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특정 장소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듯한 차림의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리산 정상에서 숏팬츠 차림의 관능적인 여인을 본다거나, 스파이크 골프화만 신으면 당장이라도 필드에 나설 수 있을 것처럼 골프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배 통통한 남자를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만난다거나, 클럽의 플로어에서 격식을 갖춘 양복 차림의 청년을 만난다거나, 어느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참석한 관객들 사이에서 도드라진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를 보는 경우이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지구를 빛내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고작 내 앞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뒤로는 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그동안 나는 몇 칸이나 뒤로 밀려났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지독한 배신인지요.

 

나는 끝내 벌어진 틈새를 메우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 영혼을 그들의 영혼 가까이에 두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의 정원에 오직 내 잣대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 것이지요.  이 얼마나 고독한 영혼인지요.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채로운 꽃들이 서로를 시기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나의 삶은 지금껏 청맹과니의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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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인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신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인간은 완벽하게 찌질한 생명체가 되는 건가요?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한 셈이군요. 이 찌질한 인간들에 의해 벌어진 최근의 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저는 요즘 제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팔레이스타인 분쟁을 보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비록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두 사건은 샴쌍둥이처럼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히 봉쇄된 지역이지요.  도망가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국경지대에 높은 담벽을 세운 것도 모자라 해상마저 봉쇄하고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할 수 없으니 그들은 땅굴을 파서 물자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자구책인 셈이지요.  이스라엘은 그 땅굴마저 파괴하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경지대에는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구경하는 관광상품도 생겼다 하더군요.  인간이 죽는 모습을 희희낙낙 즐기겠다는 것이겠지요.

 

3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대참사를 조류독감에 비유하는 작자나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작자나 그들은 그저 사람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겠지요.  이스라엘 국경에 서서 불구경 하듯 즐기는 작자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오직 '돈'이라는 유일신이 '권력'이라는 허상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저는 마치 악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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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치자 말매미 소리 요란하다. 한들거리는 감나무 줄기의 작은 고요로는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소음. 휴일 오전의 나른한 시간 속으로 나선형의 말매미 울음 소리가 증폭되어 다가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베란다의 창유리가 그 소리로 인해 퍽하고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침묵만큼 관대한 것이 또 있을까. 한순간도 제 영역을 지키려들지 않는다. 작은 소음에도 제 자리를 얼마쯤 내어주고는 멀찍이 물러서는 것이다.

 

아기의 볼살만큼 부풀어오른 감송이가 이유도 없이 툭하고 떨어진다. 모성의 가지에서 떨어진 감송이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인연과 결별한다. 훅하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반사적 행동과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생명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비껴간다.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 무심한 진행이다. 자연의 섭리에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일주일의 기억이 순서를 무시한 채 흘러나왔다. 살아온 시간에 얼마쯤의 시간을 더하는 것은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할 수 없는 머릿속 혼란을 눈감아 주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평화로운 단절과 시끄러운 관계지속으로 구분된다. 말하자면 평화와 간헐적 분쟁. 세상의 모든 평화는 사람 사이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다. 친밀함이란 결국 분쟁을 용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성립된다. 관용이 없다면 친밀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의식하지 않아도 얼마간의 시간적 경과가 느껴진다. 선험적인 불안.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은 내적 불안의 반영이다. 우울하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마는 가벼운 불안증세는 이제 현대인의 공통된 연대감으로 변형된 듯하다.

 

불쾌지수 측정계의 빨간 바늘이 부러질 듯 치솟는 오늘.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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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단비. 밤새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을 준비합니다. 준비라고 해야 운동복과 등산화를 신는 정도이지만. 저는 빗속의 산행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우산에 듣는 규칙적인 빗소리도 즐겁고 빗물에 씻겨 말갛게 드러난 등산로도 보기 좋습니다. 게다가 습습한 대기에 녹아 있는 짙은 솔향은 어떻구요.

 

얕게 괸 물웅덩이에 작게 퍼지는 물동그라미들. 함초롬히 젖은 개망초의 하얀 꽃송이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갑습니다. 비행을 연습하는 어린 까치가 있는지 어미로 보이는 까치 울음 소리가 다급합니다. 늘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던 사람들도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예감합니다.

 

얼마쯤 올랐을까요.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두꺼비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두꺼비도 제 딴에는 오늘 같은 날에는 등산객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등산로 중간에 멈추어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명상에라도 잠겼는지 눈을 반쯤 내려 감고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마치 필요한 놈이 비켜가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맹랑한 놈이로구나' 생각하며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도 이 산의 주인은 나라는 듯 길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시 가늘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듯합니다. 두꺼비를 피해 산을 다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 그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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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한다고 해도 달리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건만 기상청에서는 여러 이유로 설명하고 있더군요. 먼지가 날리는 등산로를 걸을 때마다 가뭄의 심각성을 체감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다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물웅덩이가 줄어든 탓인지 모기의 개체수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아침에 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땀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까맣게 달려들곤 했는데 올해는 손짓 몇 번만으로 가볍게 쫓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모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밤에도 더위를 느끼는 요즘에는 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놓고 잠이 들게 마련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으레 모기약도 뿌리고 전자 모기향도 피우지만 이따금 피곤에 지쳐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모기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들어와 어느 곳에 숨어 있다가 내가 잠든 틈만을 노려 공격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그냥 잘 것이냐 일어나 불을 켜고 모기를 잡을 것이냐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결국에는 잠을 포기하고 모기와의 한판 승부를 격렬히 치른 후에야 다시 잠이 들게 됩니다. 그렇게 잠을 설친 날이면 몸도 찌뿌듯하고 컨디션도 영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런 날벌레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저으기 안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기를 비롯하여 잠자리, 매미, 나비 등 인간의 시선에서 가까운 작은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지구환경이 아직은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날벌레보다는 덩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간이 이 지구에서 당분간은 그럭저럭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으니까요.

 

4대강 문제로 언론이 시끄럽습니다. 큰빗이끼벌레인가 뭔가 하는 것이 온 국토의 강에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다지요? 녹조현상도 심각한가 봅니다. 전직 대통령은 그 많은 돈을 들여 우리나라 국토에 무슨 짓거리를 한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토를 온전히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엄청난 액수의 세금으로 기껏 한다는 짓이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었다니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집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건전한 정신과 문화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에 우수한 문화가 있다한들 뭐하겠습니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못하면 전 국토가 일시에 파괴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위험성은 참으로 지대한 것입니다. 제 잇속을 차리기 위해 전 국토를 파괴한 통치자의 말로가 이런 것이다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저 가슴만 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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