나는 마치 저자와 함께 네 계절을 모두 모두 살아보기라도 할 것처럼 아주 천천히 읽어나갔던 것이다. 아이들 틈에 끼어 국어 수업을 함께 듣는 듯도 하였고, 선생님과 함께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쿵쿵 뛰는 것만 같았다.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길을 잃은 빛나는 별이 되어 가슴속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시간에는 농도가 있다. 어떤 시간은 묽은 채로 주르르 흘러,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이 없다. 어떤 시간은 기운이 깃들어 찐득하다. 그런 시간은 삶에 굵고 뜨거운 자국을,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 흔적을 남긴다. 좀처럼 잊지 못하게 마련이다. 오늘을 통과한 아이들의 영혼에는 어떤 자국이, 흔적이 그려졌으려나. 아마 전과 다른 무늬가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들려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소리."  (p.36)

 

무거운 철장을 대여섯 번 통과해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소년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품성과 험상궂은 외모의 아이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다들 추측한다. 저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소년들을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과자나 젤리를 먹고 싶어 하고, 걸그룹 스티커에 환호하는 평범한 소년들이었다. 저자는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적은 분량의 책을 서로 돌아가며 읽어주는 수업을 진행하고, 그들이 읽었던 책의 작가를 초대하고, 그들이 맞이하는 작가를 진심으로 환대하는 체험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관계를 배운다. 진실한 독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작가가 설정한 관계의 틀에 완벽히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한 작품의 좋은 독자가 되어간다.

 

"한 사람의 영혼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곳, 지금 거기에 있을 소년에게 미안하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서 얼굴 내밀고, 글이나 몇 줄 읽다가 오는 국어 선생 주제에 엄살 피우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나 역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p.167)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외부적이 요소를 통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그런 비교가 마치 절대적인 가치인 양 확대 해석하며, 내가 적어도 너보다는 낫다는 암묵적인 비교우위에 기뻐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평가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요, 스포츠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서열상 우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인간의 다양한 기능 중 한 부분에서 재능이 있다는 것일 뿐.

 

나는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성장기의 소년들이야 변화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까닭에 변화는 곧 일상이요, 달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쓴 서현숙 선생님이 아이들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의 변화란 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소년들을 읽다'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소년들을 읽음으로써 저자 스스로가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이 책에 대한 나의 솔직한 평이다.

 

책에 등장하는 소년들 각자의 사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마저 이해된다는 것은 아니다. 소년들은 저마다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환경과 소년들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어느 치킨집 사장님에게 '돈쭐을 내주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처럼 말이다. 며칠 전에도 소주와 번개탄을 사간 손님의 극단적 선택을 막은 마트 주인의 미담에 시민들이 "돈쭐을 내주자"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살 만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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