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단비. 밤새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을 준비합니다. 준비라고 해야 운동복과 등산화를 신는 정도이지만. 저는 빗속의 산행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우산에 듣는 규칙적인 빗소리도 즐겁고 빗물에 씻겨 말갛게 드러난 등산로도 보기 좋습니다. 게다가 습습한 대기에 녹아 있는 짙은 솔향은 어떻구요.

 

얕게 괸 물웅덩이에 작게 퍼지는 물동그라미들. 함초롬히 젖은 개망초의 하얀 꽃송이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갑습니다. 비행을 연습하는 어린 까치가 있는지 어미로 보이는 까치 울음 소리가 다급합니다. 늘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던 사람들도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예감합니다.

 

얼마쯤 올랐을까요.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두꺼비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두꺼비도 제 딴에는 오늘 같은 날에는 등산객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등산로 중간에 멈추어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명상에라도 잠겼는지 눈을 반쯤 내려 감고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마치 필요한 놈이 비켜가라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맹랑한 놈이로구나' 생각하며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도 이 산의 주인은 나라는 듯 길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다시 가늘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듯합니다. 두꺼비를 피해 산을 다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 그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두꺼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