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치자 말매미 소리 요란하다. 한들거리는 감나무 줄기의 작은 고요로는 차마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소음. 휴일 오전의 나른한 시간 속으로 나선형의 말매미 울음 소리가 증폭되어 다가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베란다의 창유리가 그 소리로 인해 퍽하고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침묵만큼 관대한 것이 또 있을까. 한순간도 제 영역을 지키려들지 않는다. 작은 소음에도 제 자리를 얼마쯤 내어주고는 멀찍이 물러서는 것이다.

 

아기의 볼살만큼 부풀어오른 감송이가 이유도 없이 툭하고 떨어진다. 모성의 가지에서 떨어진 감송이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인연과 결별한다. 훅하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반사적 행동과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생명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비껴간다.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 무심한 진행이다. 자연의 섭리에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일주일의 기억이 순서를 무시한 채 흘러나왔다. 살아온 시간에 얼마쯤의 시간을 더하는 것은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할 수 없는 머릿속 혼란을 눈감아 주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평화로운 단절과 시끄러운 관계지속으로 구분된다. 말하자면 평화와 간헐적 분쟁. 세상의 모든 평화는 사람 사이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다. 친밀함이란 결국 분쟁을 용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성립된다. 관용이 없다면 친밀한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의식하지 않아도 얼마간의 시간적 경과가 느껴진다. 선험적인 불안.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은 내적 불안의 반영이다. 우울하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마는 가벼운 불안증세는 이제 현대인의 공통된 연대감으로 변형된 듯하다.

 

불쾌지수 측정계의 빨간 바늘이 부러질 듯 치솟는 오늘.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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